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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승자가 모든 걸 가진다지만

희망이 있다면 우리 모두 챔피언이다

02.06.28 18:38최종업데이트02.06.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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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모든 걸 가진다는 아바(Abba)의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이란 노래가 틀리지는 않다. 승자와 승리 옆에는 초라한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건 어디서나 통하는 패자의 운명이다. 그렇다고 패자의 인생과 미래가 자동적으로 실패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 "너 팔 세 개 달린 사람 봤어? 세상에 권투만큼 정직하고 공평한 건 없어!" ⓒ 진인사필름

1982년 11월의 어느 날, 텔레비전 속의 한 복서가 링 위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 왜 안 일어나?"라고 묻는 소녀에게 "뇌진탕이란다"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그 옆에서는 승리를 축하받는 상대편 선수의 피범벅된 얼굴이 공허한 시선을 뿜어댔다. 승자와 패자가 한 화면을 나누었다. 한 화면 속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고 그 순간이 너무도 잔인해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김득구. 우리가 기억하는 그는 링 위에 쓰러진 비운의 복서였다. 그리고 그 외에 우리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미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갔기에, 패자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과 아쉬움뿐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숨겨졌던 그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패배자가 아닌 <챔피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영화의 첫 화면은 82년 미국 라스베가스, 김득구가 WBA 라이트급 타이틀을 놓고 레이 붐붐 맨시니와 일전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먹이 몇 십번을 오간 것 같더니 금세 화면은 강원도 속초의 허름한 집을 비춘다.김득구는 어린 나이로 무작정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상경해 온갖 고생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복싱경기 포스터를 보고 동아체육관에 소속되어 복싱을 시작한다.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면서 차차 복싱에 몸과 마음을 바치게 된 그는 78년 박명수 선수를 4회 판정으로 누르고 프로 선수로 데뷔한 뒤 82년 초 동양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 약혼녀 경미와는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결혼을 하기로 했건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 우리는 모두 '개'씨다. 난 개득구다!ⓒ 진인사필름

밀레니엄, 한국에서 최고의 스포츠는 축구이다. 복싱, 즉 권투는 이미 80년대 중반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온 비인기 스포츠다. 게다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김득구는 패자였다. 그는 <록키>같은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가 아니며, <알리>처럼 인종과 종교문제에 심취한 천재복서는 더 더욱 아니다. 이러한 배경과 소재로 곽경택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그 도전은 <친구>의 성공으로 들뜬 한 감독의 무모한 치기(稚氣) 정도로 보였다.곽 감독의 치기는, 그러나 무모하지 않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챔피언>이 승자와 영웅을 이야기하는 복싱영화가 아니라 휴먼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을 띠고 있는 <챔피언>은 지루한 역사적 반복보다는 세심한 삶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곳에 허약해 보이는 서민들의 현재와 몽환적인 희망이 엿보인다. 애인 경미와의 데이트와 동료 복서들과의 우정담, 그리고 '로봇 태권 브이'의 노래 등은 향수와 웃음을 동시에 불러온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유행 지난 츄리닝, 복고풍 패션, 사라진 옛 버스와 안내양, 운세를 알아볼 수 있는 겸용 재떨이, 곤로와 삼양라면, 회갈색 갱지 등은 잊혀진 복서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처럼 훈훈하면서도 고통스럽다.이 영화는 요즘의 유행처럼 상당히 복고적이며, 그 정도(程度)는 시각과 감각을 충분히 채운다. 그 접점에서 관객은 삶의 목표와 희망을 읽는다. 수많은 삶의 목표와 희망을 적어 호텔방 벽에 붙인 김득구에게 동아체육관의 김현치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건 마음에 쓰는 거다." 영화 속에서 김득구는 순수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태우는 복서로 표현된다. 그는 지구를 반바퀴 돌아 도착한 라스베가스에서 희망을 노래했지만,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패배가 희망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득구가 남긴 희망, 더 부풀어진 희망을 관객들은 감지할 수 있다.
▲ "내 남자친구는 교회 집사님이에요" 경미 역을 맡은 신인 채민서 ⓒ 진인사필름

1년 동안 권투를 배우고 액션 스쿨에서 6개월 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 유오성의 몸과 연기는 실감나며 충동적이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경미 역의 신인 여배우 채민서는 여성적인 분위기로 유오성과 부드러운 호흡을 맞추지만, 남성적인 코드가 가득한 <챔피언>에서 채민서가 불러오는 부드러움은 미미하다. 곽 감독의 예전 영화들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여주인공의 역할은 구색만 맞춰놓은 듯 형식적이다.<친구>가 가져온 만큼의 대박이나, <친구>가 불러온 반향만큼 극단적인 대중성은 부족해 보이지만, 분명 <챔피언>에는 현재 한국영화계의 일괄적인 소재와 대중적인 요소에서 탈각(脫殼)한 매력이 있다. 퀸(Queen)의 전설적인 노래 'We Are The Champions'처럼, 곽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위해 끝까지 싸워나간다면, 그의 치기, 그것이 조금 무모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챔피언감이다. 패자를 위한 시간은 없다. 희망을 품고 산다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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