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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인간의 욕망이 부르는 자연의 투쟁의지

03.04.30 22:01최종업데이트03.05.0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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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성 라퓨타>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는 이미 <원령공주>로 한국의 재패니메이션 (재팬 +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제목은 외국영화의 원제에 나날이 익숙해져 가는 젊은 관객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일본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들에서 사건의 주요한 동기는 대개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며, 영화작가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야기하는 파국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를테면 끝 모를 권력욕으로 인하여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하늘의 성' 라퓨타에 내재되어 있는 '실락원'의 함의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모노노케 히메>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을 대표하는 숲의 수호신 '시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형태의 투쟁과 각축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를 이룬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시보다 산과 아시타카에게 훨씬 큰 하중을 부여하는 바, 이것은 자연과의 공존을 주장하면서도 이야기의 기본적인 틀을 인간중심으로 설정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런 구성은 강렬한 욕망으로 무장된 인간군상과 그들로 인하여 피폐되고 유린되는 자연과의 대비를 통하여 어떻게 인간이 지속적으로 자연을 파괴해왔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영화작가의 의도에서 출발한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우리는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여러 관계와 그것들의 상호충돌 혹은 화해의 과정을 지켜본다. 북쪽 끄트머리 에미시족 마을의 부족장 후계자 아시타카는 재앙신으로 변해 버린 멧돼지를 죽인 대가로 오른팔에 저주의 상처를 안은 채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다.

용감하고 총명한 아시타카는 저주받을 운명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그 운명의 정수리로 돌진하기로 결정한다. 그의 이런 결정으로 우리는 지극히 다채로운 인물들과 동물, 숲의 정령 코다마와 여러 자연신들과 만나게 된다.

그런 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늑대소녀 산이다. 핏덩이였을 때 부모에게 버려진 산은 실제로 늑대에게 양육된 여자아이들인 '카마라'와 '아마라'를 떠올리게 하며, 혹은 로마의 전설적인 건설자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늑대의 신 모로에게 키워져 모로를 엄마라 부르는 산에게 인간은 그저 악취 풍기는 사악한 존재이자 자연의 파괴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아시타카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산은 모로를 공격하여 서서히 죽어가도록 만든 제철마을의 지배자 에보시에게 복수하려 절치부심한다. 여성 해방자로 드러나 있으며, 강력한 여성성을 구현하는 에보시에게서 우리는 자연스레 아마존족의 용맹한 여전사를 상기한다.

따라서 <모노노케 히메>에서 우리는 산을 중심으로 한 자연의 세계와 에보시를 중심으로 한 인간의 세계, 그리고 그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드는 아시타카의 세 집단이 보여주는 직접적인 대결과 갈등 및 충돌을 대면한다. 이들 집단을 묶는 근본적인 동인은 '욕망'이라 불리는 매우 원초적이며 강렬한 감정이다.

남녀가 평등한 제철마을의 영리한 지배자 에보시가 꿈꾸는 자연정복과 영생불사의 상징인 시시의 목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욕망, 산과 모로, 나아가 옷코토누시로 대표되는 멧돼지들의 인간을 향한 복수의 욕망, 화해와 상생을 모르는 두 세계의 대립관계를 종결하고 산과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아시타카의 열망.

그런 욕망들의 분출을 대자연과 그곳의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지배자인 시시 신은 더러는 부드럽고 인자한 시선으로 더러는 슬픔과 분노의 폭발로 대응한다. <모노노케 히메>의 피날레 장면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시 신의 광포함은 인간의 무한욕망이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끝 모를 재앙을 눈부시게 상징한다.

밤이 되면 데다라 신으로 변신하는 시시 신은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를 떠올리게 한다. 지상의 죽음과 탄생을 상징하는 여신의 두 가지 모습을 <모노노케 히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용했다고 여겨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거목들은 -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라퓨타가 의지하고 있는 거목이나, <이웃의 토토로>에 등장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를 연상하시라 - 북구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이그드라실'의 변용에 다름 아니다.

매우 오랫동안 인간과 자연, 인간과 과학기술문명의 상호관계를 통찰력 있는 눈길로 포착해온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에서 매우 일본적인 요소를 인물들과 풍습과 의상과 건축에 부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본래적인 보편적인 메시지, 즉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화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통해 20세기 후기 산업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통렬히 비판하고, 자연과의 교감과 인간적인 겸애를 끈질기게 주장해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설득은 세기가 바뀐 이 시대에서도 그 당면성을 여전히 담보하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그와 그의 영화들에 고유한 미덕이자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2003-05-01 10:4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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