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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그래픽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극

장동건, 장백지 주연의 <무극>

06.01.30 12:06최종업데이트06.01.3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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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로 다니는 노예,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노예의 모습이다. 그런데 첸 카이커가 연출한 영화에서 그것도 우리의 꽃미남 장동건이 네 발로 다니는 노예로 출연한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직접 노예 연기를 하겠다고 자청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스타이기보다는 배우의 삶을 선택한 그의 용기에는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어쩐지 중국영화에서 한국인이 노예, 그것도 네 발로 다니는 역할을 보고 있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영화에서 장동건은 지저분한 산발 머리에다 잘생긴 얼굴에는 때 국물이 흐른다. 주인이 던져준 고깃덩이를 차지하기 위해 점프를 하고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까요, 주인님!”한다. 네 발로 말이다.

그나마 영화 초반에서만 그러한 모습을 본다는 것. 진행이 되면서 새로운 모습을 탄생하는 그를 볼 수 있으니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지 말길. 그럼 영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영화 무극은 제작비 3000만 달러(약 290억원), 3년의 제작 기간, 중국영화사상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최다관객동원,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부문 중국 출품작. 이렇게 화려한 수식어가 빛나는 영화이다. 그러나 문제는 판타지 무협 영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느냐다.

<무극 The Promise>은 사랑과 운명에 대한 장대한 판타지 서사극이다. 무극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시공을 초월한 극한의 공간을 말한다. 첸 카이거 감독은 <무극>을 통해 한 인간의 자기 인식을 그린다. <무극>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허우적댄다.

아름다운 왕비 칭청(장백지)은 천상의 미를 얻은 대신 진정한 사랑은 결코 얻을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의 포로가 되어 허무 속에 살고 있고,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백성들로부터 추앙 받는 장군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은 칭청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얻은 명예마저 포기한다.

권력과 부귀영화를 양손에 쥐었지만, 북공작(사정봉) 역시 칭청에게 집착하며 생을 낭비한다. 쿤룬(장동건)은 자신의 목숨보다 주인의 목숨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네 발로 기는 노예의 삶에 익숙해져있다.

그러나 쿤룬(장동건)은 북공작이 보낸 검은 자객으로부터 "너는 바람처럼 빠르지만, 달리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것이다. 갈망해야 니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깨우쳐준다.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시작된 쿤룬은 그때서야 자신의 옷을 갖춰 입고 두 발로 걷는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쿤룬. 물론 그것은 첫눈에 반한 칭청과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무극>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진리와 함께 운명을 거스르는 쿤룬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생을 관통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무극이라는 소재와 운명론을 깨부수며 진화하는 즉, 두발로 걸으며 사랑을 하게 되는 쿤룬의 모습이 그려진다.

네 명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는 내용 자체에서 흡입력이 상당하다. <무극>의 키워드는 ‘운명’이다. 쿤룬은 자신에게 덧입혀진 노예의 운명을 거스르고자 하고, 왕비 칭청은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는 저주스러운 운명의 사슬을 끊고자 한다. 바로 사랑이 그렇게 만든다는 인간의 운명을 초월한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제는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할 수 없는 방해요소가 있다.

바로 너무나도 공들였지만 만화 같은 허무한 CG효과 때문이다. 오히려 진지하게 정통 멜로서사극을 그렸더라면 훨씬 더 영화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음에도 이 CG효과는 영화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감시키는 작용을 한다.

더욱이 앞서 장이모가 만든 <연인>에서 우리 관객들은 CG효과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중국식의 과장법과 화려한 색채가 영화 몰입을 방해한다.

컴퓨터 그래픽의 집중적인 포화는 사랑과 운명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결국 이 영화의 주제인 운명은 빛을 바래고 만다. 물론 동방불패, 천녀유혼에 열광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두 편의 영화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주가 아니라 부수적으로 영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즉 영화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엇갈림과 사랑이야기가 주내용으로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며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는 구성을 띠지만 무극은 컴퓨터 그래픽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시험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무극(無極)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쿤룬이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장면은 역동적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과도한 묘사로 인해 그의 모습은 만화 주인공처럼 비쳐진다. 거대한 새장 속에 갇힌 칭청을 구출해 내는 신이나, 소 떼가 병사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장면은 어느 정도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진한 화장의 칭청은 왕비보다는 술집 잡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신과 인간, 신화와 현실, 전설과 역사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영화는 ‘무극’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완벽한 가상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그 완벽함이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과잉 공급하게 만든 원인이다.

결국 우리의 한류스타 장동건은 질식사를 했고, 나머지 배우 모두 컴퓨터그래픽의 효과에 허우적대고 있어 영화상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는 매몰되어 잘 전달되지 않은 채 끝이 나버렸다. 아마도 관객들은 허무함을 느끼고 극장 문을 열고 나설 듯싶다.
2006-01-30 12:0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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