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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새로운 것도 진짜도 없다!

영화 <생활의 발견>의 발견

02.03.29 21:48최종업데이트02.03.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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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을 보고 무언가 크게 발견하려는 과욕은 거두는 것이 좋다. 홍 감독은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남녀관계의 유치함, 그리고 범속함에 대해 날카로운 조롱 및 짓궂은 장난을 친다. 그리고 남는 것은? 웃음뿐이다.
▲ 경수 ⓒ 생활의 발견

경수(김상경)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가 별 흥행도 하지 못하고, 차기 작에서조차 배역을 얻지 못하자 영화감독인 선배에게 돈 1백만 원을 뜯어내 무작정 춘천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무용가인 명숙(예지원)과 술김에 하룻밤을 보낸 경수는 부모가 사는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선영(추상미)을 만난 후 첫 눈에 반한다. 선영을 따라 경주에 내린 경수는 유부녀인 선영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서 그녀에게 집착한다. 홍 감독이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어긋난 남녀관계의 비참함을 그려냈다면, 신작 <생활의 발견>에서는 어긋난 남녀관계의 뻔함이 그려져 있다. <생활의 발견>의 여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오! 수정>의 수정이처럼 심각하지도 않다. <강원도의 힘>에서처럼 불륜이 등장하지만 <생활의 발견>에서 발견되는 그것은 그리 부정적이지도 않다. <생활의 발견>은 '사람처럼 살지는 못해도 괴물은 되지 않으려는 속물'들이 '세상엔 새로운 것도, 진짜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이야기다.적당히 사랑을 해봤거나, 적당히 실패도 해봤거나,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적당히 속아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별 특별함 없이 지속된다는 것을 안다. 그저 상황에 따라서 혹자는 하룻밤 관계를 기억에 두기도 하고, 혹자는 하룻밤 기억을 마음에 두기도 한다. 명숙은 일찍이 마음속에 간직했던 경수와의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사랑이라 여긴다. 그리고 경수에게 집착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녀는 경수에게 사랑의 확인을 요구하지만 경수는 "싫어요"라고 대답한다. 명숙은 나름대로 사랑에 취해 밤새 울지만 그런 그녀가 경수에게는 사이코로 비칠 뿐이다.
▲ 경수와 선영 ⓒ 생활의 발견
경수가 선영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반대구도로 흐른다. 그는 선영에게 "사랑한다", "함께 죽자"라며 사랑을 검증하려 하지만 선영에게 경수는 옛 추억의 남자일 뿐이다. 미래도 확실치 않은데다 삼재(三災)까지 꼬인 경수보다는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해줄 나이 많은 남편에게 머무르는 것이다. 홍 감독의 영화들 속에는 특히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속물로 그려진다. <오! 수정>의 수정이 남자친구의 부유함에 반해 쉽게 브래지어를 끌러 가방속에 넣은 것이나, 명숙이 자신을 좋아하는 백수청년보다는 조금 더 알려진 배우 경수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이나, 선영이 가난한 경수대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신의 남편을 택하는 것은 여자들이 남자를 선택하는 범속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활의 발견>의 여자들은 잠자리에서는 "좋아좋아"를 외치고, 성관계를 마친 후 '당신속의 나, 내 속의 당신'이라는 유치한 메모를 남기며, 툭하면 내숭을 떠는 똑같은 존재로 비춰진다. 홍 감독의 영화에서 여자는 한 종류며 그들이 나아가는 사랑의 경로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여자를 말하려면 여자가 되어봐야 안다. 여자를 육체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쉽지만 정신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여자들은 단순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의 비속함과 저속함이다. 그렇다고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것이 일상의 모습이니.
▲ 경수와 명숙 ⓒ 생활의 발견
남자와 여자,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뿌리를 알 수 없는 모방의 모방이다. 춘천 공지천의 오리배와 경주 보문호의 오리 유람선을 보고 경수가 "저건(오리는) 없는 데가 없군"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상 어딜가나 사람들의 생활은 조금씩 달라보여도 결국은 같은 것이다. 영화는 재미있다. 웃음이 넘친다. 예지원의 춤솜씨와 허파를 찌르는 대사, 추상미의 내숭연기는 상상을 뛰어넘으며 망가질대로 망가진 김상경의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 '경수가 회전문의 뱀을 떠올리다'처럼 상사병에 걸렸던 회전문 전설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비에 젖는 경수의 모습은 잊혀지질 않는다.그래서일까.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한 한 지인은 김상경의 영화속 옷차림을 이번 봄의 패션코드로 삼을 예정이다. 빨간 티셔츠에 소지(昭地)라고 적힌 옷을 어디서든 구해본다고 하니, 가슴 한켠에 환한 대지를 꿈꾸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탁월한 생활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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