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친다'는 말에는 때늦은 작업에 대한 나무람과 느려터진 속도감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담겨져 있다. 지난 봄 4월 25일 개봉되어 전국관객 500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이제서야 새삼 반추하는 일도 바로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늦게 출발한 자의 이득이 얼마나 있을지는 두고 본다 하더라도, 이런 실천양태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터, 살펴볼 일이다.<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이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에서 열 명의 부녀자가 강간, 살해당한 미해결 사건으로 경찰은 연인원 180만 명을 동원하여, 3천여 명의 용의자를 조사했다. 그러나 진범은 끝내 체포되지 않은 채 영구미제 사건으로 기록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야후> 검색자료 참조). 영화는 살인사건의 일지를 따라 차근차근 과거의 시간대로 옮아가는데, 봉준호 감독의 시선은 주로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던 1986년 가을부터 이듬해 가을까지의 대략 1년여 동안에 맞춰져 있다. 이 시간대는 1980년 '서울의 봄'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남한 역사상 최대의 반 독재 민주화 운동이 펼쳐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학생운동에 가열찬 불을 지핀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는 바, 그것이 1986년 6월 부천 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다. 학생들의 시위를 물리적 폭력을 통하여 강제로 억압하고자 시도하였던 폭도들의 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저지른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로 전국이 소용돌이치던 시점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시작되었다.'폭력이 폭력을 낳는' 이상폭력의 시대, 폭력을 가진 자가 정당화되고, 그것을 통하여 지배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양산해내던 시대, 그리하여 폭력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던 무한폭력의 시대, 바로 그 어두운 시대의 한복판에서 연쇄적인 강간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또 다른 측면에서 남한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불안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살인의 추억>은 이런 폭력의 재생산구조가 우리 사회 내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권의 사각지대로서 물리적 폭력과 강제를 일삼으면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첨병을 자임했던 경찰 내부의 일상화된 폭력구조는 당대의 윤리, 도덕적 잣대가 얼마나 심각하게 실종되었는지를 입증한다.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면 수사는 그것으로 종결되고, 피의자는 이내 범죄자로 규정되는 야만적인 시기를 <살인의 추억>은 고스란히 현재화한다.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백광호는 어릴 때 아버지의 무분별한 폭력으로 인하여 불구덩이에 내던져진 정신 장애자로 그려져 있다. 태안 경찰서 소속 형사들인 박두만과 조용구는 백광호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하여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한다.이들의 폭력적인 피의자 조사방식은 변태성향을 보이다 용의자로 체포된 조병순의 경우에도 고스란히 되풀이된다. 지능적인 전신구타에 이은 허공에 거꾸로 매다는 식의 고문수사는 물고문, 전기고문과 더불어 당대에 일상화된 검찰과 경찰의 사회적 폭력성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서울에서 파견된 서태윤 형사는 물리적인 폭력에 의존하는 이런 노골적인 고문수사를 비웃는다.그러나 사건이 미궁에 빠진 채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서태윤도 피의자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폭력과 고문수사의 유혹에 서서히 하지만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공장 노동자이며, 인텔리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박현규를 분명한 범인으로 지목한 그는 여중생의 처참한 강간살인 현장에서 박현규의 자취방으로 달려와 끝 모를 폭력을 행사한다. 권총까지 발사하는 그의 행위를 말리는 박두만의 표정에는 동정과 연민 그리고 동료로서의 연대의식이 교차한다.<살인의 추억>에서 폭력의 순환에 대한 영화작가의 시선을 보여주는 백미는 백광호를 둘러싼 등장인물들 사이의 선명한 대결관계이다. 박현규를 수사하던 중 습관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조용구를 신동철 수사반장이 호된 발길질로 단죄한다. 조용구는 그 길로 백광호 부친의 선술집에서 소주로 쓰린 속을 달래다 '문귀동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게 된다. 때마침 술집에서 이 장면을 같이 보게 된 대학생들이 형사와 경찰의 무지막지한 야만적 폭력성을 비난하자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그들에게 주먹과 발길을 날린다.대학생들의 폭력적 대응과 그 과정에서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백광호는 달려오던 기차에 깔려 죽게 되고, 조용구는 백광호가 휘두른 각목에 박혀 있던 못에 다리를 찔려 파상풍에 걸리게 되며, 급기야 한쪽 다리 절단수술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무한폭력이 야기하는 연쇄고리가 이 장면에서 매우 구체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는 셈이다.<살인의 추억>은 피의자 -> 형사 -> 형사반장 -> 언론과 정치인으로 이어지는 유-무형의 폭력관계를 시위대와 전경들의 충돌, 권력 찬탈자들과 민주주의 수호자들의 첨예한 대결의 전면에 배치-부각함으로써, 1980년대 중반 남한 사회에 풍미하였던 전사회적인 폭력의 근저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 이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연쇄 살인범은 체포되지 않았고, 폭력정권은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1991년 강경대 치사사건까지 노태우 정권의 폭력성을 기억하시라!) 감독은 양자 사이의 본원적인 동질성과 일치를 통해 관객들이 무엇을 생각해주길 바라는 것일까? 영화의 피날레는 '사족처럼' 묻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박두만은 우리에게 대놓고 말하고 있다.<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 남한사회의 사회-정치적인 풍속도를 주도면밀하게 복원하고자 무진 애를 쓴다. 학생시위와 전경의 진압장면, 프로야구 중계와 전두환의 무한권력, 중국집 배달부와 경찰서 안에서의 자장면, 피의자 심문과정과 언론사들의 추측성 선정보도, 라디오 음악방송 등등. 이런 자상한 소품과 장면배치의 배후에는 예의 우리 식의 사실주의 영화문법이 자리하고 있다.나는 이런 문법에 순순히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이며, 따라서 영화의 상상력이 배제된 채 사건순서를 배치하고 시간적 순차성에 순응한 <살인의 추억>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살인을 '추억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우리를 반추하도록 인도하는 그런 영화를 기대한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충실한 사건일지가 아니라, 영화로 거듭 탄생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