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이웃집 토토로, 이웃집 할머니

영화 속의 노년 (6)

01.07.31 21:07최종업데이트01.08.01 14:10
원고료로 응원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두 딸과 '이웃집 토토로'를 보았다. 좌석이 그리 많지 않은 광화문의 한 극장이었는데, 평일이어서인지 대부분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온 모습이었다. 몸이 아파 요양중인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면 같이 살려고 깨끗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로 이사 간 사츠키와 메이. 두 자매의 모습은 실제 내가 기르는 두 아이의 몸짓과 표정과 장난기를 그대로 담고 있어, 저절로 웃음이 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숲 속에서 우연히 도토리 나무 요정인 토토로를 만나는 메이. 언니 사츠키는 나중에 빗속에 늦어지는 아빠를 마중하기 위해 서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토토로를 만나게 되고 비 맞는 토토로에게 우산을 건네준다. 그 답례로 나무 씨앗을 건네주고 고양이 버스를 타고 떠나는 토토로.퇴원 전에 잠시 적응을 위해 집에 오기로 한 엄마가 감기로 못오게 되자 어린 메이는 화가 나고 속이 상해 심통을 부리며 울음을 터뜨리고, 의젓하게 굴던 사츠키도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이 장면에서 "토토로를 보고 울면 당신은 어른"이라고 쓴 어느 네티즌의 영화평대로 나는 어른이었다. 결국 속이 상한 메이는 엄마가 있는 병원을 향해 길을 떠나고, 뒤늦게 메이가 없어진 것을 안 사츠키와 온 마을 사람들이 메이를 찾아 나선다.어린 동생을 찾기 위해 사츠키는 애타게 토토로를 찾아 부탁하고, 결국 고양이 버스를 탄 채 하늘을 달리고 날아서 메이를 찾는다. 병실이 들여다 보이는 나뭇가지에 고양이 버스와 나란히 올라 앉아,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는 두 아이. 그러나 어른들의 눈에는 고양이 버스도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웃집 할머니'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이사온 낯선 집에서 함께 청소를 하며, 빈 집에 사는 '검댕이 먼지 벌레'를 설명해주는 할머니.언니는 학교에 가고 늘 집에서 일하던 아빠도 대학 연구소에 가야 하는 날, 메이를 돌봐주시다가 울고 떼쓰는 메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사츠키가 공부하는 학교로 데려오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난처해 하는 얼굴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를 따고, 오이와 토마토를 차가운 물에 담궜다가 건져서 먹게 해주는 할머니. 약속한 날 엄마가 못 오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는 사츠키를 품에 안고 다독거려주는 할머니.메이가 없어졌을 때 온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고 애타게 찾으시는 할머니.연못에서 발견된 여자 아이의 샌들이 메이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사츠키를 안고 스르르 주저앉아 버리는 할머니. 메이를 찾아 함께 돌아오는 사츠키를 활짝 벌린 팔로 깊이 품어 주시는 할머니.여기 저기 살이 붙어서 두리두리한 몸매에 쪼글쪼글 주름진 얼굴. 이가 빠져 호물호물해진 입 …그러나 아픈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츠키와 메이가 그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신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토토로'를 만나기 이전에 '이웃집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이웃집 할머니'가 계셔서 '이웃집 토토로'가 더 정답고 푸근한 것은 아닐까. 토토로와 아이들을 보는 것만큼 할머니를 보는 것도 행복했다. 거기 영화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 할머니가 계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