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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울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아파옵니다. 아마도 그것이 제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영화에 대해 기억하는 것 중 유일한 것일 것입니다. 너무 당연하게도 아직 20대의 초반인 제게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이름만 낯익을 뿐, 조금은 낯선 영화입니다.
그런 <미워도 다시 한 번>이 다시 개봉되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경영씨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영화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던, 그래서 더욱 시끄러웠던 영화이지요.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이 영화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제목을 달 수 있는 영화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이야기하듯 정통 멜로물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1968년의 그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화려한 패션쇼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남자 사진 기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자 주인공 수정(이승연)이 있지요. 또 흐르듯 지나가는 화면에는 남자 주인공 지환(이경영)의 부인(김나운)이 화려한 모피코트를 걸친 채 등장합니다.
패션쇼가 끝난 후 지환의 부인은 친구와 함께 남편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남편 지환이 나타납니다. 아내를 태운 지환의 차 앞을 수정이 스쳐가고, 지환은 그 스친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 하지만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워도 다시 한 번 2002>의 시작입니다.
영화 속의 큰 설정은 오리지널 <미워도 다시 한 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혼모인 여자주인공, 유부남인 것을 숨기고 여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졌던 남자주인공, 그리고 남자주인공이 몰랐던 아이. 다만 여기에 현대적인 색을 입히고, 몇몇 부분들을 고쳐 2002년 판이 제작된 것이지요.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전혀 다릅니다. 시한부 인생의 수정, 그런 수정을 사랑하는 남자 영하 같은 설정이나 수정의 사회적인 지위 등은 1968년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부여합니다.
가장 이 영화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점은 역시 시나리오를 맡은 김수현씨의 대사일 것입니다. 흔히 김수현씨의 대사는 '맛깔난다' '빠른 속도로 맞받아친다'라고 이야기되어지고, 어떤 드라마를 보아도, 김수현씨의 대사는 브랜드처럼 분명하게 이 드라마가 김수현씨의 것임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그때문일까요? 이 영화가 김수현씨의 그 수많은 드라마들과 겹치는 것은 말입니다.
우선 주인공들의 관계 구성입니다. 이것은 물론 <미워도 다시 한 번>과 똑같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작품에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여자주인공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나누어주는 남자가 말이죠.
김수현씨의 드라마 중 <청춘의 덫>과 <불꽃>을 비교해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불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춘의 덫>에서는 심은하씨와 이종원씨를 중심 관계로 놓는다면, 전광렬씨가 심은하씨를 사랑하는 남자, 유호정씨가 이종원씨를 사랑하는 여자로 등장합니다.
전광렬씨는 이종원씨가 심은하씨를 배신한 다음에 나타나며, 그녀가 사랑하지 않아도 또 그녀가 미혼모라고 해도 결혼하겠다고 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유호정씨는 아주 불과 같은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이종원씨의 부정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불꽃>은 어떨까요? 이번엔 약혼자가 있는 사람끼리의 사랑입니다. 이영애씨는 차인표씨라는 약혼자를 가졌고, 이경영씨는 조민수씨라는 약혼자를 가진 상태에서 여행지에서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돌아가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고, 양쪽 약혼자들을 한참 괴롭히게 되는 것이죠.
여행지에서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 은 간과하고서라도, 그러한 4각 관계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남자주인공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유호정씨나, 조민수씨의 성격은 하나 같이 신경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지녀서 남자주인공을 가끔 괴롭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의 김나운씨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그 빠른 속도의 대사 - 특히 잘못을 남자주인공에게 추궁할 때 - 는 그들의 얼굴과 상황만 약간 바뀌었을 뿐,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들의 역할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주인공을 사랑하는, 전광렬(청춘의 덫), 차인표(불꽃), 박용하(미워도 다시 한 번) 역시도 여자가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물론 약간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문제를 넘겨버리고 자상하게 대하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이나, 사회적으로 튼튼한 기반을 갖추고 좋은 조건을 가졌다는 공통점 역시 주인공들의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그들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인공 관계는 아니지만, 항상 할머니와 같은 존재가 여자주인공의 가정에 존재한다는 점도 기억할 만합니다. 아이를 돌봐주거나, 충고를 하는 할머니들은 여자주인공에게 반드시 필요한 주변인물입니다. 또 여자주인공의 가정은 늘 불행합니다. 가난하든가 어머니가 없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문제가 생기면 "난 참 운이 없는 사람이야"하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시나리오 상으로 반드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겹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격은 각자 다르게 표현 되고 있는데, 왜 모든 문제들을 "운이 없기 때문"으로 전가해버리는 걸까요?
이승연씨는 자신이 죽을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차 안에서 박용하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이종원씨는 아이와 애인을 버리고 회장의 조카딸을 선택했다는 점이 발각되고 나서 유호정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대상이 친구가 아니라 각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도 재미있는 점입니다.
여자주인공이 일하는 곳엔 항상 여성들만 있으며, 그들의 대화 속에서는 그들이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유부녀는 흔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게다가 수정이 자신의 딸과 즐겁게 놀고 있는 장면에서는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씨와 딸이 놀고 있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그러한 구성으로 흘러가는 영화는 아이를 남자주인공에게 보낸다는 내용만 없다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기보다는, 김수현씨의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시나리오의 비현실성과 불친절(?)입니다. 수정은 미혼모이고 계모의 밑에서 자라 자수성가를 한 사진 기자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집에는 온갖 첨단 가전제품이 등장합니다. LCD 모니터(용도는 알 수 없지만)가 싱크대 위에 설치되어 있는 주방, 완벽한 AV 시스템과 PDP TV까지(그러나 한 번도 그것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 역시도 4,50평은 될 듯한 아파트입니다. 다소 허름해 보이는 아파트 현관이나 수정이 몰고 다니는 경차와 매치가 되지 않을 정도이죠. 물론 1968년 판에서 여자주인공인 혜영이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좀 다른 설정을 해보고자 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자신의 일 외에도 아르바이트를 여러 곳 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수정이 그러한 집에서 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아이를 키워줄 할머니를 두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집의 고급스러움은 현실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잠깐 수정이 아르바이트를 여러 곳 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했는데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뛰는 것이 언제 나왔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왜냐면 단 한 번도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오로지 영하와 수정의 대사에서만 묘사될 뿐이니까요.
영하가 수정에게 프로포즈했다는 사실도 대사에만 의지하고 있어서 스토리 텔링을 대사에 아주 많은 부분 할당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영화의 중점적인 부분은 "왜 수정이 아이를 보내야만 했는가"에 있는 듯이 그 외의 내용이나 설정들은 모두 대사로만 해결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정과 지환이 사랑에 빠지는 부분이나 부인에게 지환이 들키는 부분들은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수정이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병원에 가게 되는 것도, 대사에 의하면 "전에 했던 정기검진에서 문제가 생겨서 다시 받은 검사의 결과가 나와서"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부분 씬에 할당해서 설명할 부분도 대사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집에 간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나 싫어했던 지환의 부인이 어떻게 아이에게 대하는지도, 지환의 다른 아이들이 아이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도, 모두 한 번의 식사 씬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것으로 이해하자면, 모두가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애쓴다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또 이 영화는 클라이막스인 수정과 딸이 헤어지는 장면에서조차 울다가 웃게 만드는 큰 실수까지 하고 있습니다. 수정이 할머니에게 딸을 아버지에게 보내기로 했다면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그 할머니의 어색한 대사와 연기 때문에 웃음이 나옵니다. 아버지에게 가기 싫다면서 울어대는 아이를 수정이 억지로 혼내면서 데리고 나가는 장면에서는 - 이 부분은 극장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올 정도였는데도 - 더욱 당황스럽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잡혀서 “할머니~”를 외치며 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외치는데도, 할머니는 “아이구~ 누구야~”하며 울고 있으면서도, 가방을 가지고 달려나오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차의 앞자리에 앉아 할머니의 구원을 바라면서 울고불고 하는 아이에게 “아이구~”하면서 뒷문을 열어 가방을 넣어주는 장면 역시도 사람들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이 영화가 만약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고 해도 - 흥행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 그것은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책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그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고(다만 수정이 영하를 옆에 두고서도 잊지 못할 정도의 매력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그가 이 영화를 좌우할 정도로 크게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를 흠잡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활달한 성격의 미혼모를 맡은 이승연씨도 누가 보아도 매력적이고, 다정한 엄마이자 여성을 연기하며(운전하면서 지나치게 핸들을 자주 움직였다는 점만 빼면), 우유부단하지만 따뜻한 눈으로 수정을 지켜보는 영하, 박용하씨도 그에 맞는 연기를 충실히 해냅니다. 지환의 아내 역을 맡은 김나운씨 역시 다소 표독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결국 아이에게는 따뜻함을 보이는 역할을 완급을 조절하면서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의 부실함과 지나치게 작가의 특징적인 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1968년의 그 <미워도 다시 한 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 물론 많지 않겠지만 - 많은 아쉬움을, 지금의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식상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과연 이 영화가 <미워도 다시 한 번>처럼 멜로의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이 영화를 본 지 2주일이 되어가는 지금 - 시사회에서 보았기 때문에 - 에도 그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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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6-04 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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