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새들의 일생에는 소유가 없다

영화평 <위대한 비상>

02.03.30 00:26최종업데이트02.03.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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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말 처음 이 영화의 정보를 접한 나는 단번에 흥미가 끌렸다. 비록 애정만큼 아는 것은 없지만 새는 내가 유일하게 부러워하는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새. 그 중에서도 주로 철새들의 비행(飛行)을 다큐형식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필수관람 영화로 점찍고 개봉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3월 29일 개봉을 앞두고 26일이 되도록 개봉관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흥행성과 거리가 먼 듯한 영화라 극장을 잡기 어려운 모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럴수록 꼭 가서 흥행에 도움을 주리라 다짐을 했다.

29일 개봉하는 이 영화를 위해 수업조차 빼먹었다. 첫 회를 보러 극장으로 간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예상대로 자리는 넉넉했다. 현란한 예고편들이 지나간 후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마을의 시냇가에서부터 이 영화는 기러기의 날개 짓으로 시작하였다.

새가 주인공인만큼 사람의 대사는 없다. 나레이터의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물론 새들의 대사도 있었지만 불행히도 나와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비록 체계화된 언어는 아니지만 그들의 소리에 감정이 실려있음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되레 화면 속의 새들과 나와의 교감을 뒤에서 과자를 먹는 사람의 소리가 방해했을 뿐.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동안 수많은 컴퓨터 그래픽에 현혹되었던 나의 눈은 카메라가 잡아낸 자연의 풍광 앞에서 압도당했고, 인간이 조작해놓은 가공된 이미지에 지쳐있었던 나는 모처럼 감탄을 연발하면서 본래 자연의 모습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저 넋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또한 저런 영상을 잡아내기 위해 고생했을 촬영팀의 노고에 경의를 보내고 싶었다.

그 아름답고 경이로운 화면에 새들이 없었다면 단순히 영화는 보기 좋은 풍경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눈뜨고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날면서 끊임없이 날개를 움직이는 새들의 숙명과 구도자처럼 절벽 아래 허공에서 바람을 타고 있는 새의 고독은 차라리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과연 인간은 무엇이기에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유독 괴로워하거나 부러워하는가.

새들은 인간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위를 날아가는 새들의 장면에서는 온갖 인공의 구조물들이 초라해 보였다. 그 곳에 갇힌 인간들은 비행(飛行)을 꿈꾸지만 비행을 위한 버림을 감행하지 못한다. 새들의 일생에는 자신의 소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저리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새들의 물리적인 비행보다 새들의 정신적인 비행이 더 부럽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불현듯 나의 군 생활이 생각났다. 어렸을 적부터 넋 놓고 하늘 보기를 좋아하던 나는 곧잘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비록 파일럿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접었으나 비행기라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공군에 자원입대를 했다. 물론 그 이유가 공군을 지원한 전부는 아니었더라도 최소한 하늘에 대한 동경이 없었더라면 남보다 4개월을 더 근무하는 공군에 입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바람과는 달리 군대 30개월 동안 공군본부에서 장교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일을 했다. 행정특기를 받은 장교식당 관리병 이었다고 강변하지만 남들은 그저 취사병으로 취급할 뿐이다. 따라서 비행기 구경이라고는 영내에 전시되어있는 퇴역전투기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늘을 나는 보라매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비록 군 생활 내내 김치를 깔고 식탁을 닦았지만.

군 생활 내내 보았던 파일럿의 모습은 일반군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긴 내가 본 파일럿들은 현역 파일럿이 아니라 과거에 파일럿이었던 장교들이었다. 그래도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경험해볼 수 없는, 비행기를 몰아본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이 있었던지라 서빙에 특별히 신경을 썼었다. 물론 나의 보직이 그 일이었다.

가끔 회식자리에 차출되어서 귀동냥으로 처음 하늘을 날았을 때의 감격을 들어보기도 하였다.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그 꿈이 그들을 그 자리에 있도록 만든 가장 강력한 동기였을 것이다. 비록 일반적인 중년의 모습과 별반 다름없이 나이 들어가더라도 하늘을 날았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만은 결코 변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 과연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떤 것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병과 장교와의 계급은 너무 멀었다.

엉뚱하게도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할 집단 중에 하나가 공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군 파일럿이 영웅처럼 나오는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하늘을 나는 새가 없었더라면 아예 공군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새에 대한 인간의 영화적 헌사이다. 우리나라 공군은 자칭 보라매 아니던가.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프랑스 영화이다. 저 정도로 새에 대한 경외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 민족이라면 비행기도 잘 만들 것이라는 무척이나 논리적인 개연성이 부족한 생각을 했다.

최근 차기 전투기가 미국의 F-15k로 내정돼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했을 때 나는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이글이글거렸다. 10여년 후의 미국에서는 퇴역비행기 박물관에 가 있을 비행기를 우리 공군은 주력전투기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향후 몇 십년 동안 공군장교들의 혈압은 내내 위험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비단 공군장교들 뿐만은 아니겠지만.

프랑스에서는 이 영화를 50만명 정도 관람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만명조차 과분한 기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멀티플렉스로 스크린수는 많아졌다고 하지만 서울에서 이 영화를 개봉한 곳은 내가 알기에는 서울극장, 녹색극장 2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 기간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비디오로 이 영화를 본다면 20분 안에 졸 것이 확실하다. 영화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진가는 이 영화에서도 더욱 특별하다.

영화에 대한 재미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별로라고 말할 것이다. 지루한 부분도 없지않아 있다. 노상 새로운 새들이 나와서 날아다니는 것 이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재미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본다면 영화는 분명 자신의 매력을 한껏 보여줄 것이다.

실제 삶과 구별되지 않는 출연진들의 리얼한 연기, 지구의 숨겨진 비경을 샅샅이 보여주는 뛰어난 배경화면, 묘한 울림을 주는 영화음악 그리고 그런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3년 동안을 현장에서 뛰었을 촬영진 들의 노력은 충분히 서사적이면서 감동적이다.

나서서 기도하는 사람보다 빈 들녘의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의 모습이 더욱 경건하고 종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새들의 일생이 모두 종교적인 경건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별과 달과 지구의 자기장 등 그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본능에 의해 자신의 길을 날고 있을 철새들을 생각해본다면 새들의 퍼덕거리는 날개짓 하나 하나가 그렇게 단순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http://www.greatflying.co.kr)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2002-03-30 00:2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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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설명할 만한 언어를 찾지 못하고 계속 고민중이다. 무엇을 이루기 보다 무엇은 안하고 살면 안되나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종종 아프다. 돈보다는 명예를 명예보다는 행복을 찾고 싶다. 그 행복은 사람들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을 때 가능 그 교감은 또한 문화적 감수성이 맞을때. 그 문화적 감수성을 위한 글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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