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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 2004년 라인업에 <피터팬>이 들어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고전을 다시 꺼내어 스크린에 복원시킨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회의적이었다.
오승은이 쓴 저명한 <서유기>만큼이나 서양의 꼬마 영웅 ‘피터팬’은 숱하게 영화 속을 누비던 캐릭터다. 더구나, ‘피터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영화라니.
<콘택트>,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등을 연출해 온 P.J.호건의 <피터팬>은 이렇듯 트레일러를 감상하지 않아도 관객들의 선입견을 더욱 공고히 만들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물론 그간 감독이 연출해 온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본다면, 한없이 따뜻하고 부담없는 ‘환타지 어드벤처’가 될 것이란 추측은 해볼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피터팬’ 시리즈의 완성본은 내 예상을 살짝 피해가는 작품이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날아오르는 웬디 일행과 피터팬의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연기를 2시간 남짓 지켜보는 일은 뜻밖에도 꽤 재미가 있었다.
왜곡된 원작을 다시 찾다
네버랜드에 살고 있는 피터팬이 태어난 지도 벌써 100년이 되었다. 언제나 아이로 남아있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수없이 많은 뮤지컬과 연극, 그리고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 <피터팬>을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데 그래?"
 | | | | | | ⓒ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 | 일단, 이 영화는 그동안 왜곡되었거나 부득이하게 축약되었던 인물들의 비중을 원작 그대로 돌려놓았다는 점에서 기존의 같은 소재의 영화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건망증 심하고 덜렁거리는 성격을 지닌 피터팬, 사랑과 모험을 즐기는 능동적인 성격의 소유자 웬디,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동시에 외로움을 못 견뎌하는 후크 선장.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피터팬>의 영향 탓인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제작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의 일방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원작을 다시 읽게 하려는 의지가 이 영화에는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피터팬에게 이끌려 동생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여주인공 웬디에 대한 부분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과거의 한없이 나약하고 수동적이었던 웬디를 기억하는 관객들이 눈을 반짝이는 것도 이 부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독은 피터팬에게 기울었던 이야기를 과감히 덜어내고 그 곳에 웬디와 피터팬의 로맨스를 채워넣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동생들에게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것을 즐기는 웬디는 네버랜드로 같이 가자는 피터팬의 제안을 듣고 따라나서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조숙한 소녀로 나온다. 즉, 이야기의 전개는 그녀가 어떻게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웬디가 피터팬의 제안을 과감히 거절했다면? 또,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떼를 쓰기라도 한다면?
은근히 도발적인 상상력을 즐기는 스필버그 감독의 <후크>가 아닌 이상, 이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이행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 | | | | | ⓒ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 | 하지만, 영화 속 웬디가 그 전에 보았던 모습과 달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영화 <피터팬>은 피터팬에게 집중되어 있던 예전 이야기 구조가 웬디-피터팬 구조로 나뉘면서 전체적인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사실, 말썽을 피워도 용서가 되었던 아이였던 자신을 벗어나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사실을 깊이 고민하는 웬디의 모습이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피터팬과 웬디가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관객이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91년에 발표된 <후크>와 이 영화를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핸드폰 없이는 못 살게 된 배 나온 중년의 피터팬과 주름살 가득한 얼굴을 한 웬디의 모습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모두가 감독의 상상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관객의 상상력을 파괴하는 일은 어찌보면 영화가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겠지만, <피터팬>을 감독한 P.J.호건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91년 작품이었던 <후크>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원작에서도 주인공들이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등장한다. 피터팬이 살고 있는 네버랜드에는 그와 같은 어린 아이들뿐이다. 피터팬을 따라온 웬디와 동생 마이클, 존도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부모님이 계신 인간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행복한 생각만 하면 마음껏 하늘을 날 수 있는 네버랜드에서 계속 살 것인가의 문제는 영화 후반부에 와서 인물들이 갈등하게 만드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 | | <후크>와 <피터팬>의 다른 점은 뭘까? | | | |
 | | | ▲ 영화 <후크> 포스터 | |  | 91년도에 개봉되었던 스필버그 감독의 <후크>는 이번에 개봉될 <피터팬>의 뒷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평소 평범한 이야기를 싫어하던 스필버그는 <후크>를 기획하면서 '피터팬이 네버랜드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상상을 토대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는 사업가 피터 베닝은 자식들이 후크에게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네버랜드로 가게 된다. 웬디는 피터의 과거를 일깨워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피터는 네버랜드에 남아있던 아이들의 도움으로 후크선장과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된다.
영화 <피터팬>에는 <후크>의 우스꽝스러운 후크선장이나, 배불뚝이 피터팬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고 웬디가 잠시 애정을 품을 정도로 매력적인 후크와 건망증 심한 꼬마 피터가 등장한다. 또, <후크>가 피터 이외에 창조된 주변 캐릭터들이 많았던 반면, <피터팬>에서는 웬디와 피터팬의 갈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점도 다르점이라고 할 수 있다. / 강현식 | | | | | 피터는 누구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웬디에게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어른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웬디는 다시 떠나야 하고, 아이들에게 ‘아빠’로 불리는 피터팬은 남아야 한다. 웬디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숙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한다. 하지만, 피터팬에게 어른이라는 존재는 후크와 같이 행복한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 나쁜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 <피터팬>은 “모든 어린이는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이다”고 한 감독의 말처럼 지금까지 이야기되지 않았던 웬디와 피터팬의 ‘성장기’를 조금은 고통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인물들이 어둡다거나 비탄에 빠지지는 않는다.
모르던 인물들아, 게 섰거라!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팬플룻을 멋지게 부는 ‘피터팬’은 1902년 J.M.배리의 소설 < The Little White Bird >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내년이 ‘피터팬 탄생 100주년’이라는 카피의 근거는 그로부터 2년 뒤인 1904년에 초연한 아동극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관객들이 모르고 있었던 원작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 이 영화가 준비한 목록은 인간적인 캐릭터들과 부담스럽지 않은 컴퓨터 그래픽,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아역배우들의 친근한 연기다.
특히, <후크>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우스꽝스러운 후크 선장의 모습이 점점 가물거리는 때를 틈타서 애초 원작자가 그렸음직한 후크 선장은 직접 작곡한 곡을 가지고 근사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가 하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팅커벨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매력적인 악당으로 나온다.
 | | | | | | ⓒ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 | 또, 왜 네버랜드에 여자아이가 없느냐는 웬디의 질문에 피터팬은 “여자아이는 너무 똑똑해서 안돼”라는 말로 간단하게 일축해 버리는 등 원작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재미난 장면들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다.
피터팬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요정 팅커벨 역의 프랑스의 신성 루드빈 사니에르는 <스위밍 풀>에서의 관능적인 모습 대신에 깜찍하고 발랄한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가지 이채로운 것은 후크 선장과 웬디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가 제이슨 아이작스 한 명이라는 사실.
뭐니뭐니해도, 영화 <피터팬>이 가진 가장 든든한 무기는 관객들의 알싸한 기억의 목록을 채우고 있는 동심의 세계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에 돌아가 ‘아, 피터팬이 이런 모습이었구나!’하는 생각으로 조카의 동화책을 훔쳐보게 만드는 것만으로 이 작품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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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31 0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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