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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고수, 기술로 말하다

[개봉 영화 엿보기] 캐릭터의 부각, 영화에서 돋보여

05.12.29 11:20최종업데이트05.12.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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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싸움의 기술> 포스터
ⓒ (주)코리아엔터테인먼트
누구나 싸움은 한다. 그러나 누구나 싸움을 '잘' 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다. 누구나 맞기는 한다. 그러나 '제대로' 맞을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 '잘' 싸우고, '제대로' 맞는 두 사람이 결합했다. 그야말로 불협화음 속의 하모니.

영화 <싸움의 기술>은 관객(특히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남성들)의 심리를 묘하게 건드리는 영화다. 어느 영화인들 관객의 몰입을 확실하게 끌고 싶지 않겠냐마는 <싸움의 기술>은 유난히 관객의 호흡에 귀를 기울인다.

이 영화를 둘러싼 굵은 테두리는 멀리서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만큼 영화 제목에 충실했기 때문에 관객이 시나리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관객은 영화에 새겨진 굵고 진한 테두리를 애써 지워갈 필요는 없다. 굳이 그런 소모적인 힘을 낭비하지 않고도 영화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실 고딩의 일그러진 인생, "맞는 것도 지겹다"

'퍽~ 퍼벅….'

맞는 것이 이젠 익숙할 법한데도 병태(재희 분)는 폭력 앞에 엎드린 자신의 존재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일반 학생들은 집단 구타를 당하는 병태를 보며 내심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딱히 가여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둔할 수도 없는 처지. 폭력으로 얼룩진 실업 고등학교 교실의 풍경이다.

그렇게 영화는 실업 고등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무차별성과 함께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 시절에 대한 기시감(棄市感)까지 불러 올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다듬어진 학생들의 행동방식과 심리상태는 극중 병태의 무기력함을 한층 부각시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관객들은 병태의 처절한 현실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면서 수 년 전 자신도 편승했던 그 폭력에 함몰 된 집단 심리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맞는 병태. 이제는 맞는 것도 지겨울 때가 된 모양이다. 그래서 덜 맞고 잘 싸우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하는 데….

전설의 고수 "싸움은 인생 그 자체다"

▲ 고등학교 시절, 집단심리는 폭력을 정당화 시킨다.
ⓒ (주)코리아엔터테인먼트
싸움을 기술을 보유한 사람 치고는 비교적 싱겁게 등장하는 오판수(백윤식 분).

그가 보유한 싸움의 기술치고는 비교적 싱겁게 등장하는 오판수(백윤식 분). 아니나 다를까 하는 짓도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다. 그러나 우연히 목격한 판수의 비범함. 그 분이 온 것이다.

상대를 제압할 때, 유난히 '피똥'을 걱정하는 판수의 배려는 싸움에 두는 목적이 결코 남을 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싸움'에 묻어있는 인생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임을 상징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그것이 싸움의 경지에 오른 진정한 고수가 추구하는 철학이다. 그렇지만 맞는 것에 신물이 난 병태에게 그의 논리는 한낱 이상에 불과했다.

이순(耳順)에 육박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의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내뿜는 백윤식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영화의 밑그림에 자신의 색깔을 칠하고 난 다음 다른 색깔을 허용 한 듯 영화 전반에 걸쳐 그의 도도함이 묻어 있다고 한다면 과찬일까?

한편 형편없이 망가진 학생 역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완전히 탈바꿈 시킨 재희 역시 <빈집>에서 보여준 역(役)에서 철저하게 벗어났음을 웅변하듯 병태가 자신인 듯 잘 소화해 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즐거운 이유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굴곡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처한 현실에 스크린을 찢고 우르르 달려가서 동조하고 때로는 상관없는 듯 객관적 시점으로 돌변한다. 그 돌아오는 과정에서 겪는 관객의 심리적 변화는 물론 영화의 목적과 궤를 같이한다.

<싸움의 기술>은 약한 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의 논리를 질퍽하게 그려 내면서 현실의 폭압성을 담았다. 거칠게 묘사되는 몇몇 장면은 여성 관객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올 수도 있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폭력은 폭력을 불러 온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서 누구나 회피한다. 그게 폭력의 한계다.
2005-12-29 11:1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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