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서른을 맞이하면서 생경함을 느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른하고도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란 정말이지 지나보면 빛처럼 빠르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거의 세월 속에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어 빛처럼 빨라 보이는 과거의 시간이 알알이 되새겨진다. 직업으로 방송일을 하면서 그리고 특히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해마다 그 해가 끝나 갈 무렵 내가 한 해 동안 일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해보곤 한다. 올해는 특히 자신의 삶으로 나를 감동시킨 사람들이 떠오른다. 미니다큐를 제작하면서 만난 세 사람▲ 연상의 독신녀를 만나다. 독거노인을 찾아가 보살피는 사랑의 보일러 교실 수강생들 ⓒ 박성호 하반기부터 서울시가 제작하는 홍보용 방송프로그램을 매주 연출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담기는 스튜디오물이었는데 그 안에 특히 내가 아끼는 코너가 있었다. ‘서울 사람들’ 홍보용 방송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홍보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정신을 발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제목처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다루는 미니 휴먼 다큐 코너였다. 6개월간 매주 혹은 이, 삼 주에 한번씩 서울에 사는 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 관한 미니 다큐를 제작한 셈이었다.물론 깊이 있는 작업들은 아니었다. 전체 프로그램 길이 25분 내외에 ENG코너물이 2개, 스튜디오, 뉴스, 영상기행이 모두 들어가야 함으로 ‘서울 사람들’을 포함한 코너물의 시간은 길어야 6분 30초였다. 이런 작업을 매주 해야 하므로 한 아이템에 투여되는 제작시간이 말도 안될 정도로 짧았다. 하루 이틀 정도 아이템을 찾아 결정하고 이틀 정도 섭외하고 가구성을 만들고 본 촬영을 하루 내지 이틀에 끝내야 하는 작업이었다.열너댓 명의 사람들이 기억 속에 스쳐간다. 그런데 그 중에 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아주 특별하다. 그만큼 그들의 생활이 PD인 내가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인 박성호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택시서비스의 새로운 차원을 선포하고 택시문화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던 KD택시기사 최대흥 씨,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폐지를 모아 시각장애인의 개안수술에 도움을 주고 있는 김영백 아저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일러 가게를 하면서 실직자들에게 보일러기술을 무료로 가르쳐주고 그들과 함께 연상의 독신녀(독거노인)를 돕고 계시는 이영수 명장. 바로 이 세 사람이 나에게 감동을 준 사람들이다.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들이 있다. 첫 번째는 방송에 출연한 경험이 내가 제작하는 프로그램 이전에 있었다는 것, 두 번째는 절대 넉넉하게 살거나 학벌이나 지위가 엄청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세 번째는 없는 살림,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상황 하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남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모두 방송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는 것은 이미 이들의 남다른 점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런 입 소문이 언론사의 기자 혹은 방송국의 작가, PD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세 사람 모두 KBS 혹은 MBC 공중파 전파를 타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사랑의 보일러 교실’ 이영수 명장의 경우 보일러 교실을 열기 전에 MBC ‘칭찬합시다’에서 소개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프로그램이 나간 이후 ‘사랑의 리퀘스트’에 또 출연했다. 김영백 씨의 경우 얼마 전에 MBC ‘화제집중’에서 소개되었다. 그리고 KD택시기사 최대흥 씨는 KBS ‘현장르포-제3지대’에 출연했다. 사실 이들의 사람됨됨이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연상케 할 정도다. 하지만 방송국 PD, 작가라는 인간들이 끈질기기로는 울릉도 호박엿 이상이기 때문에 다들 방송을 타게 된 것이라고 한다.내가 이 세 사람에 대해 특별한 기억과 감동을 간직하는 것 또한 그들과 같은 이유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나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 것은 그들의 공통점 세 번째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상황 하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남을 생각한다는 것!누가 해도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이다. KD택시기사 최대흥 씨▲ 밤근무. 최대흥 씨에게 합승, 승차거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 박성호 “KD택시기사 최대흥 씨. KD택시란 강동구에서 택시서비스를 하는 기사들이 모여 항상 시민들에게 욕먹는 택시서비스를 바꿔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일종의 공동 브랜드다. KD택시는 그래서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강동(kangDong)구의 영문 첫글자 그리고 친철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kind의 k와 d 두 글자.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타다 보면 택시 옆면에 KD라는 글자가 새겨진 택시들을 볼 수가 있는데 바로 그것은 택시회사의 이름이 아니라 이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택시들의 단체 이름내지 운동의 명칭인 것이다. KD택시는 그래서 남다르다. 먼저 친절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합승이나 불법요금(따블 혹은 따따블 등), 과속이나 교통법규 위반 등 나쁜 택시서비스 관습과는 담을 쌓고 영업을 한다. 사실 이런 것을 하지 않고 영업을 하면 하루 수입이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최대흥 씨는 말한다. 실제로 최대흥 씨 아내의 말에 의하면 최 씨가 KD택시를 몰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아예 집에 돈을 갖다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수입이 줄었던 것이다. 최 씨의 택시경력은 7년 남짓. 원래 직장생활을 하다 구조조정의 한파로 회사를 그만두고 뭐라도 하려고 기를 쓰다 뛰어든 것이 택시기사. 당연히 가계 형편이 넉넉할 턱이 없었지만 그래도 최 씨가 KD택시 기사로 열의를 불태우는 데는 본인만의 삶의 철학 때문이었다고 한다."택시를 운전하기 전에 택시를 타면 언제나 부족한 서비스가 안타까웠습니다. 손님으로서 언제나 그런 생각을 했기에 택시를 시작하면서 남다른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돈은 좀 적게 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가 나에게 한 말이다.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겠다는 최 씨의 삶의 자세. 그 삶의 자세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충동 명물, 환경미화원 김영백 씨 ▲ 폐지를 수거하고 있는 김영백 씨 ⓒ 박성호 폐지를 모아 시각 장애우들의 개안 수술을 돕고 있는 환경미화원 김영백 씨. 아무 때나 조그마한 인쇄소들이 몰려 있는 장충동의 골목을 찾아가면 이상하게 생긴 차를 몰고 다니는 아저씨를 볼 수 있다. 그가 바로 환경미화원 생활을 하면서도 남다른 이타적 삶을 살고 있는 김영백 씨다. 김 씨는 젊은 시절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여러 해 동안 가 있었다. 그곳에서 돌아온 후 원인 모를 병으로 몇 해를 침대생활을 해야 했다고 한다. 종교생활을 시작하면서 극적으로 몸이 회복되었다고 하는 김 씨는 건강을 찾은 후 환경미화원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병상에 있어보니 아픈 사람들의 처지를 알 것 같았고 그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어 몸이 건강해지고 나서 자신이 그 아픈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교회를 통해 시각 장애인들의 무료 개안 수술에 힘쓰고 계신 어떤 분을 알게 되어 그 또한 그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의 형편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의 집은 장충동 꼭대기 무허가 주택이었고 아내 또한 야쿠르트 배달이라는 힘든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그의 하루는 새벽 3,4시에 시작된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퇴근 후 그는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새로운 작업장으로 간다. 그곳이 바로 장충동 인쇄소 골목이다. 이곳에 오면 일단 밤새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폐박스를 정리한다. 그리고 고지대 쓰레기 수거를 하던 특수개조차를 끌고 인쇄소를 돌아 다닌다. 인쇄소에서 나오는 폐지들을 수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근 아파트 단지로 가서 분리 수거되어 있는 폐지를 수거한다. 그러다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은 김영백 씨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 씨가 왜 폐지를 모으는지도 안다고 한다. 촬영하는 날 한 할머니는 지나는 길에 일부러 폐박스를 들고 와 김 씨에게 전해주고 가기도 했다. ▲ 어느 할머니의 정성. 지나는 길에 폐박스를 주워오신 동네 할머니. ⓒ 박성호 이렇게 한 달간 폐지를 모으면 이삼십만 원 정도의 돈이 모이는데 이 돈으로 한 달에 한 명 정도 시각장애인의 개안수술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폐지란 게 새 종이의 가격과는 비교가 안된다. 한 달간 덤프트럭 대여섯 대 분의 폐지를 모아야만 그 돈이 마련된다고 한다. 덤프트럭 대여섯 대분이란 폐지를 차곡차곡 쌓을 경우 웬만한 집채만한 분량이라고 하니 그의 노력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는 이런 일을 하면서 짬짬이 장충동의 불우한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사람들이 모아준 성금으로 이들을 보살피고 있기도 하다. 새벽에 시작되는 그의 일과는 다시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야만 끝이 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새벽에 일을 하러 나간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고 한다. 김 씨 아내의 말에 의하면 밥을 먹다가 조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그러면 과연 그는 왜 이다지도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을 뿐이다.”성자로서 혹은 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서….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이 그가 한 대답의 전부였다. 사랑의 보일러 교실. 보일러 명장 이영수 씨▲ 보일러 명장 이영수. '사랑의 보일러 교실'에서 강의 중인 모습 ⓒ 박성호 사랑의 보일러 교실을 운영중인 보일러 명장 이영수 씨. 명장이란 나라에서 기능 분야 중에 최고인 사람을 선발해 수여하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보일러 명장이니만큼 이 씨는 보일러의 명장이다. 물론 성동구 혹은 서울 시민들에게 보일러 설치나 수리를 해주는 보일러 가게도 가지고 있다. 명장이니 만큼 그를 찾는 손님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업보다 ‘사랑의 보일러 교실’일에 더 열심인 사람이다. ‘사랑의 보일러 교실’이란 이 씨가 설립한 무료 보일러 기능 강습소이다. 현재 뚝섬 체육공원 내에 있다. 예전 경마장이 있던 시절 스텐드 아래에 있던 건물들이 현재는 성동구 벤처 타운으로 바뀌어 벤처 기업에 싸게 임대되고 있는데 거기에 ‘사랑의 보일러 교실’도 세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보일러 교실’은 벤처가 아니다. 무료강습소일 뿐이다. 촬영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저녁 6시. 수업이 7시부터인데 수강생들은 미리 와서 연습에 열중이었다. 그들의 열기와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이 씨는 사랑의 보일러 교실을 만들던 98년 이전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던 분이었다.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의 집에 무료로 보일러를 설치해주거나 수리를 해주는 일들을 해왔다. 그래서 ‘칭찬합시다’에도 출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IMF가 한창일 무렵 이 보일러 교실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실직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러 기술을 가르쳐 스스로 소규모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나아가 무료 보일러 강습을 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해온 봉사의 세계를 알려 주기로 했다. 그래서 이 학교에서 무료로 강습을 받는 사람들은 수강기간 동안 55시간의 봉사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한다. 물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씨랑 그리고 수강생들과 함께 하는 봉사다. 이들이 하는 봉사는 특별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연상의 독신녀’.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하나도 야릇할 것이 없다. 이 씨와 수강생들은 매주 시간을 정해 무료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의 집에 보일러 설치를 해주고, 수리도 해주고 있는데 이들은 혼자 사시는 노인들을 ‘독거노인’이라 부르지 않고 ‘연상의 독신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유는 ‘독거노인’이라는 말보다 훨씬 느낌이 좋아서라고 한다. 독신녀에는 물론 독거남도 포함된다. 이들의 봉사 활동은 수강생들에게 현장실습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강의실에서 이론으로 듣고 연습 삼아 설치/수리해본 보일러 기술을 이러한 봉사활동의 기회를 통해 직접 실습하게 되는 셈이다.그래서인지 ‘사랑의 보일러 교실’의 기능사 자격시험 합격률은 다른 사설 학원에 비해 월등하다고 한다. 심지어 사설학원에서 몇 번 떨어진 수강생들이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바로 합격을 한 예도 있다고 한다. 수강생들이 자격증을 따게 되면 실업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혼자서 창업을 하거나, 두세 명이 모여 공동창업을 하면 어느 정도의 생계가 보장된다. 창업의 여력이 없다면 각종 건물 혹은 시설들의 보일러 관리사로 취업을 할 수도 있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졸업생들이 보일러 기술로 새로운 인생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이 새로운 것은 단순히 직업이 바뀌어서만은 아니라고 한다. 수강기간에 봉사활동을 배운 사람들은 그 기쁨과 보람을 잊지 않고 졸업해서도 계속 자신의 기술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새로운 것이라고 한다.사실 이 세 사람을 가슴에 새기면서 조금은 열이 받는다. 왜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열심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사회다. 정치인, 기업가, 그리고 공무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정이니 부패니 하는 뉴스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대에 그들이 가진 조금의 여유, 그리고 그들이 가진 조금의 양심이라도 이들에게 베풀어진다면 사회는 좀더 따뜻해질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짧은 생각이다.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여유와 풍요로 남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가장 부자답게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부자가 바로 그들일 것이다. 김영백 씨는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후원금을 주는 사람들을 저는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돈만으로는 되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