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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 참된 가족의 모습이란?

03.01.13 22:27최종업데이트03.01.1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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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 입양원'이라는 곳이 있다. 주로 십대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한 아기들을 입양 전까지 보살피는 기관으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는 토요일마다 그곳의 아기들을 씻기는 봉사활동에 가신다.

그곳에 갔다오실 때마다 그 어린 얼굴에도 온갖 수심이 다 들어있다고 안타까워하신다. 그러면서 특히 남자는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여러 사람의 불행을 막는 일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럴 때는 어머니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곤 한다.

▲ 영화포스터
십대 미혼모의 증가는 우리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사회 문제 중에 하나이다. 경제적 사회적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며 사회의 불안이다. 사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미혼부들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 임신의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이 지게 된다.

낙태를 해도 상처가 되고 아이를 낳아도 상처가 된다. 겉으론 즐겁게만 해 보이는 청춘남녀들의 뒷모습에는 원하지 않던 임신과 낙태 혹은 출산에 따른 사연들이 종종 숨어 있다. 다만 사회가 그 사연들을 공공연한 비밀로 간직해주고 있을 뿐.

인터넷 영화사이트를 뒤지다 <노블리>라는 영화를 발견했다. <레옹>에서 마틸다로 묘한 매력을 뿜었던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한 영화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무료상영이란다.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았지만 영화에 대한 게시판을 읽어보니 감동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감동이 괜한 찬사인지 아닌지 궁금증이 생겨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나른함이 가득 찬 휴일 오후였다.

영화의 주인공 노블리는 17살에 동거하는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다. 오하이오주의 시골에서 대처로 나가면서 노블리는 월마트 주차장에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애인에게 버림을 받는다. 돈 한푼 없고 갈곳 없던 그녀는 월마트에서 몰래 숨어 지내다가 결국 비바람이 몰아치는 새벽에 출산을 하게 된다.

공포에 떨며 출산이 임박하려는 순간 그녀를 구하는 남정네가 나타나고 그 일로 인해 노블리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 이런 저런 사연들이 펼쳐지다가 종내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해피엔딩의 영화였다.

▲ 렉시와 노블리
영화에서 노블리를 버렸다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딸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가는 어머니는 우리의 정서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여자였다. 하지만 이웃들은 그런 어머니를 둔 노블리에 대하여 부도덕한 여자의 딸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블리의 아이가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것 역시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냉소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보자면 주인공을 위한 착한 조연들이 남발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의 이웃들은 하나같이 인간적이며 선한 표정을 지우지 않는다. 물론 노블리를 놔두고 도망간 애아버지가 악역을 맡았지만 그 악역에도 휴머니티를 부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노블리처럼 십대의 미혼모가 자신의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노블리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십대의 미혼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이웃을 찾는다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혈연이 그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곤 한다. 부모의 부도덕한 행실이나 자식의 패륜적인 행동, 여기서 상호 책임과 연관을 제거하고 개별 인간 자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식보기가 부끄럽지 않도록 산다거나 부모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산다는 말들을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혈연에 대한 강박적인 인식들이 사람에 대한 편견의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내 자신 스스로가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미혼모의 자식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누가 미혼모의 자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전과 같은 눈빛으로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다 못해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만 알게 되도 그 자식들은 평생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만큼 우리는 혈연에 대한 연대책임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그 연대책임에서 일탈된 상황의 사람들을 다른 눈으로 보거나 은연중에 차별을 한다.

이 영화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불가항력적인 혈연 때문에 차별 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가족의 구성에서 중요한 것은 혈연이 아니라 정서적 유대라는 것. 즉 서로간에 솔직하고 따뜻한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바로 가족이라고 말한다.

▲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일견 문화가 다른 미국사회와 우리 사회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무리임에 틀림없다.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은 아름답지만 그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미혼모의 증가, 혈연관계의 약화 같은 모습이 일상적이라면 사람은 아름다울지라도 사회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눈여겨볼 인물은 삶에 대해서 낙천적인 간호사 렉시 이다(애슐리 슈드) 그녀는 아빠가 각기 다른 아이들의 엄마이지만 삶에 대한 긍정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풍부한 여자이다. 비록 오는 남자 안 막고 가는 남자 붙잡지 않는 그녀 자신의 성정으로 인해 크나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이내 극복하고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

노블리의 행복은 렉시에게 배운 삶의 긍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자들끼리의 연대감을 나누는 두 인물의 모습에서 우정이란 단순히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 렉시의 상처를 위로하는 노블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노블리>는 빌리 레츠의 1996년 작인 'Where the Heart is'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노블리>는 한국에서 개봉할 때 붙여진 제목. 1998년 오프라 윈프리 쇼의 한 코너인 Book Club에서 이 달의 책으로 선정, 소개되면서 전 미국의 독서가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저자 빌리 레츠는 이 작품으로 워커퍼시상을 수상하였다.

우연히 출간 전에 원작을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영화 제작자 수잔 카르트 소니스는, '결코 가족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고, 자신이 느낀 원작의 감동을 스크린에 옮겨 담기로 결정. 프로덕션을 차리자마자 곧 영화제작에 나섰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뻔한 미국찬가에 이골이 났으면서도 웅대한 스케일이라든가 혹은 특수효과의 찬란함을 확인할 때마다 곤혹스러운 감정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본의 문제라고 애써 위로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영화계도 저만큼 자본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 출연료만으로도 우리나라 영화 몇 십 편을 제작할 수 있는 현실을 생각했을 때 그 위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영화가 웅대한 스케일이나 특수효과의 찬란함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는 것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진정 곤혹스러워지는 이유이다. 미국 영화를 보다보면 의외로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영화가 적지 않다. 그런 영화들의 기저에 깔린 것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휴머니즘의 과잉분비일지라도 보고 나서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는 반응까지 막을 수는 없다.

사람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그에 따른 여운이 남는 미국 영화. 그런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훈훈하면서 씁쓸한 느낌이 동시에 들곤 한다.<노블리>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2003-01-14 09:0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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