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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사랑은 어떤 빛깔?

[리뷰] <러브 오브 시베리아>

05.12.30 18:02최종업데이트05.12.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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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오브 시베리아> 영화 포스터
러시아인의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 영화채널에서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작품성이랄까 그런 것 보다 우선적으로 주인공들의 매력을 따지는 내 선입견 때문에 볼까 말까 망설이다 보게 되었다.

여자 주인공: 너무 강해보이는 이미지와 아무런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땜시 갈등했었다. 봐?, 말어?
남자 주인공: 아니, 여주인공은 너무 괄괄하게 생겨서 탈이구만 남자 주인공은 왜 또 저렇게 귀엽게 생겼다니.

아무튼 볼까 말까 망설이는 가운데 영화는 계속 진도를 나갔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계속달리기에 나도 모르게 그 흐름을 타게 되었다.

영화는 여주인공 '제인 칼라한'이 사관학교에 진학한 자신의 아들 엔드류에게 그의 출생의 비밀을 편지로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제인의 양부는 시베리아의 나무를 벌목하는 기계를 개발하였는데 제인은 그 기계를 파는 로비스트였다.

제인이 설득해야 될 사람은 사관학교 교장선생인 레들로프 장군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에게 벌목기계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인은 양부의 일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레들로프 장군에게 접근했고 장군은 뒤늦게 찾아온 춘정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당신이 나의 사랑을 받아주면 벌목기계? 고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어요.'

이미 세상사에 찌들고 찌들린 제인은 레들로프 장군과 적당히 타협하며 벌목기계를 팔아먹고 안녕을 고하면 간단히 끝날 여정이었으나,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만난 사관생도 톨스토이 때문에 갈등하였다. 스무 살 나이어린 청춘이라면 충분히 품어 볼 수 있는 마음이라 생각하며 그의 눈빛을 무시하려해도 점점 자신도 그에게 경도됨을 느꼈다.

한편, 톨스토이는 어느 무도회에서 제인과 짝이 되어 춤을 춘 친구 폴리옙스키가 제인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자 분노한 나머지 그에게 펜싱결투를 신청하였다.

결과는, 톨스토이 가슴에 피가 흘렀고 친구들은 그제야 톨스토이의 제인을 향한 마음이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의 조력자가 되었다.

아픈 가슴을 붕대로 감고 침상에 누워 한심해진 자신을 탓하며 상관에게 자퇴를 얘기하는데 상관이 들어주지 않자 톨스토이는 스스로 자퇴서를 썼다. 친구 폴리옙스키는 제인에게 톨스토이가 다치게 된 정황을 얘기하며 자퇴를 하지 못하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제인은, 톨스토이에게 있어 사관학교는 홀어머니와 가정부와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살림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자퇴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았기에 능숙하게 설득을 하였다. 제인의 사랑을 확인한 톨스토이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나 사단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레들로프 장군의 매력

제인이 톨스토이에게 줄 사진을 핑계로 처음 장군을 만나러 갔을 때 레들로프 장군은 제인이 미국인인 것을 알자 우선 제인에게 프랑스어가 되냐고 물었다. 노. 그러면 독일어는? 노. 그러면 할 수 없이 자신의 짧은 영어로 대화 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구하며 부하에게 영어사전 부탁하였다. 다방면의 외국어에 능통한 그 교양이라니.

제인에게 청혼을 하는 장면 또한 걸작이었다. 러시아 인들이 다 그런 식으로 청혼을 하는지 장군만의 독특한 방식인지 아무튼 레들로프 장군의 청혼은 아주 멋있었다. 기차에서 망가뜨린 부채건으로 제인의 거처를 향하던 톨스토이에게 장군은 마침 잘 됐다며 자신은 영어가 서투르니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보여주며 때되면 읽어달라고 명령하였다.

이윽고 제인의 집에 도착한 레들로프 장군. 정중한 인사 후 프러포즈는 시작되었다. 우선 제인에게 액자에 담긴 자신의 부모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톨스토이에게는 연서를 주고 자신은 피아노 악보를 꺼내더니만 손수 피아노를 연주할 태세였다. 즉, 자신의 연주에 맞추어 연서를 읽으라는 것이었다. 편지는 또 얼마나 낭만적인지.

톨스토이는 차분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장군보다 훨씬 좋은 영어발음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잘 읽어가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엉뚱하게 창작하여 읽는 바람에 모든 것이 틀어지게 되었지만 아무튼 인상적인 청혼이었다.

'내 삶의 중대한 결정을 위해 여기에 달려왔나니/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사랑은 홍역 같은 것 /뒤늦게 찾아온 홍역은 더 뜨거운 열병/ 이 시는 바로 나의 마음이요/사랑과 전쟁에 자격은 없다고 하오/전 지금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오.....'

러시아인의 교양과 문화

이 영화의 감독인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무려 12년이나 걸쳐서 완성하였다고 하였다. 제작비 580억, 5천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꼬박 1년을 찍었다고 하였다. 사관생도로 분한 엑스트라들에게는 실지 사관생도의 느낌을 얻도록 하기위해 늘 사관생도 옷을 입고 있도록 주문하였다고도.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사관학교 졸업식 때의 사기는 진짜 보다 더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관생도들이 얼음위에서 웃통을 벗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싸우는 장면이었다. 아니, 옷을 두 겹 세 겹 껴입어도 춥겠구만 윗옷을 벗고 싸우게 하다니. 이열 종대로 길게 마주보고 서서 무지막지하게 치고받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래도록. 왜 저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러시아 전통중의 하나라나. 동토의 왕국에서는 모름지기 호연지기 기르는 일 또한 특별했다.

그리고 사관생도들이 황제를 위하여 오페라를 준비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러시아 사람들도 먹고 사는 일이 각박하여 좀 변했나 모르겠지만 예전엔 러시아사람들의 주된 취미가 독서와 음악 감상이라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술도 다들 '한 술'씩 하고.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이지만 러시아인들의 품격 같은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미국사람의 정서가 느껴지고 프랑스 영화를 보면 프랑스인의 독특한 스타일이 눈에 들어오는데, 러시아 영화를 보니 러시아만의 어떤 분위기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동토와는 어울리지 않게 한없이 '따뜻한' 느낌이었다. 자작나무의 정기(?)를 너무 많이 받았나, 그들의 마음은 시베리아 원시림처럼 수려하고, 풍성하고, 여유로운 듯했다.

어긋나는 사랑의 결말

레들로프 장군은, 톨스토이가 자신의 연서를 읽어주다가 끝에 가서 산통을 깬 것까지는 너그러이 넘어 갔으나,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오페라에서 제인과 함께한 자신을 질투한 나머지 첼로 활로 내려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벌로 톨스토이는 황제를 해하려 했다는 죄명을 쓰고 감옥으로 갔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죄를 뒤집어썼다. 제인은 자신의 실수로 톨스토이의 인생이 좌초한 것에 한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시베리아에서 톨스토이를 만나기를 갈망했으나 그는 이미 가정을 이루었는지라 아프게 돌아섰다. 때문에, 사실은 20년 전 나눈 단 한번 사랑의 결정인 엔드류에 대한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톨스토이는 톨스토이대로 떠나는 제인의 마차만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못다 한 얘기는 언젠가 엔드류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서 알려주리라. 아무튼 이 영화는 2시간 40분이라는 긴 여정동안 사랑얘기도 한몫 하지만, 사랑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나라의 면면을 보여주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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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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