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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극장이여, 어디 있는가?"

사라져 가는 '극장'에 부치며

01.12.28 18:01최종업데이트01.12.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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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없다

극장이 사라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극장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있다. 극장 한 곳에서 영화 한 작품만을 상영하던 단일관 극장들은 9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 복합상영관으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극장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멀티플렉스'나 '씨네', '씨네마'라는 외국어로 대신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메가박스, 시네마 오즈, 씨네플러스, 씨네월드, 한일씨네마, CGV, 씨네플렉스 녹색, 롯데월드, 씨네코아, 쎈트럴6씨네마, 스타식스정동...

특히 외국어로 극장을 칭하는 것은 영화상영의 역사가 깊은 서울 중심가와 강북보다는 강남지역에서 더 두드러진다. 90년대 들어서 강남지역은 멀티플렉스로 개관하는 것이 붐을 이루었기 때문이고, 강북에는 이미 극장의 포화상태로 새로운 극장의 탄생보다는 오래된 극장들의 멀티플렉스로의 신축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지어진 강남의 멀티플렉스에 비하면 역사가 깊은 종로나 충무로의 극장들은 신축공사후에도 극장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 편이다.

종로의 서울극장은 1978년 세기극장에서 이름이 바뀐 뒤, 8개관과 휴게실 등의 시설을 갖춘 뒤에도 서울극장이라는 이름을 이어가고 있고, 얼마전 총 2750석을 갖추고 멀티플렉스로 새롭게 개관한 충무로의 대한극장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 영등포의 연흥극장 - 영등포의 개봉관은 대체로 한산하다
ⓒ 오마이뉴스 배을선대한극장의 신축개관 소식을 들은 몇몇 영화인들은 혹시나 '대한시네마' 등으로 이름이 바뀌지는 않을까 내심 궁금해했지만, 대한극장은 50년전 개관 이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대한극장 마케팅팀의 이혜경 주임은 "'대한극장'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물론 요즘의 유행대로 멀티플렉스나 씨네마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1955년 개관이후 대한극장이 가져왔던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나가기 위해 원래의 이름을 고수하기로 했습니다. '대한극장'이라는 고유상호를 바꿀 계획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중심가의 극장들과 영등포의 경원극장과 연흥극장 같은 서울의 변두리 및 지방 개봉관들이 아직 극장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극장이라는 명칭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도대체 극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화동네 청량리와 영등포의 쇠퇴

▲ 청량리의 제일시네마 - 돈만 들여 공사하면 개봉관이 될 수 있지만 청량리의 개봉관 입장료는 6000원, 한산하기까지 하다
ⓒ 오마이뉴스 배을선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청량리에 위치한 제일극장은 백미터 정도 떨어진 해천 시네마 극장과 서로 경쟁을 하던 35mm 재개봉관이었다. 그러나 제일극장은 공사를 통해 올해 6월 2일 개봉관으로 탈바꿈하고 명칭도 제일시네마로 바꾸었다. 극장입구는 변두리 당구장 입구처럼 궁색하지만 제일시네마는 안락한 지정석과 커플석을 완비했으며 컴퓨터 3대에 인터넷 전용선을 깔고 영화 <화산고>를 상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일시네마는 무척 한산했고 청량리역을 지나가던 군인들이 기차 시간을 조절해 영화를 보러 오는 곳처럼 보였다.

조금 떨어진 해천시네마 극장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전히 35mm 재개봉관을 고수하는 해천시네마극장은 5년전 해천극장에서 이름을 바꿨다. <흑수선>과 <무서운영화2>를 상영중인 해천시네마극장의 다음 상영작은 <달마야 놀자>와 <물랑루즈>. 이 곳을 주로 찾는 사람들은 중년의 사오십대 및 군인과 예비군들이다. 5천 원을 내고 한 번 들어오면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나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영화를 보면서 담배를 피워도, 코를 골면서 잠을 청해도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다.

▲ 청량리의 해천시네마 - 청량리의 유일한 재개봉관
ⓒ 오마이뉴스 배을선10여년전만해도 오스카극장, 시대극장, 대왕극장 등의 소극장들이 밀집해있던 청량리는 잘 나가는 역세권으로 영화를 보러 오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군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이 잠시 들려 시간을 때우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 청량리의 성보소극장
ⓒ 오마이뉴스 배을선또한 몇 년전까지만해도 청량리에서 시네마라는 단어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한산한 개봉관과 재개봉관도 극장보다는 시네마를 선호한다. 그러나 청량리에는 여전히 극장이 있다. 해천시네마극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성보비디오소극장. 언뜻보기에는 비디오방처럼 보이는 이곳은 <야간병원>, <워칭유>, <모넬라2> 등의 삼류성인영화를 동시상영하는 에로극장이다. 물론 이 극장에도 관객은 많지 않았다. 에로극장은 극장이라기 보다는 중장년층의 관객들이 시간을 때우거나 휴식을 취하는 쉼터인 것이다.

이런 사정은 영등포에서도 마찬가지다. 청량리와 마찬가지로 유동인구가 많아 극장장사가 꽤 잘 되던 영등포였지만 지금의 이곳은 연흥극장과 경원극장의 개봉관 두 곳을 제외하고선 성인소극장, 즉 에로극장 이라고 불리는 5개의 극장만이 쓸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 영등포의 드라마소극장
ⓒ 오마이뉴스 배을선연흥극장 뒷편 골목의 드라마소극장.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프로 바뀌는 날 1,6,11,16,21,26', '3편 同時上映中' 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섹시한 포즈를 취한 여배우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녀들은 '달링! 빨리 날 보러와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들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영등포의 드라마소극장은 32mm 필름을 상영하던 재개봉관이었으나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몇 년전 에로극장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하루에 드라마소극장을 찾는 손님들은 대략 30~40여 명이며 주로 극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40대에서 70대의 남자들이다.

극장주인은 "말이 극장이지 여긴 휴게실입니다. 중년과 노년의 남성들이 찾아와서 외로움과 고독을 영화 한편에 풀기도 하고, 담배를 피며 사람을 사귀기도 하고 잠을 청하기도 하는, 갈 곳 없는 남자들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지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영등포의 드라마소극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수많은 포스터와 배우들이 관객들을 자극한다
ⓒ 오마이뉴스 배을선

드라마소극장은 현재 <정글헌팅>, <신기루>, <나비> 등을 상영하고 있는 건너편의 미산극장보다 규모가 크며 영화포스터도 더 많이 붙여져 있다. 제대로 홍보시스템을 갖추고 배급과 마케팅을 갖춘 영화제작사에서 포스터를 만들어 극장쪽에 배포하는 극장상영영화들과는 달리 삼류극장에서 상영되는 에로영화의 포스터는 각각의 성인극장이 돈을 지불하고 사야만 한다.

포스터는 한 장당 150원 선에서 구입해 극장 밖과 극장 통로 극장 안 등에 몇 장씩을 붙인다. 대부분의 성인극장은 배급사로부터 한달에 1번씩 영화를 배급받는다. 성인영화라고는 하지만 심의를 받은 후 극장용으로 따로 제작된 필름들이다. 영화의 한 필름당 대략 5만 원선에 구입 해와 일주일동안 3편을 동시상영하니, '60만 원 + α의 포스터가격'의 비용으로 한달에 약 12편의 성인영화가 상영된다. 이래저래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돈과 건물임대료 등을 빼면 극장주인이 매표소에 앉았다 필름을 돌리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 극장

▲ 영등포의 마산극장 매표소 - 그러나 매표소에는 사람이 없다. 주인은 그장 내부에서 사람들과 담소중. 관객이나 주인이나 모두 함께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 오마이뉴스 배을선어떤 극장들은 멀티플렉스와 씨네마로 변하고, 어떤 극장들은 쉼터와 휴게실로 변해가지만, 그래도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어떤 영화든, 어떤 극장이든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곳을 선택할 것이다.

멀티플렉스와 시네마에 10대에서 30대의 관객들이 드나들며 흥행영화를 볼 때, 40대 이후의 중, 노년층 관객들은 추억의 옛극장과 성인극장을 찾으며 휴식같은 삶의 한 때를 보내는 것이다. 디스코텍과 캬바레, 테크노댄스와 지루박처럼 연령은 취향을 변하게 한다. 극장이라는 명칭도 나이를 먹어간다. 2002년에는 한 살을 더 먹을 것이다. 내년에는 어떤 극장들이 새로 생기고 신축개관을 하면서 간판을 내리거나 바꿀까. 2001-12-28 17:5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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