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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아"

영화 속의 노년(7) : <쁘띠 마르땅>

01.09.29 12:11최종업데이트01.10.0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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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앙트완. 70세. 알츠하이머병으로 온몸이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고 음식도 간병인이 먹여주어야 먹을 수 있다.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만을 확실히 기억할 뿐 다른 기억은 모두 잃어가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들을 수 있다는 것과, 속으로 혼자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눈을 깜박이는 것뿐이다.

남자 아이 마르땅. 열 살짜리 소아암 환자.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으며 움직이지 않으면 어디 아픈 것이고, 장난치고 싶어 하루 종일 몸살을 앓는다.

개구장이 마르땅의 레이더에 '조각상' 같이 꼼짝 못하는 앙트완 할아버지가 포착된다. 앙트완의 아내 수잔은 물론 병원의 의사, 간호사 등 모두가 앙트완은 움직이지 못하기에 듣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마르땅도 마찬가지였으나 같이(?) 놀면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눈을 깜박이는 것을 통해 예와 아니오로 의사 소통을 하게 된다.

마르땅이 자신의 병동에서 앙트완이 있는 노인 병동의 옆 침대로 아예 살림을 옮겨 같이 지내는 가운데, 하루에 한 번씩 문병을 오던 앙트완의 아내 수잔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녀가 없는 앙트완은 혼자 남게 된다.

앙트완의 마음을 아는 마르땅. 낡은 휠체어에 앙트완을 앉히고 앙트완의 친구들인 전직 비밀 첩보원들의 크리스마스 모임에 간다. 그 곳에서 앙트완의 친구에게 마르땅은 운전을 부탁하고 두 사람은 바닷가로 향한다.

바닷가에서 앙트완은 간호사가 대신 쓴 생일 축하 카드와 레고 랜드 입장권을 마르땅에게 주며 '내가 없더라도 잘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속으로' 당부한다.

머리를 빡빡 깎은 마르땅은 무균실 창 밖에서 나누는 엄마와 의사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술을 보며 읽어낸다. '아직 안심할 수 없다, 희망을 잃지 말아라.' 할머니가 선물을 사주시겠다고 한다는 엄마의 말에 마르땅은, "머리카락이나 구해 달라고 하세요"하고 말한다(이 말은 지난 7월 유방암 수술과 뒤이은 항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버린 친구의 말로 내 가슴에 아프게 새겨졌다).

"그 할아버지는 말도 안 통하는데 왜 자꾸 거기에 가니?"라는 엄마의 말에 마르땅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랑 놀아주잖아요."

모든 기억과 일상의 완전한 해체를 뜻하는 알츠하이머병. 그러나 마르땅은 앙트완이 자기와 놀아준다고 느끼지 않는가.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란 어쩌면 이렇게 말이 떠난 자리에서 싹을 틔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9월 21일은 세계치매협회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공동으로 제정한 '세계 치매의 날'이었다. 한국치매가족협회 등에서 기념 세미나를 마련했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고령화 사회의 그늘로 일컬어지는 치매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치매에 대해, 노인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온갖 종류의 이론과 임상 사례, 그리고 치매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적용 등 세미나는 세미나대로 유용한 것이지만, 영화 한 편을 통한 교감과 이해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둔 가족들과 함께 앙트완의 독백 속으로 들어가, 환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보호와 간호를 제공하는 자의 관점에서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리석음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영화는 상영 기간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선물 받은 즉석 카메라를 들고 노인 병동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사진기 앞으로 끌어내는 꼬마 마르땅. 그는 이미 그들의 마음을 읽고 있다. 그 역시 생명의 위기를 느끼는 환자이기에. 그래서 앙트완 할아버지의 무릎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앙트완과 그의 무릎에 올라앉은 마르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아..."

(쁘띠 마르땅Le Monde de Marty / 감독 드니 바르디오 / 주연 미셸 세로, 조나단 드뮈르게)
2001-09-29 12:1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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