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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가 행방불명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02.06.25 18:09최종업데이트02.06.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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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이 열살 때에 무엇을 했던가. '다방구'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고무줄을 했다. 어린이가 해야할 '놀 짓'을 한 거다. 딱히 그 시절의 추억이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 있지는 않다. 적어도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목욕탕 비슷한 곳에서 일을 하지는 않았다.

▲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 구하러, 흑흑 ⓒ 지브리스튜디오
이게 웬 뜬금없는 '열 살'과 목욕탕 이야기인가 하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을 '한때 열 살이었던 당신과 그리고 이제 열 살이 되려는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치히로(千尋 천심)는 딱 요즘 아이다. 평범한 외모에 투정과 짜증을 부리며,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는 것이 두려운 10살의 소녀. 치히로는 부모와 함께 새로 이사갈 집을 찾아가던 중, 아버지가 잘못 접어든 길에 도착해 폐허가 된 마을을 구경하게 된다. 아버지의 말로는 한때 테마파크였다는 이 곳을, 치히로는 썩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여기저기를 둘러본 치히로의 부모는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간 곳에서 산해진미같은 음식을 발견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갑자기 돼지로 변해버린다. 깜짝 놀란 치히로는 이곳이 사람들의 세상이 아니라 신령들의 온천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그녀의 몸도 투명하게 바뀌어 버리면서 뜻하지 않은 모험이 시작된다.

소년 하쿠의 도움으로 만나게 된 지하 보일러실의 가마할아범은 치히로에게 온천장 주인 마녀 유바바를 소개시켜주고, 유바바는 치히로에게 일거리를 마련해주지만 10살짜리 꼬마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센(千 천)이 되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하루하루, 신령들의 세계에서 치히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버린다.

▲ 투덜대고 짜증내는 치히로는 열 살 ⓒ 지브리스튜디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제목 때문에 이 영화의 주인공이 센과 치히로의 두 소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영화초반부, 센이 치히로고, 치히로가 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신령의 세계는 인간이 인간의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치히로(千尋 천심)라는 이름에서 히로(尋 심)을 떼면 센(千 천)이 되는데, 센은 홀로 쓰일때는 구체적인 의미가 없으며 다른 글자와 함께 쓰여야만 센의 의미가 강조된다. 즉 마녀 유바바는 치히로를 센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부르며 별의미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하긴 온갖 재주를 다 가진 신령들 앞에서 인간의 모습이란 얼마나 초라한가.

하지만 치히로는 금순이보다 더 굳세었다. 신령들의 온천장에 입사한 치히로는 열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신령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신령들에게 인간이란 특이한 고린내를 풍기며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다.

▲ 온천장의 분위기를 쇄신시키는 치히로 ⓒ 지브리스튜디오
그러나 돼지가 된 부모를 구하기 위함이라지만, 치히로는 짜증내고 투정을 부리던 본연의 모습을 떠나 이지메를 당하는 얼굴없는 요괴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유바바의 외톨이 아들과 놀아주며, 정의를 위해 싸움으로써 신령들에게 기특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순간이 치히로가 어른이 되는 순간이며, 영화를 보는 성인들을 동시에 부끄럽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심오한 철학이 약세를 보이고, 어마어마한 캐스팅이 강세를 보이면서 끊임없는 웃음으로 엔돌핀이 상한가를 치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치히로는 다른 작품의 여주인공들에 비하면 너무도 평범하지만, 엽기 조연 배우들의 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의 조연들은 과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한 캐릭터'하던 녀석들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모두 총동원되어 온천장을 시끌벅적 흔들어대며 귀여운 웃음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캐릭터들이 총출동한 메시지 없는 버라이어티 쇼는 더 더욱 아니다. 전작에 비하면 확실히 약세를 보이지만, 이 작품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환경철학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분명 존재한다.

▲ 귀엽고 앙증맞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가 총출동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지브리스튜디오
테마파크의 잔재로 낮에는 을씨년스러운, 그러나 밤에는 활기를 띠는 신령들의 온천장. 치히로의 아버지는 "한때의 유행으로 여기저기 지어졌던 테마파크가 이렇게 흉물스럽게 남아있군"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오락욕구는 자연을 황폐시키고 흉칙한 건설의 불순물을 남기고 만다. 또한 더러운 냄새를 풍기며 온천장에 들어오는 오물귀신은 알고 보니 인간들에 의해 생산된 공업폐기물과 버려진 쓰레기들을 가득 먹고 걷지도 못하게 된 강의 신령이었다.

마녀 유바바는 어린 치히로에게 "어른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지"라는 예의를 가르치며, 치히로는 귀신들과 함께 열심히 일해 온천장을 활기차게 만든다. 치히로는 온천장에서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으며 성숙한다. 치히로의 성품에 놀란 강의 신령, 얼굴없는 요괴, 유바바, 하쿠 등은 그녀에게 귀중한 선물을 준다. 그것은 인간세계에서 얻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비밀의 환약이며,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문명세계는 파멸될지 모른다는 환경메시지다.

사람들은 열 살이라는 나이와 상관없이 변화를 두려워하며 항상 투덜대고 짜증을 낸다. 아닌 것 같지만 둘러보면 매한가지다. 아니라면 무지몽매하여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한편의 몽중설몽(夢中說夢)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환타지는 인간세계에서 행방불명된 순수한 동심을 찾아나선 영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타인과 자연의 존재를 문득 인식하는 것이다. 인식, 그것은 이미 실천의 전개(展開)다.2002-06-25 18:14ⓒ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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