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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화 돼버린 홍콩 영화의 부활 꿈꾼다

영화 <무간도>

03.01.30 12:24최종업데이트03.02.0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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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극장가에는 홍콩 영화와 그 외의 영화가 상영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비디오 플레이어의 대량보급과 더불어 극장가의 홍콩 영화 열풍은 각 가정은 물론 학교에까지 파고 들어가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소년 소녀들의 판타지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스라히 추억의 한 켠을 물들였던 홍콩 영화는 수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그랬다더라” 라는 식의 구전을 통해서 겨우 그 전성시절의 무용담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거나, 불명예스럽게도 한국 코미디 영화의 산발적 자기복제에 따른 우려를 나타낼 적에 “영화 이렇게 만들면 홍콩처럼 망한다”식의 비교 사례로만 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2003년 초 개봉을 준비중인 <무간도>라는 작품을 보면 마치 10년 전 홍콩 느와르가 기억 속으로 화석화되기 전의 현존했던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렇다면 진정 홍콩영화는 '무간도'라는 구원을 통해 부활을 이룩한 것인가?

영화 <무간도>는 경찰내부로 잠입한 조직 스파이와 폭력 조직으로 침투한 경찰 스파이의 엇갈린 운명을 다룬 영화이다. 타인의 자리를 자신이 위장해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쉽지 않을 터 그러한 심리를 홍콩베테랑 배우인 유덕화와 양조위는 훌륭히 연기한다. 특히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유덕화의 명품연기는 그를 기다려온 수많은 팬들에게 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정도이며, 이미 개봉한 <영웅>에서도 증명되었듯이 홍콩 남자 배우 중 가장 활발한 연기활동을 하고 있는 양조위는 예전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수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실케 한다.

유덕화가 연기하는 경찰로 잠입한 조직스파이 유건명과 , 양조위가 연기하는 조직으로 위장한 경찰스파이 진영인은 서로의 정체를 알고 나서 상대방을 향해 총을 겨눌 수는 있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의 대체 자아의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멋진 설정의 영화는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 오프>에서도 만들어진 바 있지만, 이 <무간도>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이런 두 인물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 가는 과정을 숨막히는 ‘서스펜스’로 연출한 것이다.

영화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지는 것과 영화 속 인물은 모르지만 10분 후면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정보를 관객에게만 살짝 공개한 후 진행되는 영화는 그 심리적 충격이 현격히 다르다.

전자의 심리적 충격을 서프라이즈 후자를 서스펜스라 하는데, 영화 <무간도>는 유건명과 진영인이 서로의 자리를 위장한 스파이를 찾아내는 과정을 기가 막힌 서스펜스의 향연으로 승부를 걸었다.

만약 다른 연출자라면 반전의 쇼크를 위해서 두 인물이 위장스파이라는 정보를 꼭꼭 숨겨두었다가 후반부에 노출시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겠지만, <무간도>의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그러한 알짜배기정보를 관객들에게 투명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관객들만 알고 오직 두 인물들은 모르는 그 깜짝 놀랄만한 진실을 찾기 위한 진실게임을 서스펜스로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외에 유덕화의 보스역할을 맡은 증지위와, 양조위를 위장침투시킨 경찰서장을 맡은 황추생의 연기 대결도 상당히 볼만하다. 마치 칭얼대는 아들을 달래는 아버지처럼 위장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양조위를 위로하고 감싸 안아주는 황추생의 모습은 인자한 아버지와도 같고, 무경계의 혼돈을 거부하고 선택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유덕화를 견제하다 오히려 자신이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증지 위의 연기는 이 영화가 얼마나 튼튼한 캐릭터와 내러티브로 무장했는지를 입증한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는 이 무경계의 ‘무간도’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두 인물의 고군분투는 홍콩영화의 정체성과도 일맥상통한다. 그간 혼돈의 나락에 빠져들어 “홍콩영화처럼 하며 망한다”식으로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뛰어난 연출과 훌륭한 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은 이 <무간도>로써 명실공히 기억 속에만 잠식하던 홍콩영화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과거 전성기의 부활까지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들어 준다.
2003-01-30 15:3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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