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종의 미'. 요사이 너에게 어울리는 말인 듯 하다.
프로야구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한 해 고생했다. 특히 한국시리즈 막판에 보여준 추위를 잠재울 만큼의 뜨거운 열기는 끝마무리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지. 언제 그랬냐는 듯 언론에서 얘기하는 '야구 르네상스',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야구팬으로서 만족스러운 '굿 피날레'였어.
관련기사 - 현대 최고의 날 "이변은 없었다" / 이봉기 기자
관련기사 - 한국시리즈 7차전 전체 관전평 / 김종규 기자
포스트시즌이 시작되면서 '가을의 고전'이라는 악평까지 듣던 너가 현대와 두산의 치열한 명승부전으로 관중들의 발길을 다시 잡아끌더구나.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지. 이러한 야구붐 회생 분위기에 화답이라도 한 걸까? 한국시리즈 최종전이 벌어진 7일 - 마침 입동이었지 - 경기 시작 전, 프로야구 부흥의 날에 어울리는 주인공 2명이 등장하더라. 사실 지금까지 시구를 할 때면, 예쁘장한 여자 연예인이나 시장 등 야구와 안 어울리는 인물이 등장하곤 했잖아. 근데 이게 웬 깜짝 이벤트?
'국보급 투수' 선동열과 '불세출의 영웅' 최동원. 프로야구 초창기 야구열기를 드높였던 전설 속 주인공들의 이날 시구와 시타는 어쩜 이날 경기와 그렇게도 어울리던지. '가을의 고전'을 '가을의 잔치'로 한층 흥을 돋우기에 충분했지. 그 이후 두 팀의 사력을 다하는 플레이. 그리고 최강 현대의 우승.
이젠 어느덧 너와 잠시 이별해야할 때가 됐구나. 경기가 끝나고 전광판 불이 꺼진 후의 쓰레기가 흩날리는 야구장을 본 적 있니? 지금 기분이 마치 그 때와 마찬가지야. 최소한 계절이 두 번은 바뀌어야 볼 수 있겠네. 그 때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기로 하자.
돌아보면, 올 한해가 너에게는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애. 야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도 안타깝고 눈 흘길 일이 제법 많았던 걸로 기억하거든. 오늘따라 유난히 다시금 생각나는 일들이 많군.
시즌이 시작하기 전인 새해 벽두부터 '선수협' 사태가 발생하면서 삐걱댔지. 그래도 시즌은 치러야 한다는 대의 때문에 그 동안 잠정적으로 묻어뒀지만, 또다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할 듯 싶구나. KBO, 구단, 선수, 팬들 사이의 갈등과 앙금은 물론이고 선수들간에도 보이지 않는 알력 때문에 지켜보는 마음이 내내 불안했단다. 모쪼록 선수들이 노예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서, 운동에만 전념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5월이었던가? 잠실구장에서 경기도중 롯데의 임수혁 선수가 2루 베이스에서 쓰러졌었지. 6개월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임 선수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기쁜 소식은 들리지 않는구나. 금방 일어날 줄 알았는데... 롯데 선수들 모자에 쓰여진 '20'이 아닌, 임수혁 선수가 입은 유니폼의 '20'을 언젠가 볼 수 있게 되기를 함께 기도하자꾸나.
9월엔 저 멀리 시드니에서 올림픽이 열렸지. 덕분에 프로야구는 시즌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구. 미뤄진 경기일정으로 급기야 쌀쌀한 11월까지 널 보게 되더구나. 이런 일도 처음이지? 다행히 그러한 애살 덕분인 지 드림팀III가 동메달까지 거머쥐긴 했지. 만일, 메달획득에 실패했을 경우를 상상해보니 지금도 아찔하다. 올림픽 때도 매경기 휘청거렸잖아. 올림픽 이후의 시즌 종반 경기는 기억조차 흐릿할 지경이군.
한 가지 물어보자. 그 많던 너의 팬들은 다 어디 간 거니? 95년 520만 명이던 관중수가 올해는 그 때의 절반 수준이라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 공중파 방송들도 주말 낮에 야구 중계를 외면하고, 드라마 재방송으로 줄곧 일관하는 낯설은(?) 상황에 당혹스럽기도 했어. 한국시리즈 막바지에 다시 예전의 열기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열기를 내년까지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이 있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왕 위기를 맞고 있는 너에게 충고 한마디 하려구. 아직도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예전엔 널 좋아하다가 발길을 돌린 사람도 있고, 애초부터 너에게 냉담한 사람도 많단다. 어쩌면 너가 탄생할 적에 순수하지 못했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원죄'가 아직도 너를 옥죄고 있다고 볼 수 있지.
그렇다면 너는 너의 순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거야. 그 길만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일거구. 땀을 흘리며 플레이하는 성실한 모습과 드라마틱한 승부는 충분히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잖아. 그런데 올 시즌 막판의 '져주기'라든지 '추악한 개인타이틀전', '사인 훔치기' 등의 모습은 너의 도덕성에 흠집을 낼 만한 행동들이었어. 앞으로도 그런 모습들이 계속 그라운드에서 보인다면, 그땐 정말 팬들은 실망하며 네 곁을 떠나가 버릴 지도 몰라.
내년은 너가 20살이 되는 해구나. 이제 10대의 티를 차츰차츰 벗어던지고 성년이 될 준비를 해야할 시기네. 힘차게 도약하는 청년의 모습, 그리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내년 봄에 반갑게 재회하길 기대할게.
겨울 잘 보내. 안녕, 안녕, 안녕!
|
| 2000-11-08 08:43 |
ⓒ 2007 OhmyNews |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