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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으로 막 접어드는 계절에 한반도 남쪽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근래에 별로 겪어 보지 못한 이상 가뭄과 그 가뭄의 끝 자락에 불거져 나온 민노총의 연대파업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은 인과적인 어떤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기득권세력과 보수언론으로 통하는 세력에 의하여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2001년 민노총의 연대파업이 과연 가뭄과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둘을 묶어서 이야기하려 했던 세력에 대한 평가는 당장에는 논란 속에 있을지라도 언젠가 역사 속에서 다시 한번 평가를 받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연대 파업을 보면서 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머리에 떠 올린다. 임시고용 상태로 전락하게 된 영국 항만 노동자들의 저항과 이들이 세계 노동자들과 연대해서 투쟁을 벌여나가는 모습을 담은 ‘명멸하는 불빛 Flickering flames’ (1997, 50분, 영국, 켄 로치)이라는 작품이다. 내가 이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단순한 연상 작용이 아니라 한반도에 일어난 사건과 이 다큐멘터리가 실질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켄로치 감독은 우리에게 영국의 극영화 ‘랜드 앤 프리덤’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누렸던 영국 BBC의 한 외화 시리즈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62년에서 82년까지 제작되어 방영된 TV 외화시리즈 ‘Z카’의 감독이기도 하다.
처음에 그런 경력을 소유한 켄로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명멸하는 불빛’이 어떤 다큐멘터리일지 아주 궁금했다. 다소 극적인 구성에 드라마틱하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흔들리는 카메라에 노동자들을 제외한 관련 당사자들 및 기관에 대한 집요한 취재요청 장면이 작품 내에 그대로 나오고 극적이기보다는 저널리즘에 입각한 르포 형식에, 노동자들의 기록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작품이었다.
영국의 항만 노동자들은 임시고용제 하에 오랫동안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국제 항만 노동계획안(1947년)’이 발효된 20년 후인 1967년 임시 고용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22년 뒤인 영국의 대처 수상은 부두 노동자들의 임시 고용을 금지시킨 이 계획안을 폐지해 버린다. 정부가 임시고용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약속을 했지만 항만 노동자들은 다시 임시고용 상태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고 실제로 그런 사태들이 벌어지게 된다.
95년 9월 영국 리버풀의 톨사이드만 항만에서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한다. 사건은 2시간 단위로 지급되던 야근수당이 사전 협의도 없이 1시간 단위로 지급되자 노동자들의 대표가 사장면담을 요청하게 되는데 면담을 요청한 1차 노동자 대표 5명을 회사가 해고하면서 시작된다. 2차 면담 신청한 5명의 노동자 대표도 해고되고, 이후 두 번의 해고에 항의하던 노동자 10여명을 또 해고된다. 이에 격분한 노동자들은 다음날 아침 피켓을 들고 회사 앞에 시위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출근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 결국 이날 출근하지 않은 노동자 329명 모두가 해고를 당하게 된다. 회사는 이들의 집단 행동에 끄떡하지 않았다.
며칠 후 회사는 해고 노동자들 중 2백 명에게만 편지를 보내 출근하고 싶으면 동봉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출근을 하라고 한다. 요주의 인물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노동자들의 결집력을 와해 시키려는 일종의 와해 공작이었다. 이미 해고된 노동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함께 투쟁하기로 결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은 1년간 지속되었고 그들의 투쟁 소식을 들은 전세계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을 한다. 리버풀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본, 캐나다 그리고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항만 노동자들이 하역을 거부하기도 하고 심지어 투쟁소식을 접한 세계 노동자 단체들이 직접 리버풀로 달려와 영국정부와 회사의 처사에 항의하는 국제대회를 열기도 한다. 한마디로 전세계 노동자들이 연대한 투쟁이 진행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은 오늘 한반도 남쪽에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사실 작품성에 대해서 크게 논의할 바는 없다. 장시간 현장을 기록한 점이나 회사나 정부 관계자의 인터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점 등이 눈에 띄나 이는 이미 방송의 르포형 프로그램이나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과 별다르지 않다. 다만 영국 자국 내에서도 고립되었던 이들의 투쟁이 국제 연대 투쟁으로까지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라는 점, 그리고 좌파 감독 켄로치의 성향을 보여준 역작이라는 점에서 세계 다큐멘터리 사(史)에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이 민노총의 연대 파업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은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물결처럼 밀려들던 근세기 초 많은 나라에서는 타협적인 형태로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하게 되고 이를 통해 급진적인 이들 세력을 체제내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노조의 합법적인 활동을 보장하고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인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시정하고자 노력한다.
우리가 사회 보장 제도가 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이런 과정들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을 깨고 나온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국제항만법을 폐지했던 철의 여인 대처와 보수당에 의해 신자유주의가 알을 깨고 나온 것이다.
20년이나 늦게 발효된 67년의 국제 항만법은 당시 부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70년대 초 오일쇼크가 터지자 영국 노동자들은 오일쇼크가 가져다준 위기를 넘기려는 기업들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노동자들은 이에 저항하며 거센 투쟁의 대열에 동참했지만 안정을 갈구하는 중산층과 이들을 대변하는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그리고 마침내 83년 총선에서 중산층을 대변하는 보수당과 대처가 집권을 하게 된다. 이들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회보장을 축소하고,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명분 아래 해고와 충원을 자유롭게 한다. 대신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든 직장을 잃어 버리고 실직과 임시직의 생활에 처하게 된다. 이들의 새로운 정책은 이후 80년대 중반부터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그리고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모태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자. 7, 80년대 이후 수많은 투사들과 열사들에 의해 노동운동이 하나의 궤도를 마련하게 되었는데 IMF라는 경제위기가 닥치자 정부와 기업은 도덕성을 내팽개치고 세계적인 물결을 타고 있다.
한반도 남단에도 이미 그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넘치고 있는 것이다. 웬만한 중소기업도 이제는 허드레 일이나 청소는 인력파견회사로부터 저임금의 노동자를 유입하고 임시고용을 확대해가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초래한 위기도 아닌 IMF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엄청난 규모의 대량 해고가 강행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리해고와 새로운 노동환경은 일개 기업 단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진두지휘 하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다. 아마 리버풀 항만 노동자 대량해고 사태의 확대판일 것이다. 아셈 회의가 국내에서 치러진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으며 구조조정의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작품이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접한 보수 언론의 태도 또한 유사했다. 리버풀 항만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을 영국 언론이 함구했다면, 우리의 보수 언론은 말도 되지 않는 가뭄 논리로 한국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비윤리적인 것으로 매도했다.
또한 항공사 승무원 노조의 파업을 보도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축소하고 그들이 고액 연봉자라는 사실과 승객들이 겪고 있는 불편만을 집중 보도했다. 함구했던 영국 언론이 무책임한 언론이었다면, 매도하는 우리의 보수언론은 비도덕적인 언론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은 이러한 작금의 현실에 처한 노동자들의 지혜이며 단결력의 새로운 수위일 뿐이다. 대량해고가 일개 기업의 차원에서 강행되는 것이 아닌 만큼 개별 사업장 단위의 파업이 공권력과 사주에 의해 무참히 짓밟힐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대우차 사태나 효성중공업 과잉 진압과 같은 사건에서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재계가 ‘효성의 파업이 민노총의 연대파업을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에 강경진압을 요구한 지 하루 만에 정부는 재계와 정부의 관계를 몸으로 보여 주었다.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그런 끈끈한 관계라면 노동자도 연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항공사 고액연봉의 노조라고, 생명을 담보한 병원의 노조라고 노동자의 연대에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연대파업은 자본과 권력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각성이요 현명함인 것이다. 자본의 활동영역이 세계화 됨에 따라 앞으로 이러한 연대 투쟁은 국가적인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으로 이루어질 날도 올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켄로치의 ‘명멸하는 불빛’은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을 미리 예견한 것이요, 리버풀 항만 노동자들의 투쟁과 오늘날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을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역작으로 평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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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7-02 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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