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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이라는 영화는 한 권투선수가 권투를 시작하게 된 때부터 동양 챔피언을 거머쥐고 마지막 링에서 쓰러져 죽기까지 작은 이야기와 장면들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짜놓은 영화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간혹 흩어져 있는 이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란 역시 영화를 보는 사람의 경험이나 생각, 느낌에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
그래선지 내 뇌리를 가장 붙드는 장면은 김득구 선수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그의 약혼녀가 정말 서럽게 울며 걸어가는 장면이 아니다.비록 많은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함께 흐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동양챔피언을 따고 동료들 앞에선 그렇게 기뻐하면서도 혼자 샤워장에 들어와 연신 몸에 비누칠을 하며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있는 지도 없는 지도 모를 노래는 불러대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김득구의 모습이다. 떨어지는 수돗물과 함께 타고내리는 그의 눈물이 뿌연 김 속으로 흐려질 때이다.
김득구는 왜 울었을까?
왜 울었을까?
이것이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더이상 만나지 못해서 일까?
물론 이것만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가난한 복서로서 정말 힘들게 달려온 그의 삶을 마구 채찍질 했던 일말의 긴장이 그를 잠시 놓아주어서 일까? 고단한 자신의 삶을 깨달아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너무나도 흘리고 싶었던 눈물을 흘릴수 있는 기회가 이제야 왔다고 느껴서일까?
역시 그의 삶은 그렇게 고달펐다. 그의 힘든 삶은 곳곳에 모자이크처럼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무작정 이 버스가 어디까지 가냐고 묻고서는 버스를 타는 소년, 배가 고파 수돗물을 들이키고, 돈을 얻기 위해 헌혈을 하고, 또 무작정 올라온 서울에서 껌을 팔며 앵벌이를 하던 그.
그리고 맨몸 밖에 없는 그가 택한 복싱.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라고 한 알리와는 달리 김득구는 '복서는 미스코리아보다 거울을 더 많이 본다. 왜냐면 복싱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복싱에 바쳤고, 그리고 복싱은 그에게 좌절과 희망, 승리와 행복 동시에 죽음을 선물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김득구의 삶? 그렇다면 이 영화는 독자들에게 김득구의 삶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한 가난한 권투선수의 사랑, 성공, 죽음.
어쩌면 인물영화에서 너무나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 구성에서 어떤 특별한 메세지를 전하려 하는가? 바로 이 물음에서 나는 영화 챔피언이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교감'이라는 비가시적인 게임에서 결코 '이기고 돌아오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메시지는 그가 비록 가난했지만, 가난을 무릅쓰고 챔피언이 되었다 내지 성공했다는 진부한 모럴인 것 같기 때문이다. 언제나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 모럴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사람들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김득구의 삶 자체에 정서적으로 몰입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가 안타까울 정도로 피 튀기는 링에서 시합을 하는 장면이나, 그리고 시합에서 이긴 후 우승트로피를 거머쥐고 대중 앞에 연설하는 장면보다 오히려 게임에서 이긴 후 샤워장에서 우는 모습이라든지, 언제나 무표정하고 고달픈 삶에 찌든 김득구의 어머니가 무심하게 죽은 아들의 복싱글러브를 추수가 끝난 논에서 태우는 장면이 관객인 나의 뇌리에 더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난 그 장면들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었는 지를 지금 고민하는 것일까?
알리는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지닌 복서의 성공기이다. 하지만 챔피언은 다른 운동선수 성공기와 어떤 점이 다른가? 이 영화는 김득구의 단순 성공기 이외에도 '인생의 고달픔'내지는 '한'이라는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하려다 머뭇거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쉽다. 챔피언이 한국 관객에게 더 어필하고 단순 할리우드식 운동선수 성공기와 특히 차별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품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발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약혼녀의 꿈속에서 김득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어.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나보고 죽었다고 하지?'
그렇다. 그는 확실히 죽지 않고 돌아왔다. 그의 아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그리고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권투선수 김득구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영화를 본 정말 순수한 제 주관적 해석입니다. 많은 분들의 감상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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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9 0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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