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원엔터테인먼트관련사진보기 아직까지도 헐리우드에서는 동양계 배우들의 입지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고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헐리우드에 진출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배역이란 고작 범법자이거나 뛰어난 무술 실력을 지닌 신비스러운 존재일 때가 많다. 그것은 서구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이 낳은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한없이 미개하거나 가공되어지지 않은 ‘동양’이란 ‘원석’을 바라보는 헐리우드의 편협한 시각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비둘기, 쌍권총을 난사하는 주인공을 비추는 슬로 모션과 고속 촬영, 총을 공중으로 던져주는 장면, 플래시백으로 과거의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우삼의 ‘클리셰(영화 속에 반복되고 있는 생각이나 문구)’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주윤발도 바로 그 케이스에 해당하는 배우가 아닌가 싶다.홍콩 느와르의 부흥을 이야기했던 영화 <영웅본색>으로 오우삼의 ‘페르소나’로 떠오른 주윤발은 먼저 진출해 있던 성룡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이나 다른 동양계 배우들이 특기로 내세운 현란한 무술 실력을 스크린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 이상의 그 어떤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오우삼이 제작을 맡은 영화 <방탄승>에서 고독한 ‘아웃사이더’에서 90세의 노인 연기까지 선보이면서까지 끝 간 곳 없이 추락하는 평범한 ‘무명승’으로 분한 배우 주윤발을 발견할 수 있다. ⓒ 태원엔터테인먼트관련사진보기 티벳의 고승들에 의해 수 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두루마리에는 누구나 읽기만 하면 엄청난 영생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비기가 담겨져 있다. 두루마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까지 버린 무명승(주윤발 분)에게 내려진 마지막 임무는 60년 안에 반드시 다음 후계자를 찾아 안전하게 두루마리를 전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두루마리를 차지하기 위한 독일군들이 쏜 총에 맞은 무명승은 수 천 길 벼랑 아래로 두루마리와 함께 떨어진다. ⓒ 태원엔터테인먼트관련사진보기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미국 뉴욕. 두루마리를 탈취하려는 무리들을 피해 후계자를 찾아 나선 무명승은 지하철에서 소매치기인 카(숀 윌리엄 스콧 분)를 만나 함께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해준다. 고대의 예언과 자신의 믿음에 따라 카가 자신의 후계자임을 직감한 무명승은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임무를 완수하려 한다.영화 <방탄승>에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와호장룡>에서 선보였던 부드러운 움직임을 현대로 불러들여 역동적인 시각 이미지로 결합시켰다. 소매치기 카와 쫓기는 몸이 된 무명승. 달려드는 무리들을 피해 공중으로 솟구쳐 차 위로 올라선 그는 주워든 쌍권총을 마음대로 부리며 어김없이 전성기 시절의 ‘느와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공허한 액션만 남고 이야기는 저만치 흘러가 버리는 것이 문제다. 그가 수행해야 할 마지막 임무는 후계자를 찾아서 두루마리의 절대 권력을 전해주는 일. 영화를 관통하는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소매치기를 만나서 오로지 자신의 직감만을 믿고 후계자임을 지목한 무명승 앞에 더 이상 개연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96년 미국으로 보무당당하게 입성한 오우삼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다시 한번 주윤발과 손잡고 의기투합했지만, <방탄승>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에는 과거의 화려한 ‘검무’는 온데간데 없는 평범한 ‘B급 영화’가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밋밋한 캐릭터들의 불완전한 위치는 오히려 그들이 세운 ‘전설’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 ⓒ 씨네서울관련사진보기 돌이켜 보면, 지금껏 서구 사회가 동경해 마지않았던 동양의 모습은 콜롬부스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지팡구(일본)’의 세계를 현대에 현현시키려는 의지가 가득한 것이었다.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동양의 의식체계를 지배하는 사상을 다양한 그릇 안에 담아낸 영화들은 하나같이 세계적인 관심으로 탈바꿈했다.그것은 누구보다 동양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 헐리우드에 진출했을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 <방탄승>을 보고 관객들은 이러한 점을 꼬집어 낼 줄 알아야 한다. 더구나, 바바리코트를 입고 쌍권총을 든 채 바람 부는 거리를 걷는 배우 주윤발의 모습을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티벳 승려를 연기한 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편하다. 오는 9월 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