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촌에서 만난 이라크 태권도 남성복 코치 ⓒ 김진석 대구 U대회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스포츠'라는 이름 아래 이념과 문화, 인종을 뛰어 넘을 수 있었던 이번 U대회는 '북한'의 참여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북한보다도 더 어렵게 참여한 분쟁 국가 및 약소국들의 소개가 등한시 돼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여러 상황과 사연을 지닌 국가들 가운데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라크 선수단 태권도 코치를 지난 28일 선수촌에서 만났다. U대회에 참가한 이라크 선수들은 유도 1명과 5명의 태권도 선수로 구성돼 태권도를 향한 이라크 젊은이들의 관심을 시사하고 있었다.현재 이라크에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종목은 다름 아닌 한국의 '태권도'. 이미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각 지방엔 90개 이상의 클럽(도장)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이렇듯 태권도를 향한 이라크 젊은이들의 열정에 연료를 공급해 주는 사람이 있다. 30년 이상 해외를 떠돌며 태권도 민간 외교를 펼쳤던 이라크 태권도 선수단 코치 남성복(57)씨가 그 주인공이다.경북 영덕이 고향인 남씨는 태권도 사범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것을 발판 삼아 태권도가 정착되지 않은 여러 국가들에서 태권도 씨앗을 뿌렸다. 그는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등 중동 지방을 거쳐 지난 7월 이라크에 이르렀다. 현재 미국에서 20년 동안 거주하며 한국 및 해외를 오가는 남씨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미국 사람이자 태권도 국제 심판 위원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전쟁의 상흔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라크에 들어가 한국 태권도의 뿌리를 내리려 한다.U대회 오기 전 열흘 정도 연습해 태권도에 도전한 이라크 선수 모두는 예선 탈락의 참패를 맛봐야 했다. 그러나 남씨는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이 태어나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로 인해 단꿈에 젖어 있다"며 "이번 U대회를 통해 이라크 선수들이 그간 몰랐던 다른 신세계(?)를 접해 무척 행복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이어 그는 "이라크 선수들이 미국 선수들을 볼 때 위축감 혹은 위화감을 느낀다"며 "모두가 원하는 평화와 화합이 진정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남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대구 U대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평가한다면?"일년만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음식도 입에 맞고 고향에 온 것처럼 만족스럽다. 대회의 주제인 'Dream For Unity'가 느껴지고 화합하는 분위기도 좋다.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진 않지만 세밀히 꼼꼼하게 준비했다는 게 눈에 보인다. 95% 정도 만족한다." -북측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 같이 지내는 소감이 어떠한가?"북측 응원단을 아직 실제로 보지는 못했는데 사람들이 칭찬하는 걸 많이 들어 궁금하다. 그 외 북측 사람들은 매일 식당 혹은 선수촌에서 종종 만난다. 바로 내 옆이나 앞에서 밥을 먹는데 처음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한참 망설였다. 솔직히 난 미국 생활을 오래해 지금도 어색하다. 어찌 보면 동족인 마음에 반갑기도 하지만 또 북측으로 돌아가 버리면 남남이 돼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다. 아직 말 한마디 못 나눠 봤지만 빨리 통일이 돼 북측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 김진석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라크 선수들의 현재 분위기는 어떠한가?"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하다. 난생 처음 참여한 국제 스포츠 무대 나들이에 들떠 정신이 없다. 이슬람 문화에 익숙해 있는 그들로선 개방된 젊은이들의 모습이 문화 충격으로 느껴 질 것이다.그간 식사하러 같이 다니면서 선수들을 도대체 몇 번씩이나 잃어 버렸는지 모른다. 서로 제 각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구경하느라 뿔뿔이 헤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그간 닫혀 있던 다른 세계를 직접 보고 느끼며 단꿈에 젖어 그들이 몰랐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특히 그들을 응원해준 한국 서포터스에게 감동 받아 대구 U대회를 즐기고 있다." -태권도가 축구 다음으로 이라크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라크에서 즐겨하는 스포츠는 축구와 태권도 정도이다. 이 두 종목의 가장 큰 공통점은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두 종목은 그냥 운동장에서 사람만 모이면 큰 돈 안 들이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당장 농구나 수영 등 다른 종목은 종목에 맞는 장비나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태권도가 재미있지 않은가? 게다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이 될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스포츠이기에 해외 무대에 호기심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이라크 국민에게 스포츠가 차지하는 위상은 어느 정도 인가?"솔직히 형편없다.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영웅 대접을 받는 축구 선수들의 운동 환경만 살펴봐도 아주 열악하다. 제대로 된 잔디 구장조차 없다. 구 정권이 스포츠 시설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해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젊은이들이 세계 소식을 접하면서 스포츠 스타가 하나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 경제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빠른 시일 내에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한다. 게다가 국제 경기를 통해 그간 몰랐던 다른 국가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기에 스포츠 스타가 다른 어떤 직업보다 각광을 받고 있다." -전쟁 후 처음 이라크 방문 시 이라크 정황은 어떠했나?"난 베트남전도 겪었고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며 그간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 이라크의 모습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나 또한 6·25를 겪으며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이라크 상황은 그 당시보다도 더 참혹하고 심각했다.사람들에겐 '과연 경제가 나아 질 수 있을까?', '후세인이 또 정권을 잡지는 않을까?', '새 정부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불안함뿐이었다." -도장을 운영하며 편하게 태권도를 지도 할 수도 있는데 왜 해외로 떠도는 생활을 선택했는가?"8살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나도 모르게 태권도에 빠져 버렸다. 난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태권도가 좋아 보급되지 않은 곳에 많이 알리고 싶었던 것뿐이다." ⓒ 김진석 -왜 하필 이라크였나?"국제 대회 심판 위원을 하면서 이라크가 출전하지 못 한다는 걸 알았다. 오래 전부터 이라크에 들어가 정식 태권도를 보급해 꼭 국제 무대에 출전시키고 싶었던 게 꿈이자 계획이었다. 근데 마침 새 정부가 들어서고 이라크의 태권도 열기가 높아 체계적으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미국 시민권자로서 이라크에 갔을 때 이라크인의 반응은 어땠나? "정말 수도 없이 받았던 질문이다.(웃음) 미국 사람도 이라크 사람도 모두가 날 의아해하며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라크 사람에게는 태권도를 가르치며 그들을 도우러 왔다고 일일이 설명하고, 미국 사람에게는 당신들이 못하는 민간 외교를 해 주겠노라 설명했다.지금은 내가 태권도를 가르치며 점진적으로 조직화 체계화시켜 국가 대표 선수까지 선발하니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 후 이라크인들이 미국인들을 어떻게 바라보나?"일단 미국이 무언가 해 줄 거라 생각한다. 이미 모두가 전쟁에 지쳐 미국을 무조건 전투적으로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게 가장 급하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 한다. 더 이상 전쟁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이젠 모두가 정말 평화만을 바랄 뿐이다. 미국이 그들에게 자유와 부를 줄 것이라는 걸 알기에 다 같이 공존하며 살기 바랄 뿐이다." -(U대회에서) 이라크 선수들이 미국 선수들을 볼 때 어떤 반응을 보이나?"아무래도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는 걸 간과할 수는 없나보다. 미국 선수들이 지나가면 나에게 '사버님! America?' 라며 반문한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앞서 있는 미국에게 위축감 같은 걸 느끼는 것 같다." -전쟁에 관한 이라크와 미국의 입장 차이를 알고 싶은데?"…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다시는 어떤 명분이든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원하는 평화와 화합이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앞으로의 일정은?"계속 이라크에 체류하면서 초등학교부터 태권도를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한국처럼 태권도를 보급화, 조직화 시킬 것이다. 태권도에 관한 이라크인들의 호기심과 열정이 강하기에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