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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생활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학교 기숙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많이 들어보았다.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또래들 사이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물론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같은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대학생들끼리의 연애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  | | | ▲ 영화 포스터 | | |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에서 등장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아파트는 바로 대학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딴 유럽연합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바르셀로나의 대학가에 모인 유럽 각 국의 학생들. 그들은 서로 공동 출자하여 시내의 아파트 한 칸을 빌려 함께 생활한다.
파리의 대학생 자비에(로망 뒤리스)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경제학 석사를 마치면 공무원 생활에 유리하다는 아버지 친구의 충고를 듣고 에라스무스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등록하게 된다. 작가를 꿈꾸던 그가 원하는 미래는 아니었으나 스물 다섯 살의 청년 자비에는 현실을 외면할 만큼 이상적이지는 않았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앞서 사랑스런 여자친구 마틴느(오드리 토투)와 일년동안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자비에로서는 가장 마음 아픈 일. 하지만 자신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 과감히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에 오른다.
배웅하는 마틴느와 어머니의 뒷모습을 끝내 외면하던 그였지만 비행기가 프랑스 상공을 벗어나면서 자비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 눈물로 인해 또 다른 연인이 생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자비에는 우여곡절 끝에 여러 국적의 룸메이트들과 아파트에서 동거하게 된다. 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프랑스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또래들의 모습. 그들과 사소한 문제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로 인해 오해도 생기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경험하게 된다.
 | | | | | |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 모두 국적이 다른 만큼 서로를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공히 연애에 대해서만큼 자유분방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자비에 역시 그곳에서 파리의 마틴느 대신 다른 여자와 뜨거운 관계를 가지게 된다. 스페인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눈물 흘리던 자비에를 유심히 보았던 안네소피(주디스 고드레쉬)가 바로 그 주인공.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그녀는 바쁜 의사남편대신 자신과 말동무가 되어준 자비에를 남자로 보기 시작한다.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한 자비에. 룸메이트들은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라며 그에게 충고하고 결국 그는 자신의 욕망을 따른다. 레즈비언인 이사벨은 오히려 그에게 여자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테크닉을 몸으로 전수해주며 여자를 즐겁게 해주라고 강조한다.
사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라틴계 특유의 정열로 낙천적인 인생관이 자리잡은 스페인. 그 곳을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의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일어나는 별거 아닌 해프닝들이 영화 내용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때문에 유럽 젊은이들의 분방한 애정행각을 전면에 내세운 단순한 코미디영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젊음과 인생을 바라보는 감독의 넉넉한 시선과 세련된 화면구성은 작품성과 유쾌함을 영화에 추가시켰다.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은 한 공간에서 어우러져 사는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을 통해 그들의 혼란과 자유를 코믹하게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스페인에 교환학생으로 갔었던 자신의 동생과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유학 갔던 감독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만든 시나리오는 다양한 문화의 충돌과 그에 따른 해프닝들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  | | | | | |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비록 우리네 정서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현재 유럽 젊은이들의 솔직하고 구김살 없는(?)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영화는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을 듯.
특히 영국인 웬디의 남동생 윌리엄의 희생정신은 최근 본 어떠한 코미디보다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비록 골칫덩어리로 자랐지만 곤경에 빠진 누나를 위해 기꺼이 미국인을 사랑해주는 그의 모습은 아직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프랑스에서는 온갖 문화가 뒤섞여 있는 가운데 모든 규율들은 무시되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 불가능한 장소라는 의미로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라는 단어가 속어처럼 쓰인다고 한다.
비록 스페인이 규율이 무시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나라로 프랑스인 들에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 시내에 100여 년이 넘게 짓고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인간의 낙천성에 기댄 그네들의 긍정적 인생관은 프랑스인 자비에가 파리로 가지고 간 첫 번째 덕목이었다.
결국 자비에는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향해 안정된 일상의 유혹을 박차고 일어난다.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젊음의 바로 그런 모습 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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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30 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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