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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팔 최동원 그라운드 돌아온다

은퇴 후 10년만에 한화 코치로 지도자 데뷔

00.11.10 03:01최종업데이트00.11.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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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과 최동원, 누가 더?'
야구팬이라면, 이런 의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는 부질없는 짓을 해봤을 테다. 80년대 한국야구를 양분했던 주인공 중 그 한 축이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한화의 신임 이광환 감독은 8일 1군 투수코치로 현 부산MBC 해설위원인 최동원 씨(42)를 영입하기로 확정했다. 이로써 최동원은 91년 삼성에서 은퇴한 지 10년만에 기나긴 야인생활을 접고 현장으로 복귀하게 됐다.

선동열이 '완벽한' 투수라면, 최동원은 '위대한' 투수였다. 그만큼 두 선수를 놓고 우열을 얘기한다는 건 무의미할 정도였다. 실제로 기록상 맞대결도 1승1무1패로 무승부였다. 특히 87년 5월 사직구장서 벌어진 15회 연장까지 가는 5시간에 걸친 혈투는 '투수전'의 백미를 보여준 경기였다. 결과는 2대2 무승부.

그러나, 현역생활을 마친 이후의 두 선수의 행로는 너무나 달랐다. 일본 무대까지 진출하며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한 선동열은 은퇴 직후 KBO 홍보위원, 시드니올림픽 대표팀 인스트럭터 등 변함없이 야구계의 주류로서 큰 역할을 다해왔다. 지금도 모든 구단으로부터의 코치직 '러브콜'로 행복한 고통에 빠져있을 정도다.

반면, 12년 전 선수협 조직을 주도한 '괘씸죄' 때문인지 최동원의 은퇴 이후 행로는 야구계의 담합된(?) 외면으로 오히려 야구와 가장 먼 곳으로 향해갔다. 은퇴 직후인 91년에 정치권 진출 시도에 실패하더니 94년엔 의류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TV 요리프로, 코미디프로, 토크쇼 출연 등 방송계를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끔 했다. 그나마 93∼94년의 SBS 해설위원 활동과 올해 부산MBC 해설위원 활동이 그의 '외도' 중 가장 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기회가 되면, 지도자가 되고싶다'는 심정을 종종 표현해왔다.

선수시절, 마운드에 우뚝 서서 다이내믹한 투구동작과 150km의 뜨거운 강속구, 드롭, 체인지업 등 단 3가지 구질만으로 야구계를 주름잡았던 그가 내년 시즌부턴 무사만루의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를 다독이거나, 불펜을 관리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게 됐다.

금테안경이 유난히 빛났던 최동원은 이미 경남고, 연세대 시절부터 국민적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아마야구 관중 100만 시대를 연 주인공이었다. 또한, 롯데 자이언츠로 프로에 입단한 후에도 흥행이 불투명했던 프로야구의 붐을 일으키는 일등공신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84년에 세웠던 '한국시리즈 4승'과 '한시즌 최다탈삼진' 기록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전설로 남아있다.

전근대적 투수 운용을 하던 프로야구 초창기, 하루가 멀다하고 마운드를 들락거리는 바람에 마운드에 오르면 항시 한 쪽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연투의 피로를 풀어보며 와인드 업 자세에 임했던 최동원의 모습을 추억하는 올드 팬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한국 야구 '불세출의 영웅', '살아있는 전설' 최동원. 이제 그는 제2의 야구인생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어쩌면 그의 화려했던 선수생활 만큼이나 빛나야 할 지도자로서의 삶이 10년이란 세월을 에둘러 지금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도자 길로의 물꼬를 튼 지금, 그는 팬들에게 어떤 지도자상을 보여줄까?

"진짜 아플 때 쓰다듬어 줄 수 있고, 간지러운 데 긁어 줄 수 있는 그러한 관계가 형성 돼야만 한다"고 언젠가 그가 내뱉었던 이 말에서 앞으로 그가 지도자로서 지향하는 방향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2000-11-10 03:2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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