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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은 80년대의 히딩크였다

'히딩크 이전'에 대한 무분별한 폄하에 대한 반대

02.06.25 23:47최종업데이트02.07.0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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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올랐다. 축구와 스포츠사를 넘어 한국사 속에서 손꼽힐 만한 대사건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어떤 정치적, 경제적 사건보다도 한국인의 생활과 정신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쾌거의 최대 공로자인 히딩크 감독은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체계적인 준비와 전술도 없이 '정신력과 투지'만 강조하던 후진성을 일거에 탈피하고 한국축구를 세계화시킨 인물. 히딩크는 바로 그런 인물로서 국민적 환호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히딩크의 업적 반대편에 세워지는 것이, 바로 이번 월드컵 4강 신화 이전까지 가장 우뚝 선 업적이었던 '세계 청소년 축구 4강 신화'의 주인공인, 그래서 지금 국가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박종환 감독이라는 점이다.

히딩크가 체계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꾸준히 과학적인 훈련을 진행시키고 선수들간의 대화를 강조해온 합리적 리더십의 지도자인 반면, 박종환은 고산지대 멕시코에서의 일전을 준비하기 위해 방독면을 씌운 채 연습게임을 진행하고 선수들에 대한 체벌과 구타까지 서슴지 않는 '무식하고', '폭력적인' 리더십의 지도자로 위치 지워지고 있다. 그래서 히딩크가 청산해낸 한국 축구의 악습의 대명사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히딩크에게서 박종환의 흔적을 읽는다. 유럽 선수들과의 기술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미드필드로부터의 압박으로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벌떼 전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주력과 체력훈련. 특출난 플레이메이커나 스트라이커에 의존하지 않는 조직력 축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지와 정신력으로 객관적 전력의 격차를 메우는 특유의 팀컬러.

투지와 정신력은 우리에게 비단 축구팀의 특성이 아니다. 만일 한국이 이탈리아처럼 단단하고 지지 않지만, 감동을 줄 수 없는 축구를 한다면 결코 수백만의 시민을 거리로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한국인의 팀컬러다. 그래서 우리는 지더라도 모든 것을 던져 도전하고 달라붙는 축구를 원한다. 그것은 승패 이전에 우리가 축구를 보는 방식이며, 의미이다.

이번 우리 대표팀이 절정의 빛을 발했던 것은 포르투갈과의 조예선 3차전이었다. 그 경기는 우리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도록 일 년 전부터 준비했던, 우리 선수들의 페이스의 최고조기에 벌어졌다. 그리고 기대 밖에도 비기거나 혹은 적당히 지기만 해도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이기지 말아야만 조 2위가 되어 난적 이탈리아보다는 그나마 만만한 멕시코와 16강전을 치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납게 달려들어 세계 최강 중 하나를 꺾어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과 맞서 싸웠던 토너먼트전에서 우리가 느낀 뜨거움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강적에게 이겼다는 만족감뿐이었을까? 아니다. 이미 지치고, 다치고, 페이스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태에서도 온통 코피에 범벅이 된 채 거한에 맞서 '덤벼 덤벼' 외치는 차돌같은 패기와 끈기의 도전에서 느끼는 감동이었다. 투지와 정신력은 우리 대한민국의 팀컬러이다.

이십여 년 전 멕시코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붉은 악마'의 출현을 목격하며 경악했던 사람이라면, 세계무대에 불쑥 튀어나와 '마치 모든 선수가 약물을 복용한 듯한 투지로써'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는 이번 우리 대표팀의 모습에서 자연히 박종환 사단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특히 늘 유럽이나 남미의 강팀을 만나면 주눅들던 답답한 모습을 극복하고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으로 우리를 감동시켰다는 점도 같다.

물론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박종환의 훈련방식이 '스파르타식'이었다면, 히딩크의 훈련방식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진 환경과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포심을 없애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 대상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그다지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포심 자체를 초월하기로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

군 생활 중 가장 힘들다는 유격훈련 중에서도 훈련병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프로그램은 11m 높이에서 모조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모형탑(막타워) 낙하훈련이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상황을 연습하는 이 훈련을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낙하산의 원리와 모형탑 훈련의 안전성에 대해 충분히 학습하고, 지상 1, 2m에서 뛰어내리는 지상훈련을 거듭한 후 최종적으로 낙하시키는 방법이 있다. 물론 시간과 경험과 비용이 필요한 방법이다. 아마도 취미생활로 즐기는 스카이 다이빙 교육기관에서는 이런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비용의 제한을 받는 군대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조차도 할 겨를이 없을 지경으로' 고된 유격체조와 악다구니를 끌어올리는 극기훈련 끝에 공중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히딩크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의 훈련 프로그램, 그리고 이전에 익히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적인 강호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선수들의 체력을 향상시키고 자신감을 길렀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유럽 본무대에서 프로팀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히딩크 자신의 경험과 능력, 그리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런 명장을 모시는 한편 여러 차례의 평가전을 유치할 수 있었던 21세기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력이었다.

반면 박종환의 팀이 상대할 수 있었던 팀들은 기껏해야 '메르데카컵'이나 '킹스컵'같은 동남아지역 국제대회나 나서야 만날 수 있는 말레이시아나 태국 정도였고, 굳이 이름 붙여 '평가전'을 갖는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신 내세울 만한 선수생활 경험마저도 없고 한 줌이라도 거저 손에 쥐어진 인맥도 없는 비주류였던, 그리고 1984년, 개발도상국 한국의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그는 애초에 불가능했고, 알지도 못했던 강국과의 평가전이나 체계적 프로그램 대신 '무식하게' 뛰고 단련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럽이나 남미의 세계적 팀과 붙는다는 사실에 대해 공포를 느끼거나, 혹은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그 공포감을 해소하기보다는 고된 훈련으로 다져진 자신의 극기력과 투지, 그리고 기백을 믿도록 만들었던 셈이다.

또한 히딩크가 외국 유명 감독이라는 특권으로 우회 내지는 돌파할 수 있었던 학벌과 관료주의라는 이름의 덫은, 그 자신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아니었던 박종환에게는 같이 빠져들어 드잡이하고 싸워야만 했던 늪이었다.

박종환의 훈련방식이 지금 보기에 후진적이고 폭압적인 것일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용납한 것이 늦자란 시민사회의 미숙한 민주의식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 결코 비리나 협잡, 혹은 축구 외적 음모는 없었다.

히딩크는 훌륭한 지도자다. 그가 한국 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왔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신기원을 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이전의 성과들이 모두 그 반대편에 있는 악덕인 것은 아니다.

그나마 이전까지 돌출했던 성과들도 우리 축구계,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악덕들(학벌주의, 연고주의, 관료주의 등등)에 대한 나름의 신선한 도전의 성과였고, 그것은 히딩크의 업적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옳은 방향을 살리고 연장하여 잔존한 악덕을 완전히 척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종환은 우리 축구의 악덕의 상징이 아니다. 그가 이룬 청소년축구 4강 신화는 어렵고 한계가 많던 시절에 이룬 소중한 성과였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덧붙이자. 혹시 주변에 축구가 아니더라도 체육 특기생을 둔 집안이 있다면, 혹은 학생 시절 체육 특기생이었던 경험자가 있다면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보라. 체육 특기생으로 산다는 것이 왜 힘들고 어려운지 말이다. 그리고 축구를 비롯한 우리나라 체육이 왜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그러면 아마도 운동을 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대표팀에 선발되고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손벌리고 시비걸고 발목을 잡는 얼마나 많은 체육계 관료와 학교 관계자들과 브로커들을 만나게 되는지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저분한 과정을 겪어서라도 명문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축구 세계화의 발목을 잡아왔고 그리고 여전히 잡고 있는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름대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궁색한 방법들을 개발하고 활용해온 감독과 선수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축구계의 발목을 잡아온 것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온존하고 있는 학벌주의와 관료주의의 덫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정치적 음모와 협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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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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