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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비도 별로 안 오는데 안 하냐"

잠실야구장 낙서로 헤아려 본 팬들의 마음

01.11.29 15:13최종업데이트01.11.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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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10번지를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관중들의 함성이 없는 경기장, 역시 쓸쓸하다. 한쪽에 문을 연 햄버거 가게도 휑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야구장 기둥과 벽에는 여전히 뜨뜻한 기운들이 남아 있다. 곳곳에 박혀 있는 낙서들. 잠실야구장을 찾았던 팬들은 어떤 얘기들을 하고 있을까.

선수와 구단에 대한 사랑

역시 선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가장 많다. 대부분 '아무개 짱, 파이팅 또는 누구 사랑해'식의 표현들. 다양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몇 몇 낙서들을 소개한다.

▲"재현 오빠, 3시간 기다리다 가요. 너무하시네요.", "성흔님 보러 왔는데, 너무 안나오신다"-불만, ▲"나 이병규 싸인 바다뜨-까아"-환희, ▲"정수근 목걸이 주세요", "성흔 오빠 우리 결혼하자"-애타는 마음, ▲"홍성흔 장딴지 짱"-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집착(?)등.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애정도 담겨 있다. ▲"두산 짱! 인천에서 온 장XX 쓰고 감" - 어느 열혈팬의 신뢰, ▲"00. 10. 20 金. 은혜 목청 터져라 두산을 응원하다 간다. But 져서 열 받네. 두산 파이팅"- 격려, ▲"2002년 시즌 우승 LG", 올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LG 트윈스. 아쉬움, ▲"2001 한국 시리즈 우승. 승리 대박!!! 축하해요. 두산베어스 파이팅!"- 감격.

모두 선수와 구단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낙서들이다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낙서들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낙서들도 눈에 띈다. "화이팅 장종훈 35번, 정민철 #55". 정민철 선수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것은 작년 1월. 1999년 이전에 쓰여진 낙서로 보인다. 이후 55번은 '제 2의 정민철'로 불리는 조규수 선수가 사용했다. 내년 정민철 선수의 등번호는 뭐가 될까.

"이종범 파이팅! 하안동에 아무개가", 글씨가 희미하다. 1997시즌을 마치고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종범 선수. 꽤 오래된 낙서인 셈이다. 경기도 광명시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열심히 응원했던 모양이다. 3년반만에 돌아온 이종범 선수가 무척이나 반가울 듯. '이종범'을 연호하기 위해, 올해 잠실야구장에 왔을지도 모른다.

"서기 2001년 4월 5일, 6대5로 두산이 해태 꺾음". 개막전을 본 어느 베어스 팬의 기쁨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붉은 색 유니폼. 그나마 올해 해태 타이거즈는 고별전도 치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7월 31일, 인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SK와의 마지막 경기가 비로 취소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팬들의 불만

잠실야구장에서도 '비'와 관련한 낙서를 볼 수 있다. "경기 왜 안해?", "경기를 속행하라", 심지어는 "XX, 시합 안 하냐? 9/30"까지. 모처럼 찾아온 야구장, 얼마나 화가 났을까. 9월 30일은 LG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비 때문에 연기됐던 날이다.

올해 이러한 경우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 바로 잠실야구장이다. 시즌 중에 우천으로 경기가 연기되거나 취소된 횟수는 84회. 한 야구장당 평균 10.5회, 잠실야구장은 20회로 두 배에 가깝다. (표참조) 물론, LG와 두산이 함께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비가 오는 날에는 다른 구장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얘기.

마침 잠실야구장에서는 각종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구장 관계자는 "선진국 야구장들처럼 내야의 흙을 탄력 있는 흙으로 바꾸고 있으며, 잔디 교체와 배수 공사도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불규칙 바운드로 인한 경기력 저하를 막고, 비 때문에 경기가 취소되는 경우가 크게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내야석 교체와 화장실 개선 공사도 진행되고 있다.

"잠실 구려. 야, 비도 별로 안 오는데 안 하냐. 짱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사가 내년에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잠실 구려. 야, 비도 별로 안오는데 안하냐. 짱난다", 잠실야구장의 낙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는 팀당 133경기, 총 532경기가 펼쳐졌다. 산술적으로는, ▲532÷전국 주요 8개 구장=66.5라는 계산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133경기가 잠실야구장에서 치러졌다. 전체 경기의 25%에 해당하는 수치. 게다가 올해 프로 야구를 즐기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관중은 299만1064명, 이중 잠실야구장에 132만7238명이 다녀갔다.

전체 경기의 25%를 소화한 것도 그렇지만, 44%의 관중이 몰렸다는 사실은 잠실야구장이 다른 구장과 확실한 차이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장마철만 되면 폭우가 쏟아지는 나라. 웬만한 빗방울은 참아 넘기는 팬들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리고 20년이라는 프로야구의 역사를 감안하면, 적어도 '비'와 관련한 낙서는 이제 사라져야 되지 않겠는가. 가장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이 서울이다. 그 동안 다른 구장에 비해 많은 수입을 올렸다는 얘기도 되니까.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사용된 우천 관련 통계는 KBO홈페이지 '경기 일정 및 결과'를 토대로 산출했으며, 포스트 시즌 기록은 제외했습니다.

2001-11-29 15:10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기사에 사용된 우천 관련 통계는 KBO홈페이지 '경기 일정 및 결과'를 토대로 산출했으며, 포스트 시즌 기록은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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