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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뮤지컬에 도전하다

[리뷰] 마법에 걸린 듯 몽롱하게 본 <퍼햅스 러브>

05.12.29 11:07최종업데이트05.12.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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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가 왜 이러지?"

<퍼햅스 러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영화 주인공 지엔(금성무)을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 속 주인공에 몰입해 본 적은 있지만, 영화를 보고 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영화 속 인물이 내 마음을 울리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사실, <퍼햅스 러브>를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타고난 음치인 내게 뮤지컬을 소재로 한 영화는 봐도 감흥이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두 번째 이유는 영어를 그대로 써놓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며, 마지막 이유는 대강의 줄거리를 보고서,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일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의 감정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 perhapslove.co.kr
그랬기에, 처음으로 영화를 본 후까지 내 마음을 뒤흔든 <퍼햅스 러브>를 만나지 못할 뻔 했지만, 다행히도 유료 관람이 아닌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시사회였기에, 그런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결과론적으론 이 영화를 본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애시당초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려니 앉는 순간부터 허리가 아파옴은 물론, 졸음까지 밀려들어 2시간을 견딜 일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이 때 나를 또 다시 구원해준 건, 매력적인 웃음을 보여준 지진희였다. 외국 영화에서 우리나라 배우를 만나 반가움이 앞선데다가, 지진희의 입모양이 중국어 발음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보느라고 다행히 자지 않고 영화 도입 부분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재미없으면, 중국어 듣기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뭐 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난 나도 모르게 지엔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파옴을 느끼다, 화들짝 놀랐다. 영화 속 인물 중 한 명에 몰입해 그의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 느낌이 달랐다. 단순히 그 인물에 몰입했다기보다 난 나와 지엔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엔 안에서 튕겨져 나오는 순간, 어떤 묘한 마법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아니, 어쩌면 진가신 감독나 주연 배우들이 내게 마법을 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퍼햅스 러브>의 기본적 줄거리나 인물 설정은 평상시 내게 전혀 공감가지 않을 성질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지엔과 손나(저우쉰)는 10년전 서로를 사랑했었지만, 손나의 배신으로 그 사랑은 막을 내리고, 10년 후 손나는 영화계의 대감독 니웬(장학우)과 연인 관계가 되어 있다. 니웬이 새로 찍는 뮤지컬 영화에 10년 후인 당시 각각 대스타로 성장한 지엔과 손나가 주인공에 캐스팅된다.

니웬이 찍는 뮤지컬 영화는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했으나, 여자가 기억을 잃고, 서커스단 단장이 그 여자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후, 예전 연인의 남자가 찾아와 그 여자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며 삼각 관계를 형성한다는 내용이다. 니웬이 찍는 뮤지컬 영화와 거의 비슷한 설정으로 <퍼햅스 러브>도 진행된다.

내용 자체는 흔히 있을 법한 멜로물이나, 내 성격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지엔을 헌신짝처럼 버린 손나를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랑하는 지엔이라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그러나, 그런 지엔이 손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는(분노가 담겨있을지도 모르지만) 모습에서 평상시의 나라면 '완전 집착이구만'이라는 비아냥이 나와야 정상일텐데, 머리 속은 백지로 변한 채, 그저 마음만이 내가 지엔인양 저려오며, 통증을 느꼈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 내 자신에게 수 차례 물어보았지만, 무엇때문에 지엔의 아픔이 그토록 강렬히 전달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현재로서는 진가신 감독의 마법이나, 또는 금성무의 연기력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겠다.

지엔의 마음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자, 그의 경쟁 상대인 니웬의 마음에도 조금은 빠져들었다. 하지만, 지엔에 완전히 빠져버린 내게 니웬은 어디까지나 경쟁자이기에 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공감할 수도 있었지만, 동조하기는 힘들었다.

손나의 사랑을 얻어야 할 사람은 1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온 지엔 그 이외에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렇게 어쩌면 지엔보다 손나에게 더 집작하고 있던 중, 영화가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 또 다시 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해피 앤딩이나 멜로물의 최루성 결말에 익숙한 내게 이도 저도 아닌 결말을 보여준 <퍼햅스 러브>의 결말은 로맨틱 코미디의 해피 앤딩보다 행복한 느낌을 주었고, 멜로물의 최루성 결말보다 강한 눈물을 뿌리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가 아닌 마법에 걸린 듯 몽롱한 상태로 나오긴 했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발설할 수 없지만, 지엔과 손나의 추억이 묻어 있는 베이징으로 둘이 함께 갔을 때 나타난 손나의 감정 변화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얘기를 여자친구에게 한 후 돌아온 답변을 생각해본다면, 난 <퍼햅스 러브>가 보여준 그 마법을 다 느끼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넌 여자를 너무 몰라!"

덧붙이는 글 | 물론 제게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른 영화를 볼 때랑 감정선이 너무 달라서요.

2005-12-29 11:0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물론 제게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른 영화를 볼 때랑 감정선이 너무 달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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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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