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옥님의 '언제까지 축구 한일전인가' 기사를 보고 그동안 한국축구가 달려왔던 길을 잠시 생각해봤다. 열악한 투자와 시설 속에 헝그리 정신으로 기억되는 한국축구는 그동안 험난한 여정 끝에 지난해 월드컵 4강이라는 업적을 거두었다. 비록 세계 축구의 높은 벽에서는 처참히 무너져왔지만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해왔다. 그런 한국에서 도전장을 내민건 일본이었다. 막대한 투자와 선수육성으로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온 일본은 한국축구를 무섭게 위협하며 일각에서는 급기야 '일본이 조직력과 기술면에서 한국보다 세련된 축구를 보여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물론 한일전에서 역사적인 감정은 분명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게 어디 축구에서만 해당되는 일인가? 축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목에서도 '한일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상대와의 경기보다 국민의 관심과 승부욕을 자극한다. 그중 축구는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고 가장 '전면전'에 근접한 스포츠라서 더욱 그 결과에 집착되는것이다. 흔히들 하는 말로 축구는 전쟁이라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은 비단 우리에게만 한일전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네덜란드 국민은 한일전을 능가할 정도로 유난히 독일전에 집착한다. 그 이유는 분명 두 나라의 역사적 감정에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학생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유럽에서 가장 싫어하는 국가로 독일을 꼽았다고 한다. 이런 감정은 축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네덜란드-독일뿐만 아니라 영국-프랑스, 영국-아르헨, 이란-미국, 온두라스-엘살바도르 모두 역사적 감정(대부분 전쟁이나 식민지사)에 의해 다른 경기보다 더욱 국민들이 관심과 지지, 비판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런 감정이 훌리건 사태나 무차별적인 비판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런 라이벌 의식이 내부적 결속과 기량 향상에 자극을 주는 호재가 될 수도 있다. 한때나마 부진을 거듭하며 도태될 뻔했던 한국축구에게 이웃나라 일본의 과감한 투자와 성장, 선진적인 축구정책 등이 큰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세계 청소년축구에서 일본이 파란을 일으키며 준우승을 차지할 때 우리는 한국의 열악한 유소년 시스템을 비판했다. 94 미국월드컵 진출에도 불구하고 한국대표팀이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던 건 라이벌전에서의 패배와 함께 자력진출이 아닌, 마지막까지 다른 경기의 득점상황에 의해 기적으로 불릴만큼 어렵게 월드컵 진출에 성공해서이지 않나 싶다. 자국 대표팀이라 해도 패배나 부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격려만 받을수는 없다. 이는 세계 어느 대표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2001년 벌어졌던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0:5로 참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응원을 한 붉은악마들을 의아하게 여긴 건 오히려 프랑스 기자들었다. 만약 프랑스팀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관중들은 이미 자리를 떴거나 난동을 부렸을거라는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럴 때 대표팀에게 비난이 아닌 비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때 일찌감치 조 1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벌어졌던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0:2로 무기력하게 패했지만 국민들은 그리 개의치 않고 이제 월드컵 본선 16강을 준비하자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월드컵 4강이란 신화를 일군 한국은 이미 세계무대 목표로하며 예전처럼 한일전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다.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이 16강이 아닌 결승에 진출했었더라도 국민들은 한국대표팀의 4강이라는 성적에 비난보다는 갈채를 보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중동국가나 중국과의 경기보단 역사감정과 라이벌 의식이 발동하겠지만 그건 치욕적인 식민지사에서 비롯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이제 일본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은 예전보다 현저히 없어졌다. 혹시 미국은 몰라도 말이다. 그런 국민들의 집착에는 '한일전'의 흥행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언론과 축구계의 바람몰이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한국은 4강을 토대로 세계무대에서 축구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게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축구계에서 아시아의 입지를 높이기 위한 우리의 파트너이자 라이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