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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엔 우짜든지(?) 확실하게 야한 영화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감동적일 필요도 없고 폭력적일 필요도 없고 그저 예쁜 여자주인공이 나오고 그녀가 화끈(?)하게 벗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분명 여자이고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리고 여자의 신체구조는 대충 어떻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그런 욕구를 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도 화끈하게 벗어(?)...'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 만만한 게 여배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젠 얼추 삼십대 중반을 향하고 보니 서정적 혹은 서경적인 영화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자신은 <러브레터> 보다도 <사월 이야기>가 더 정이 간다고 해서 '한시간도 못되는 그 영화가 무슨?'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월 이야기>는 문득 문득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 속에 펼쳐지던 자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파리 길던 풀들이 바람에 휩쓸리는 언덕이며, 억센 소나기가 아스팔트 위를 때리던 그 아우성, 그리고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졸이며 선배가 일하는 서점엘 가서 매일 책 한 권씩을 사던 주인공의 순수가 자연과 어우러져 강렬한 여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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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썸머>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이미 늦가을이더군요. 노오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바닷가 마을의 이름 모를 긴 둑길엔 낙엽이 된 풀들이 누우렇게 집단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빼 던지고 쌩쌩 달려 찾아낸 바다는 평화 그 자체 였지만 그런 순간은 또 쉽게 종말을 고하고 잊을 수 없어하는 '기억'만 주인공들의 가슴에 남기더군요.
아름다운 사람은 청색의 수의를 입어도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주인공 이신영(이미연 분)은 남편의 자살을 방조한 것이 죄라면 죄였으나, 검사가 살해자로 몰아가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성(?) 좋은 국선 변호사인 서준하 (박신양 분)의 도움으로 무죄가 되었다가, 다시 어찌어찌(?) 꼬여서 사형을 구형 받습니다.
그녀에게 다시금 사형이라는 무거운 형벌이 떨어지고.....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서준하는 방청석을 떠날 수가 없는데. 재판정 복도의 간이의자에 앉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서준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며 주인공 이신영은 울음을 삼키고 또 삼키지요. 그러다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같이 영화를 본 이십대인 조카는 박신양의 연기 혹은 이미지에 넋을 잃었고 삼십대인 저는 보다 성숙해진 이미연의 속울음에 덩달아 훌쩍였습니다. 왜 사랑은 항상 어긋나는 조건하에서 배태되는지. '사형'이 떨어짐으로서 확실하게 그를(서준하) 떨궈(?) 버릴 수 있는 입장이 되자 비로소 이신영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르게 맛보는 가을날의 서정에 짜안(?)해져서 뙤약볕의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진 조카와 전 늘 그렇듯 모두들 나가고 난 맨 나중에 억지로(?) 극장문을 나섰습니다. 저에게 봄이 '석달 열흘의 설레임'이라면 가을은 '그냥 한 일주일 스산할 뿐' 인 계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디안 썸머>를 보고 난 이 시점에선 왠지 이번 가을이 예사로울 것 같지가.......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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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5-30 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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