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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간컵대회, '훌리건'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경찰, 훌리건 전담부대를 긴급 투입할 방침

01.05.28 13:01최종업데이트01.05.2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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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방경찰청은 30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대구에서 열리는 대륙간컵축구대회를 앞두고 경찰이 훌리건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훌리건(hooligan)은 축구장 난동패를 가리키는 말로 64년 페루·아르헨티나의 리마경기 때 훌리건 싸움으로 300여명이 사망하는 등 축구경기가 열리는 각국마다 골머리를 앓게하는 존재다.

경찰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훌리건이 등장한 적이 없지만 월드컵경기의 전초전인 대륙간컵대회엔 훌리건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대구에서 경기를 갖는 프랑스 경우 적지 않은 훌리건을 몰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훌리건의 입국 및 난동에 대비한 대책을 세워 완벽한 경기치안을 확보한다는 게 경찰의 목표다.

경찰은 먼저 해외 경찰 주재관 및 인터폴 등을 통해 대륙간컵에 참가하는 국가의 훌리건 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주한 외국 대사관에게 자국 훌리건에 대한 정보협조도 요청, 자료를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훌리건의 입국을 미리 막는 것은 물론 감시조를 운영, 난동징후 정보 수집 및 현장 대응활동에 적극 방침이다.

대구경찰청은 만일의 경우 대구종합경기장에서 훌리건이 난동을 부릴 경우를 대비하여 경찰특공대 27명과 기동 1중대 130여명 등으로 편성된 훌리건 전담부대를 긴급 투입할 방침. 이와 함께 경기장안에 4개 중대, 경기장밖에 2개 중대를 각각 배치하고, 난동시에는 살수차, 헬기 등을 동원해 진압에 나선다. 훌리건을 검거할 경우에 대비, 통역요원까지 확보했다.

한편, 19세기 근대 축구가 성립된 후 축구장에서의 소규모 폭력사태는 종종 있어왔다. 1960년대 초, 영국보수당 정권하에서 사회복지 축소, 빈부격차 심화에 반발한 실업자와 빈민층이 그 울분을 축구장에서 폭발시켜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3년 리버풀에서 더 콥(The Kop)이라는 조직화된 응원단이 등장하면서 훌리건의 폭력사태는 거대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켄싱턴 앤드 첼시의 팬들로 구성된 헤드헌터스(Headhunters), 웨스트 햄 후원자들이 결성한 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 등 악명 높은 ‘수퍼 훌리건’집단들이 속속 생겨났다.

원래 훌리건은 거리에서 싸움을 일삼는 불량배나 부랑아 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문헌에는 이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898년 영국의 한 조간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어원에 대해서는 훌리 갱(Hooley's gang)이 와전되었다는 설과 19세기 말 런던의 악명 높은 아일랜드 출신의 부랑아 ‘패트릭 훌리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또, 비슷한 시기의 슬라브어와 러시아어에서 같은 단어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이 단어가 동유럽에서 생겨나 영국으로 유입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훌리건들의 난동은 더욱 격렬해져 통제 불가능한 폭동의 수준으로까지 치달았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축구 팬들의 원정 응원이 성행하면서 원정 팬과 홈 팬 간의 충돌도 빈번해졌다. 원정 팬들은 무리를 지어다니며 상대 팬들을 공격하거나 경기장 근처의 거리를 활보하고 기물들을 마구 파괴했다. 이에 따라 축구장의 폭력문제는 하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인한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1964년 페루·아르헨티나의 리마 경기 때 300여 명 사망,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축구전쟁, 1985년 벨기에 브뤼셀 하이젤경기장에서 영국 훌리건의 난동으로 인한 스탠드 붕괴로 40여 명 사상, 같은 해 영국 리버풀축구장에서의 이탈리아 원정 응원팀 39명 사망 등이 있다.
2001-05-28 13:0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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