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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女열풍, 통일 대구를 가다

북한 대만전 축구 관람기

03.08.31 21:29최종업데이트03.09.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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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대구에 와서 깜짝 놀란 것은 이른바 북녀(北女) 열풍이었다. 개미기자단은 8월 28일 오후 3시 30분 경 대구시민운동장 축구경기장에 도착하여 입장 수속을 밟고 경기장에 입장하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북한여자대학생응원단이었다. 그 맞은 편에는 대구경북통일연대가 꾸린 아리랑응원단이 배석하였고, 북응원단 옆에 달사모응원단이 모여앉았다. 또 그 사이사이에 대구시민들이 응원단이 일체가 되어 이른바 통일응원을 벌이고 있었다.

정작 축구경기는 관심 밖이었고 관람석 모두는 북응원단과 아리랑응원단이 펼치는 통일응원에 매료되어 호흡을 나누고 있는 모습에서 분단은 없어 보인다.

경기장 입장은 러쉬를 이루고 극우단체와 북기자단과의 충돌사건 여파때문인지 경비의 삼엄함이 눈에 띈다. 유난히 가족단위 응원객들이 많고 중고등학생들로 무리짓는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입장하고 있다. 시민들의 눈빛에서는 반북정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응원시 보여주는 대구시민들의 동포애적 열기는 여기가 바로 통일 대구임을 실감나게 했다.

드디어 오후4시 경기의 시작과 더불어 응원전도 불을 뿜었다. 여성응원단에서 '우리는' 함성이 터지면 이를 받아 아리랑응원단과 달사모응원단이 이를 받아 '하나다'를 주고 받는다. 다시 아리랑응원단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면 북측응원단이 '조국통일'로 화답하는 감동의 파노라마가 이 곳 동토의 도시, 보수의 굳건한 성 대구하늘을 수놓았다.

더욱 특이한 것은 기자단의 취재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기자단들은 축구경기 내용을 취재하는데 본론에는 여념이 없고 오로지 북측여성응원단 취재에 온갖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무수히 쏟아지는 기자단의 질문에 북측응원단은 약속이나 한듯이 묵묵부답이었다.

아마도 극우단체와의 충돌여파때문인지 선수단 자체가 긴장 속에서 다독거린 모양이다. 하지만 북녀들의 표정은 그 다독거림과는 무관하게 매우 밝았으며 때로는 미소로 화답하고 몸짓으로 환대하며 우리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얼굴들이었다.

끈질긴 기자의 질문에 한 북측여성이 짧은 대화로 응수했다. 림수진, 18세, 평양 연극영화대학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장래의 꿈이 무엇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림양은 "연기자"라며 살포시 미소를 띄운다.더운날씨에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라며 "우리 다시만나요"라며 응원전에 힘을 쏟는다.

화려한 군무,관중들의 북응원에 '우리', '하나', '6.15'의 카드섹션으로 화답하는 응원연출은 가히 압권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대만팀 서포터즈를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가 되는 파도타기가 벌어지고 아리랑 전통가락에 맞춘 부채춤과 동요 고향생각으로 분위기를 반전하며 손을 흔들며 관중들과 기자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하였다. 이남에서도 잘 알려진 휘파람이란 노래가 울려퍼질 때는 일반시민들도 같이 따라 부르며 뜨거운 동포애를 나누는 모습에서 남북분단은 아예 보이질 않는다.

북한과 대만의 경기는 실제로 그 역량면에서 탁월한 북한의 일방적인 경기로 전반3;0, 후반1;0으로 북한이 대만을 4;0으로 완승하며 경기를 종료하였다.북측 선수단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관중에게 감사의 손을 흔들어 댄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지며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북측응원단 앞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촬영을 하면서 북측응원단은 한껏 최고조에 올라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하며 오늘 대구시민운동장에서 보여준 동포애적 열기를 하나로 모은 듯 했다. 머리에 화관무를 쓰며 온갖 현란하고 정연한 율동을 선사하며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에게 "우리 다시 만나요"를 곱게 외치며 북측응원단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북녀의 열풍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경기장을 빠져 나갈 때 구름같이 관중이 몰리고 이에 화답하느라 북녀들도 정신이 없어 보인다. 헤어지는 아쉬움은 시민들도 북측도 매 한가지인 듯 사뭇 애절함이 묻어있다. "우리 꼭 통일해요"라는 함성의 진정성이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이날 경기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최현정(24세,계명대)씨는 "북한경기가 있는 날은 한국 경기가 있는 날보다 관중수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아마도 북측응원단이 관중을 몰고 다니는 듯 하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또 우스운 에피소드로 "지난 24일 북한경기 때 북측응원단이 오지 않았다며 일부 관중들이 환불해 달라는 소동도 있었다"는 말에서 대구가 북녀열풍에 휩싸여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같은 조에 소속되어 일하는 하숙자(56세,적십자봉사단)씨는 24일 북기자단과 우익단체간의 충돌에 대해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를 강조하면서도 "대구시민이 마음을 연 만큼 북측에서도 화통하게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며 북측에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동포애적인 마음과 자세가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애써 강조했다.

특히 이날 아리랑응원단에는 광주지역 민족민주진영의 진관스님이 승복차림으로 목탁을 치며 응원에 열중하는 모습이 관중들에게 종종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녀의 열풍에 지금 보수의 도시, 대구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면 과장일까? 체육경기를 통해 대구시민들이 그 마음의 문을 열고 도시의 분위기를 통일대구로 만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일부 충돌은 민족적인 결례이며 국제적인 흠이기는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연 대구시민들에게 그리 크게 문제되지 않아 보인다. 대구는 뿌리깊은 민족운동의 고향이었던 것처럼 서서히 통일영역에서 그 보수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북한여자축구를 관람하고 취재하면서 드는 이 북녀열풍과 통일대구의 단상은 분명 개미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2003-09-01 08:4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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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음도 대답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다. 더 좋은 민주주의와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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