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이 끝나고 영상제 관계자와 참가자들이 근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막 식사를 시작하는 무렵, 모 방송사 카메라 기자로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의 수상 광경을 보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3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모 방송사 VJ영상축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방송을 보자마자 전화를 한 것이었다. 녀석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디지털 소형 캠코더로 어떻게 촬영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방송에서 대부분의 자연 다큐멘터리는 베타캄이나 디지베타(둘다 현재 방송에서 상용되고 있는 사양의 방송전문 카메라임)로 촬영되고 제작된다. 그런데 실제 제작에서는 이들 카메라 이외의 특수장비들이 많이 동원된다. 예를 들면 작은 동식물을 크게 촬영할 때는 이노비젼을, 반대로 접근해서 촬영할 수 없는 동식물을 촬영할 때는 망원렌즈를, 그리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혹은 장시간 관찰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센스가 있어 피사체가 파인더 안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녹화를 하는 장비 등등이 동원된다. 이 외에도 수중촬영에 사용하는 하우징 장비, 야간에 빛이 없더라도 피사체를 촬영할 수 있는 적외선 카메라 혹은 렌즈 등등 그 장비가 어마어마하다. 제작비의 엄청난 부분이 이들 장비를 구입하거나 빌리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빌리거나 구입할 수 있다면 그건 상황이 좋은 편이다. 필요한 장비를 임의로 제작해서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례로 올 초에 EBS에 방영한 개미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개미처럼 작은 동물을 다양한 사이즈로 촬영하기 위해 청계천에서 스틸카메라 렌즈를 깎아서 임의로 렌즈를 만들기도 하고 개미에게 뜨거운 조명을 가하지 않기 위해 열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자연광과 비슷한 조명을 직접 제작해 사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미니 크레인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야말로 맥가이버들의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던 셈이다. 반포매미 촬영의 경우 다른 건 몰라도 접사촬영을 하는 이노비젼은 어느 정도 필요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특수장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접사촬영을 했다. 방송용 베타캠으로 촬영을 했다면 당연히 접사 촬영을 위한 별도의 렌즈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포매미는 디지털 소형 캠코더로 촬영되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디지털 소형 캠코더는 접사촬영이 가능하다. 즉 피사체에서 5센티 정도 거리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을 하더라도 심도도 살릴 수 있고 포커스도 맞출 수 있다. 이런 기능은 접사촬영 기능이 카메라에 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카메라의 줌 기능은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지나치게 카메라 몸체가 피사체에 근접하여 빛이 모자랄 수도 있다. 나는 이런 단점을 보완할 자신이 있었기에 소형 캠코더로 촬영을 감행했다. 만약에 예전에 나온 구형 소형 캠코더나 베타카메라(방송용)로 촬영을 한다면 클로즈업 렌즈를 별도로 장착을 해야만 접사촬영을 할 수 있다. 이번 촬영에서 내가 접사 촬영한 부분은 매미의 껍질과, 우화 전과정, 그리고 개미들의 무서운 공격, 비온 후의 정원의 생기찬 모습(달팽이, 지렁이 똥 무덤 등), 매미의 수액채취, 매미가 굴 속에서 땅 위로 올라오는 광경 등이었다. 접사 촬영이 전체촬영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소형 캠코더로 가능했다. 다만 매미 유충이 땅속 굴에서 땅 위로 올라오는 장면은 좀더 작은 소형카메라가 필요했지만 운이 좋아 소형 캠코더로 충분히 촬영할 수 있었다.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은 많은 특수장비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제작비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촬영계획이 아주 치밀해야 한다. 먼저 해당 피사체의 행태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이 피사체는 주로 어떤 행동반경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동특성을 가지고 있고 등등. 이런 정보를 종합해서 해당 피사체를 촬영하는데 필요한 장비를 미리 계산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일반적인 정보에 근거해서 특수장비를 마구마구 사용하다 보면 나중에 그 제작비 감당이 힘들어지게 된다. 나의 경우도 처음에는 무턱대고 촬영을 시작했지만 촬영 초기 단계에 매미의 행태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했었다. 그래서 별도의 특수장비를 준비하지 않았다. 간단한 수제 조명과 성능이 그리 좋지 않은 망원렌즈, 그리고 오디오 픽업을 위한 붐대와 원거리에서도 오디오 픽업이 가능한 와이어리스 마이크 정도가 고작이었다.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잘 사용하는 무인카메라 같은 게 필요 없다는 결론을 미리 내릴 수 있었다. 매미는 유충의 단계에서 동작이 느리고 날아다닐 수 없고 주위 자극에 대해서도 별로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소형 캠코더로 충분히 접근 촬영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부분이지만 매미의 산란장면도 같은 경우다. 매미가 산란할 때는 주위 환경에 둔감해진다. 이 정보는 파브르의 곤충기에서 구한 정보였다. 당연히 매미의 산란은 무인카메라가 아니라 접근해서 촬영할 수 있는 것이다. 피사체에 맞는 적당한 촬영계획과 장비계획이야 말로 자연다큐멘터리의 성공여부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무턱대고 남이 하는 관행에 따른 촬영이야 말로 자연다큐란 원래 촬영이 힘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낳고 제작을 힘들게 하게 만든다. 한편의 자연다큐를 제작하고 나면 그 제작자는 원래 가지고 있던 제작노하우에 많은 것을 덧보태게 된다. 그만큼 경험에서 놀라운 지식과 기술들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소중한 것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자연다큐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제작자들간의 정보교류가 잘 이루어지면 제작은 그만큼 수월해지고 한국 자연다큐의 질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 누군가 어떤 자연다큐 제작을 기획하고 있다면, 그리고 제작에 있어 어떤 문제점에 봉착해 있다면 과감하게 유사한 작품을 제작한 제작자 혹은 카메라 감독을 찾아서 스스럼 없이 조언을 구해 보기 바란다.나의 경우도 기 제작자들이 웹에 올려 놓은 제작기를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프리랜서 자연다큐 감독인 임완호 씨와 EBS 문동현 PD의 글들은 실질적인 제작노하우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글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2002-02-20 01:00ⓒ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