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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청연>을 보았나

직접 본 영화평론가들이 말하는 <청연>

05.12.29 12:07최종업데이트05.12.2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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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조선인 반응이 별로야. 일본 비행기 탄다고 매국노라는 사람도 있어."

영화 <청연>에서 박경원(장진영 분)이 말했다. 영화속 대사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졌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친일 미화 논란이 불었다. 주인공 박경원이 친일 했다. 아니다. 친일을 미화했다. 아니다. 논란 한 가운데 영화가 개봉했다. 그렇다면 영화를 본 영화계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꿈을 꾸는 사람의 이야기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이 논란에 대해 "부질없다"고 일축했다. 모 일간지가 <웰컴 투 동막골>을 반미·탈북 이데올로기로 몰아붙인 걸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영섭씨는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 개념에 잘 맞는 영화가 아니다, 감독은 국수·민족 색채를 빼려고 노력했다"며, "오히려 여성주의 시각이 있으며 꿈꾸는 자와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화 속의 박경원은 일제시대 촌에서 평범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 집도 평범했다. 부모는 여자라고 학교도 보내주지 않았다. "여자는 사람도 아니에요? 나도 학교 보내줘요." 울부짖던 박경원은 우연히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본다. 그리고 꿈을 품는다. 나도 저렇게 하늘을 날고 싶어.

박경원은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비행 학교를 다니고, 비행기를 탄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처지라, 스스로 일해서 번 돈으로였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이 영화가 박경원의 친일 행적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은 것은 맞다, 그렇다고 박경원의 친일 행적을 미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영화가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삶을 빌어 어떤 보편적인 원형의 인물, 꿈을 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가 친일을 미화했다기보다, 쓸쓸한 자조 같은 것이 묻어난다고 했다. 식민지 시대, 결국 제국주의 국가에 기생하지 않고서는 개인주의자조차도 자기 운명을 다스릴 수 없다는 데서 올라오는 자조 말이다.

"비행 하나만 생각했지, 박경원이 언제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구분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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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조선인 후원인을 구하려던 박경원의 꿈은 스러진다. 영화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상상은 가능하다. 1920·30년대다. 일제시대, 조선 말기다. 여자가 비행기를 타겠다는데, 어느 조선인 갑부가 선뜻 돈을 댔을까? 지금도 여자 비행사는 드물다.

일본인이 주겠다는 돈으로 비행기를 탈까 말까 고민하는 경원에게 애인인 지혁(김주혁 분)이 냉소적으로 말한다. "비행 하나만 생각했지. 박경원이 언제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구분했냐?"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말했다. "박경원의 삶이 20~30년대 일본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다. 원하는 걸 하려고 일본에서 할 수 없이 일장기를 단 거고. 80년대 생각해 보면 되지 않겠나? 80년대 모두 학생운동을 한 건 아니잖나. 하지만 학생운동의 결실이 있고 의미 부여하는 게 우리 삶이다. 그런데 군사정권에 항거하지 않았다고 해서, 군사정권 하에서 군대가고 일을 했다고 해서 모두 찬동한 건 아니잖나."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이 영화의 비극성에 주목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거의 자살처럼 묘사된다. 영화 중반부에 박경원이 고도 상승 경기를 할 때의 모습, 그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모습과는 정반대의 잔상으로 남는다." 그는 또 말했다. "박경원이 식민지 조선의 백성이 아니었다면 자기 꿈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연>을 향한 반대 여론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청연> 안티 카페가 들어서고, 관람 거부 운동이 벌어졌다.

정권의 가혹한 검열 칼질, 지금 우리 머릿속에도?

김영진씨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고 했다. "어떤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잽싸게 <청연>을 봐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온라인 포탈을 개설한 행동이 그것"이라며, "우리 안에 검열적 사고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내재화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우리나라는 정권 차원의 검열이 가장 가혹하게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불행한 나라"라며 "한국영화가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인물을 마음놓고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이에 관한 실례도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우리 모두 그런 아픈 기억을 까맣게 잊어먹고 있는 것 같다."

올해 초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이 극장에 걸렸다. 1979년 10·26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영화는 3분 50초가 잘려 상영됐다.

김영진씨는 "리얼리티에 기초해 창작자의 해석이 들어가는 건 창작품의 운명이다"며 "팩트 그대로 그린다면 역사책 기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어떤 영화든 <패튼 대전차 장군>이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최근에는 <알렉산더>까지, 분명히 소재가 된 인물에 대한 창작자의 해석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극영화는 극영화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적 완성도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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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화 <청연>의 영화적 완성도는 어떨까?

김영진씨는 "최근 한국 스펙터클 영화 가운데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딱 잘라 말했다. "스펙터클이 볼거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룬다. 영화적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심영섭씨도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대한 시각적 경험을 이 영화가 준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펙터클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활공 장면은 박진감과 장대한 느낌을 준다"며, 내러티브가 멜로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영화 <청연>은 한 마디로 역작"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일반 시사회장에서 만난 김경미씨는 "역사적 인물이라고 해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재밌었다, 비행장면도 멋졌다, 할리우드 영화 못지 않았다"며, "가슴이 짠했다"고 말했다. 혹자는 이 영화가 "돈 제대로 썼다"고 말했다.

제작기간 2년에 95억6천만원

영화 속 누군가가 박경원에게 말했다. "혼자 벌어 학교 다니는 게 만만찮을 텐데." 그러자 박경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한 4년 걸렸죠." 보통 1년이면 마칠 학교였다.

박경원이 그랬듯 이 영화 제작도 만만치 않았다. 완성에 3년이 걸렸다. 보통 6개월이면 마칠 영화였다. 순제작비만 95억6천만원이 들어갔다. 우리나라 영화 올해 평균 순제작비는 30억원이다. 영화 제작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윤종찬 감독은 오기와 끈기로 영화를 접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는 29일 개봉했다.

<씨네21> 전 편집장이자 소설가인 조선희씨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걸 전제로 "영화가 민족혼을 지닌 민족지사가 아니라 자아를 실현한 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일각의 영화 보이콧 움직임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건 과거지향적인 애국주의지, 미래지향적인 애국을 못 하는 거다. 친일에 대한 과도한 귀착이 지금의 영화산업을 잡아먹는 꼴이다. 한국에서 100억원 들어간 영화를 잡아먹어서 어쩌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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