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는 나의 것'이 광고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건조함'이나 '잔혹함'이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러한 광고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건조함'은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잔혹한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시간 정도의 조금 긴 듯한 러닝타임이 지나고 극장을 나오며 생각한 것은 '감독이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었구나'입니다. 평단도, 관객도, 모두 무시해버리고 자신이 바라고,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든 것 같습니다.
자신은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인터뷰에서 누누이 밝힌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상업성'과는 꽤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상업성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특정 소수를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란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불쾌감을 표시합니다. 영화가 너무나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잔인한 것을 싫어합니다만 잔인한 장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잔인한 장면이 별로 필요 없는 장면에서도 잔인한 장면을 남발하는 데 있습니다.
영화의 광고중 하나가 '소리'를 이용한 잔혹함의 전달이었습니다. 유괴된 딸의 부검장면에서 딸의 시체를 부검하는 모습 대신에 피와 살이 튀는 듯한 소리, 전기톱 소리로 관객들을 소름끼치게 만듭니다. 하지만 소름끼치게 할 뿐 관객을 몰입시키지는 못합니다. 이 영화가 전면에 내세운 '잔혹함'이라는 코드는 제가 보기에는 대실패입니다.
시나리오 역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흥미를 자아내게 합니다. 모든 것이 나쁘게만 돌아가는 청각장애인과 그의 애인, 평범한 중소기업을 꾸리다가 IMF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장. 이 두그룹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서로 연관을 가지며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게 만듭니다.
문제는 두줄기의 이야기가 관객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절묘하게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유괴당한 딸의 아버지의 이야기만 하든지, 모든 상황이 비참하기만 한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만 하든지, 둘중의 한가지 이야기만 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2시간에 안에 두 가지 그룹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겠다는 욕심 때문에 영화가 중반 이후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을 벌려놓고 대강 마무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냥 영화가 끝날 시간이 되니 두명의 주인공이 만납니다. 청각장애인 유괴범은 아이를 유괴하고 아버지에게 돌려주지 못한 죄값을 잔인하게 치릅니다. 하지만 관객은 그 장면에서조차 통쾌하지가 못합니다. 어쩌면 이해가 안될지도 모릅니다. 딸아이의 아버지가 청각장애인을 죽이기 전에 울먹이며 '죽이는 것을 이해하라'는 장면을 보아도 그의 살인은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 장기밀매단을 '응징'하는 장면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지요.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죽음들 중에 설득력과 의미를 가지는 죽음은 정말 몇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아쉬운 것은 주연들의 호연뿐입니다.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의 연기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류승완, 류승범의 깜짝출연도 재미있었지요. 이 영화의 감독인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만큼 스타일을 내지도, 설득력과 감동을 갖춘 이야기를 풀어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냥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를 바라는 사람도, 잔혹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무언가 남는 영화를 바라는 사람도 모두 만족을 얻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잔인한 복수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 2002-03-30 19:29 |
ⓒ 2007 OhmyNews |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