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스터 ⓒ 화인커뮤니케이션 남자는 마흔 둘. 여자는 서른 아홉 살이다. 저 무렵의 심리가 어떠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대개의 남녀들이 아버지 혹은 남편, 어머니 혹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시기라는 것과, 그 시기에 겪는 개인의 심리적 갈등이 단순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뿐이다.남자는 전화를 받고서 초상집에 있다고 꾸며댄다. 여자는 내내 불안한 표정이다. 서로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남녀의 만남은 서해안의 작은 포구 월곶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진행된다. 각자의 부인과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녀를 의심하겠지만 그 의심이 남녀의 만남을 방해하지는 못했다.영화는 롱테이크로 일관한다. 카메라는 제자리에 서있거나 시선을 돌리는 정도의 소극적인 움직임 밖에 없었다. 아예 고정된 화면, 멈춰있는 배우들, 대사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실험적인 영상이었다. 모니터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여자는 남자에게 대학시절 연애를 많이 해봤냐고 묻는다. 제대로 된 연애는 한번밖에 해보지 못했다고 남자는 답한다. 성공했냐고 되묻는 여자. 남자는 깨졌다고 말한다. 다시 남자는 여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땠느냐고?남녀 모두 중매결혼을 했다며 서로에게 공통점을 찾는다. 여자는 어머니의 반대로 사귀던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중매로 만난 남자와 2개월만에 결혼했다며 아주 가끔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 영화의 한 장면 ⓒ 화인커뮤니케이션 정사를 끝내고 야식을 시켜먹는 장면에서 그들은 위와 같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비빔국수를 먹는다. 각기 가정을 둔 생면부지의 남녀가 어떻게 만나 몸을 섞게 되었는지, 그 기분은 어땠는지 직접적인 말들은 없었다. 하지만 대사가 지닌 공백을 통해 두 남녀의 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두 주인공들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일상은 이끌어 내지만 마음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그 소모적인 대화들이 <낙타(들)>이 지닌 미덕이었다.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와 경계심, 그 경계의 허물어짐과 자괴감,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합리화와 죄책감이 대사의 행간 속에 묻어 있을 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 숨김의 미학이 영화의 격을 높게 만들었다.주인공들의 호연과 어우러진 화면은 마치 실제의 현장을 엿보고 엿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뻔뻔하거나 욕망에 불타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어색하고 조심스런 불륜과 흑백 화면은 영화의 대중성을 거세시켰지만 대신 영화의 리얼리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 영화의 한 장면 ⓒ 화인커뮤니케이션 담백하고 심심한 풍경들은 섬세하고 과장이 없었다. 지루한 영화라는 세간의 평가가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끝내 극적인 상황은 나오지 않고 크레딧이 올라갔다. 착한 사람들의 일탈을 비난하기란 괴로운 일이다. <낙타(들)>은 그런 영화였다. 마땅치 않지만 연민이 솟게끔 하는 영화. 주인공들의 모순된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심리에 동조할 수 있도록 차분히 설득하는 영화. 그것은 이분법을 요구하는 윤리적 판단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그 혼란이야말로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본성을 성찰하도록 만들어준다. 그 성찰의 힘을 <낙타(들)>은 가지고 있었다. 중년 남녀의 불륜이라는 선정적 소재는 단지 도구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