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고영남 감독의 <깊은밤 갑자기>

<오마이비디오> 잊혀진 한국호러, 20년만의 부활

01.02.25 18:06최종업데이트01.02.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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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그맨 이휘재의 스크린 데뷰작으로 알려진 (그러나 실제 영화를 본 사람은 별로 없는) <그림일기>라는 영화를 기억하십니까?

어설픈 신인감독의 졸작쯤으로 치부되었던 <그림일기>는 사실 1964년에 데뷰하여 35년동안 무려 105편의 장편영화를 감독했던 충무로의 살아있는 전설 고영남 감독의 최신작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렇다치고, 그런 대감독이 오랜만에 또다시 메가폰을 잡았는데 어찌 우리나라 언론은 조그마한 관심도 기울여주지 못했나하는 약간의 서운함이 감도는군여. 한국에는 노장감독에 대한 예우같은건 없는것일까요?

고영남 감독은 6-70년대 다른 여타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일년에 무려 10편 가까운 작품을 동시에 연출하실만큼 다작감독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오면서 일년에 2편 정도의 영화를 꾸준히 감독하고 90년대 들어와 신진감독에 밀려 93년 <금병풍월>을 끝으로 한동안 연출을 중단한 바 있었죠.

고 감독의 장대한 필모그라피를 살펴보면, 6년 만에 재기를 시도한 99년작 <그림일기>를 포함하여 우리가 익히 제목을 들어 알만한 영화로는 90년 신성일주연의 <코리안커넥션>, 89년 <매춘 속편> 등이 있지만 대다수의 영화는 이름조차 생소한 작품들이더군요. 그나마 고영남님의 영화중 가장 유명한 영화가 바로 오늘 소개할 81년작 <깊은밤 갑자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양영화에 대한 역사는 100년전 무서영화의 기록까지 낱낱이 기록되어 있고, 비디오샵을 가도 <전함포테킨>,<자전거도둑>같은 엄청 오래된 고전영화들까지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한국영화는 겨우 10년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도 부족할 뿐더러 비디오샵에 남아있는 7-80년대 한국영화는 몇편 되지가 않은게 사실입니다.

고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 전해져내려오는 81년작 <깊은밤 갑자기> 역시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박물관형 영화가 되어 버렸지만, 다행히 최근 호러마니아들 사이에서 필견의 한국호러물로 이 영화가 알려지면서 <깊은밤 갑자기>를 구비하려는 비디오샵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사장될뻔한 걸작한국영화가 아슬아슬하게 부활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셈이죠.

제가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깊은밤 갑자기>가 브라운관을 통해 방영되었던 10여 년 전 일 것입니다. 그 유명한 이혁수 감독의 <여곡성>이란 영화와 연달아 방송되어서 제 또래 학생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었는데, 아쉽게도 주위사람들은 <여곡성>을 더 많이 기억하더군여. 전 <여곡성>보다 <깊은밤 갑자기>를 훨씬 더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당시 브라운관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상당수의 장면이 삭제된 만신창이의 것이었고, 특히나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인과 남편, 젊은 가정부 세 사람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에 대해서 제가 이해를 할만한 나이가 아니었죠.

오랜만에 비디오샵에서 다시 빌려본 영화는 어릴 적 기억보다 훨씬 더 완성도있는 좋은 작품이란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잇었고, 특히나 지난해 등장했던 6편의 한국호러무비 실패작들과 비교해 볼 때, 이영화에 왜 요즘 호러마니아들이 열광하고 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어릴 적 이 영화를 보았을 땐 후반부 귀신이 등장하는 라스트 장면에만 공포를 느꼈었던걸로 기억이 나는데, 지금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오히려 김영애 의 광기어린 의부증이 자세히 묘사된 중반부가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더군여.

특히나 이 영화의 가장 백미는 김영해 가 상상하는 남편과 가정부의 애정행각이 실제상황인가, 아니면 신경과민으로 인한 그녀의 상상일뿐일까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저도 영화를 내내 보면서 그 진실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는데요.

그녀가 남편의 외도현장을 목격하고 불안에 떨자,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심지어 그녀의 절친한 친구까지) 모두 그녀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헛것을 본것이라고 일축하려 들지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주위사람들때문에 더 큰 강박관념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녀가 남편의 외도장면을 목격할 때 화면은 프리즘을 통한 몽롱한 화면으로 처리되었고, 더군다나 흥분한 김영애를 두고 너무나 태연한 듯 행동하는 남편과 가정부의 모습은 그녀가 본 사실들이 모두 의부증에서 나온 상상일 것이라는 결론쪽으로 관객을 몰아갑니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남편이 뒤늦게 집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관객들은 '목각인형의 저주'는 상상의 산물일뿐이라고 굳게 믿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게 왠걸? 제가 본 호러영화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링>의 귀신장면과 거의 비슷한 충격을 선사하는) 장면으로 기억되는 마지막 컷에서 그 때까지의 믿음이 송두리채 흔들리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헛갈리는데요. 오히려 그런 상상과 현실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영화는 호러물의 범주에도 속하긴 하지만 어찌보면 서양의 <위험한 정사>를 능가하는 놀라운 심리스릴러물 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김영애씨가 느끼는 불안한 심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두통을 느낄만큼 리얼하게 다가오는데요.

영화의 백미라 불리는 라스트의 무시무시한 귀신과의 결투신은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아찔합니다. 한국귀신 특유의 접시 깨지는 웃음소리를 쏟아부으며, 식칼모양의 큰 칼을 들고 집안에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때려 부수는 귀신의 소름끼치는 등장은 요즘 왠만한 한국호러물은 흉내도 내기 힘든것이지요.

아마 요즘세대에겐 중후한 중년배우로만 알려져 있는 김영애 씨가, 이영화에선 부엌칼을 들고 (마치 캐리의 장면처럼) 귀신을 잡으러 돌아다니는 신기에 가까운 명연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녀의 젊은 시절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깊은밤 갑자기'는 충분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영 감독이 타계하기 몇 년 전 김 감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전국을 휩쓴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불현듯 저 세상으로 떠났고 모두들 조금만 더 일찍 그를 기리지 못한 것을 두고 두고 아쉬워해야만 했죠. 고영남 감독 역시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야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수 있는걸까요? 아직 늦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2001-02-25 18:4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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