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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인양 차분히 장마비가 내립니다. 이런 날이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추억의 장소로 옮겨갑니다. 오랜만에 비디오 한 편이 생각나 다시 보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작은 골목에 그리 많지 않은 비디오와 VCD가 진열된 곳엔 몇 몇 사람들이 영화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신작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았지만 모두가 어설픈 웃음이나 싸늘한 무서움을 유발하는 영화였습니다. 무서운 영화는 사십이 되어 가는 이 세월에도 여전히 꿈 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볼 생각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찾던 영화는 없고, 결국 드라마 류를 보다가 제법 긴 제목의 영화를 뽑아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돌아가심이 아직은 낯설은 저에게 목이 메이고 코끝이 매워오는 것은 비가 부르는 추억 때문이나 봅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희미합니다. 아마도 가난한 생활상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어두운 화면 속에 세 식구가 희미하게 보이고, 무거운 침묵을 깨고 아버지의 중대발표와 함께 낡은 프라이팬이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프라이팬을 돌려 진학을 결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시와가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시와 앞으로 프라이팬 손잡이가 가지 않았다해도 시와가 학교를 갔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 때와 비슷한 정서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시와는 이렇게 누나의 희생을 먹고 어렵다던 고등학교까지 입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고등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고서 아버지가 중풍에 걸립니다. 누나도 시집을 가버린 상태에서 아버지는 시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살 기도를 하고, 시와는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합격통지서를 버립니다.
하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는 듯 합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학교에 갔지만 이젠 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시와는 이제 아버지를 업고 학교에 갑니다. 시와의 앞날을 격려하는 듯 황토 강을 비추는 아침 햇살은 그 어느 날보다 더 찬란합니다.
비슷한 점 찾아 추억 불러들이기
이 영화는 우리나라 1960,70년대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마치 그 시절 몇 가구 살지 않는 농촌마을을 연상케 합니다.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보며 우리나라의 그 때를 불러보려고 합니다.
첫째, 은근히 남녀 차별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일찍 아내를 잃은 석대(시와의 아버지)에게 시와는 누나와는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것을 내리사랑이라고 하나봅니다. 누나는 진학의 꿈이 닫힌 채, 어느 날 얼마의 돈으로 식탁에 남습니다. 돈에 팔려 시집을 간 셈입니다. 입 하나 더는 일은 딸을 잃은 애잔함보다는 시와의 등록금을 내는 일이 더 가치롭다는 듯.
더 애잔한 것은 누나의 너그러운 마음씨입니다. 차라리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초등학교 졸업만으로도 감사하며 동생의 진학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은 아마도 교육 탓이 아닌가 합니다.
둘째, 프라이팬을 돌려 진학을 결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궁핍한 생활상은 물론 아버지의 무능함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당합니다.
별다른 기술 없이 그저 옥수수 밭을 일구고 이장네가 트렉타를 이용해 밭을 갈 때도 소를 이용하여 밭갈이는 하는 석대는 그 마을에서도 얼마나 빈곤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와가 전국화학경시대회와 고등학교 입학은 그 귀한 담배를 동네사람에게 기꺼워하며 권할 수 있게 합니다. 가난하지만 자식이 마을을 빛내고 집안을 빛냈음으로 - 누나의 희생이 깔린 길이지만 -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때만해도 의사나 검사는 고부가가치를 가져서 자식이 사법시험이나 의사고시를 통과하면 집안의 아버지나 식구들이 모두 의사나 검사가 됩니다. 지금까지도 동일시현상은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학교에 가는 일은 학력상승은 물론 가문의 영광을 위한 발판이 아닐까 합니다.
온갖 시름을 다 잊게 하는 자식의 명예는 곧 아버지 석대의 명예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중풍으로 쓰러진 석대는 아버지의 무능함의 극치에 달하고 시와의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결국 시와의 등에 업혀 학교에 가게 됩니다.
대학시절 초등학교를 3년이나 뒤에 다닌 동기가 있었습니다. 6형제 중 둘째였는데, 첫째만 학교에 가서 그 뒤부터는 소여물을 주고 풀 뜯기는 일이 다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다못한 어머니께서 한 돈 금반지를 팔아 고등학교 입학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까지 속옷이 허름해도 보이지 않는다며 웃으시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석대의 모습은 다 내어주고도 부족함을 느끼는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셋째, 흙탕물이긴 하지만 강물은 생과 사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강물의 존재가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 보여줍니다.
비가 오는 날 비닐을 덮고 강을 건너려던 시와 앞에서 우산을 쓰고 강을 건너던 같은 반 친구가 강물에 휩쓸려 죽은 것을 보고 3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습니다. 하지만 무서워서 강물을 건너지 못합니다. 이 때 아버지는 학교만은 가야한다며 시와를 업고 강을 건너 줍니다. 그런가하면 강물은 지금의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의 다리입니다. 무궁무진한 시와의 앞날을 예견해주는 통과의례로 보입니다.
넷째, 누나의 존재입니다.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존재로 무능력한 부모대신 가정에 경제적 이바지를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늘 따뜻한 만두와 신발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줌으로써 시와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잠재우며 때론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결국 시와는 누나의 희생을 먹고 자라며 성장하는 제2의 누나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식구가 많은 집에선 아들이 우선 시되어 기득권을 차지했고 그 아들 중에서도 큰아들이 우선적으로 집안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출세 후엔 늘 남은 동생들의 희망이 되어 집안을 빛낼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혜택을 받고도 기대하는 바에 못 미치면 많은 갈등을 겪게 마련이었으므로 반드시 출세해야하는 당위성이 부여된 존재였습니다.
다섯째, 선생님의 존재입니다. 감히 존경하옵는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가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매일 산수 쪽지시험을 냈습니다. 속도전이라 25문제를 빨리해서 다 맞으면 먼저 집에 가는 거였는데, 늘 맨 먼저 집으로 가는 걸 지켜보셨는지 어느 날 조용히 저를 불렀습니다. 70년대 중반 한창이던 주산학원에 등록하라는 거였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선생님은 며칠동안 쉬는 시간마다 불러서 설득을 시켰습니다. 재능이 있는 지보다 학원비가 걱정인 것을 안 선생님은 어느 날 내 손을 잡고 동네 주산학원에 앉히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돌아간 후 저는 그냥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요새로 치면 저의 잠재능력을 알아채시고 발달시켜주시려는 배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로 이 영화의 고 선생님이 그런 분입니다. 전국 화학경시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하라며 참고서와 함께 대회 비까지 (시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위해 차용증을 받지만 이내 찢어버림) 잊지 않는 감사의 선생님. 진정한 선생님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시와에게 고 선생님은 아버지가 경제적 버팀목이라고 했을 때, 정신적 버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의에 빠진 시와를 위해 큰 소리로 시를 함께 읊조리는 선생님은 시와의 삶에 끊임없는 동기부여와 함께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불을 지펴주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섯째, 이장을 비롯한 동네사람들의 사랑입니다.
자신들의 일은 아니지만, 이들의 따뜻한 마음은 어려울수록 돕고 살자는 우리 내 인심과 다를 바 없습니다. 시와의 고등학교 입학이 마치 자신들의 기쁨인 양말입니다.
일곱째, 1960,70년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소재가 많이 등장하여 토속성과 함께 따뜻함과 아쉬움, 그리움을 불러옵니다.
신발이 닳을까봐 목에 걸고 다닌다거나, 비닐 연을 날리며 흙길을 뛰어논다거나, 작은 일에도 마치 자기 집의 일처럼 모여 서로 돕는 모습,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여교사가 아이를 학교에 데려오는 일이나, 선생님이 없을 때 개구쟁이로 돌변하는 아이들의 모습.
이 모두가 옛 추억의 소재들입니다. 애잔한 눈망울 위로 켜켜이 쌓이는 추억의 목소리들, 오래된 사진 속에 사는 친구들의 부스럭거림이 그리운 날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현실성이 강하며, 감동이 더한 것 같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족의 중요성과 ‘아버지’의 존재 가치와 어떻게 삶을 꾸려 가야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줍니다.
실제인물 이용(당시 18세)은 현재 감숙영양 사범학교 3학년(영화가 상영된 당시)에 다닌다고 합니다.
햇살 생각
영화 보는 내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에서 연상된 탓도 있지만,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모습이 가끔씩 비춰지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구두를 만지시던 아버지는 다른 아이들이 운동화를 신을 때 유난히도 빨간 구두를 제게 신기셨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겠다며 손으로 댈라치면 닳아질까봐 걱정도 되고 우쭐해지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시와는 어쩐지 이런 기억을 갖지 못한 듯 합니다. '천국의 아이들'에서 보여지는 아버지와 가난한 생활을 보며 스스로가 초연(?)해지는 아이들에서처럼, 이 영화에서 기쁨이나 슬픔에 그리 많은 감정 표현은 없습니다.
이렇듯 시와의 성장을 보고 흐르는 '강물(황토강)'은 늘 잔잔합니다. 물론 물살이 거세져 사람들의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강의 속성일 뿐 아버지 석대의 사랑의 깊이를 잴 수 없듯이, 석대 또한 가난에 대한 낙심은 없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겸허히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며 훌쩍 커버릴 시와의 키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의 잴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느껴봅니다.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당신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나 또한 부모가 되었을 때 아낌없이 내놓겠노라고 다짐도 한 번 해봅니다.
아직도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늘 흐끄무레한 강물(황토물이기때문도 있지만) 위로, 아들 시와가 업은 아버지 석대 등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을 보며 뗄레야 뗄 수 없는, 헤아릴래야 헤아릴 수 없는 그래서 말없이 통하는 마음의 문자를 새겨봅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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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01 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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