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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간첩>은 남과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한 인간의 내면갈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두 체제 사이에서 갈등하고 버림받는 것 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평에 있어서도 찬성과 반대 둘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것처럼 보인다.
기자시사회장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상영시간 내내 숨 졸이게 만들었건 혹은 숨 졸이지 못하고 한석규의 자취만 좇았건 간에 마지막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의 테마로도 쓰였던 바하의 '마태수난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끝맺는 클로징 이후 사람들은 오랜만에 공들인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냉담하다. 조선일보의 이동진 기자는 최인훈의 [광장] 이후 식상해진 소재가 <공동경비구역 JSA>의 전진마저도 거꾸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내렸고, Film2.0의 김지훈 기자는 윤수미(고소영)라는 캐릭터가 허물어지면서 첩보영화에서 멜로드라마로 자리바꿈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그렇게 비난받아야 할 영화는 아니다. 저널들에서는 칭찬의 미덕이 사라졌거나 혹은 눈높이가 너무 높은 관객의 탓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의 장점이 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우선, 소재의 식상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피아니스트>에 쏟아지는 찬사는 어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한창인 지금 아무리 로만 폴란스키의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유태인을 일방적으로 옹호한 이런 영화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다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는 꽤 완성도 높은 영화이다. 마찬가지 논리를 <이중간첩>에도 적용하자면, 소재의 식상함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다.
<공동경비구역 JSA>에 비해서 덜 진보적인 영화라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영화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이중간첩>은 그 시대성을 살리고 있을 뿐이다. JSA가 2000년을 다룬 현재의 영화라면 이 영화는 과거를 반추하는 영화인 셈이고, 따라서 굳이 80년대를 다루면서 21세기 평화무드를 집어 넣는 오버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똑같이 남북상황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다차원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단순한 발상이다.
첩보영화가 멜로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해서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지금 딱딱한 80년대 공안물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공안물이라는 것이 현실을 그저 두리뭉실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이기에 철저히 정치물로 간다면 오히려 시대묘사가 더 정확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빨리 방향전환을 해야 했다.
<이중간첩>의 로맨스는 제대로 그려지지는 못했지만, 적확한 위치에 삽입되었고, 영화를 끝내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진지한 영화에 로맨스가 들어가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지하지 말아야 할 때에 진지함을 강요하는 것이 더 나쁘다.
눈에 힘을 빼고 보면 <이중간첩>은 잘 만들어진 첩보스릴러물이다. 외로운 여자 윤수미가 당으로부터 버림받은 림병호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연출은 꽤 정교한 편이며, 시나리오는 무리 없이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다. 음악의 사용을 배제한 것과 꼭 필요한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유행가와 슈베르트, 쇤베르크, 모짜르트, 바하 등은 영화를 더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장치다. 더욱이 천호진, 송재호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불만인 것은 고소영 캐스팅과 외신기자,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사건이다. 고소영은 정말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시사회에서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32살의 그녀는 여전히 예쁘긴 하지만, 여전히 같은 연기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윤수미 역할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심은하의 빈 자리가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외신기자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가 건네받은 정보들을 가지고 특종을 썼는지 그가 왜 위험을 무릎쓰고 림병호를 도우려고 했는지 아무런 단서도 제공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1967년 남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탈출한 북한간첩 이수근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 설대로라면 외신기자는 허구의 인물일 것이다. 이 인물은 림병호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극적 환타지처럼 두 주인공을 구원한다.
이처럼 허구의 인물에게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신비로움을 씌우고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이것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냥 쿨한 마무리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대체 그 남미계 남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불친절함은 첩보영화가 보유해야 할 미덕일 수 있다. 또 이것이 관객에게 수수께끼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중간첩>에서 그 불친절함은 그냥 불친절함일 뿐이다. 너무나 당당하게 사건의 중간에 서서 주인공의 운명을 좌우하다가 갑자기 이야기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이중간첩>은 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어리둥절한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시종일관 쫓아다니는 한석규의 컴백작이라는 의미가 크긴 하겠지만, 단지 그 외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시한 영화는 아니다. 결국 처음에 언급했던 대로 찬성과 반대 둘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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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1-28 0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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