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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공필성과 관련된 일화 하나.
롯데가 99시즌을 준우승으로 아쉽게 마감한 겨울, 공필성은 비시즌을 맞이해 때아닌 올빼미 생활을 했다. 이유는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
그렇다고 인터넷 서핑이나 채팅에 열중했던 게 아니다. 다음 시즌을 대비해 그동안 그가 상대했던 상대팀 투수들에 대한 모든 데이타를 자신의 컴퓨터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96년부터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상대 투수들에 대한 자료를 모아왔던 그는 방대한 정보를 '액세스 97'을 통해 프로그램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 내용은 특정 투수의 스피드나 승부구, 볼배합, 카운트별 스트라이크와 볼의 확률,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 등 직접 상대해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기록들이 총망라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필성이 그 일을 한 이유다. 그는 "나야 내년에 얼마나 많이 경기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후배들에겐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후 열 달 뒤인 10월 31일, 롯데는 전력 극대화 차원에서 공필성을 포함, 10명의 자유계약선수를 발표했다. 여기엔 올시즌 초 경기중 쓰러져 투병 중인 임수혁도 포함돼 있다.
이로써 생일을 4일 앞둔(11월 5일) 공필성은 현역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하는 순간에 와 있다. 그간의 구단에 대한 공헌 때문에, 구단은 내년 초 은퇴경기 후 그의 지도자 연수 주선을 약속했다.
'움직이는 화약고', '등번호 0번', '공가', '사구왕', '허슬 플레이', '외다리 타법'. 90년 프로 입단 이후 그의 이름 앞에 붙어다니던 닉네임이다. 11년간 통산타율 2할4푼대 선수 치곤 꽤 화려한(?) 타이틀이다. 그만큼 팬들의 그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는 증표다. 지극히 평범한 성적의 선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어디에서 온 걸까?
강한 눈빛, 끈질긴 승부욕, 넘치는 패기. 갓 프로에 입문한 신인선수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11시즌을 치르고 은퇴를 눈앞에 둔 백전노장 공필성의 올시즌 포스트시즌 모습이다.
그는 처음부터 스타였던 건 아니었다. 89년에 태극마크를 달긴 했지만, 입단 동기인 박동희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 등번호 '43번'을 달고 롯데 유니폼을 입고 들어왔다. 프로 입단 후 2년 동안은 유격수를 맡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실책을 범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다소 부정적 의미로 '움직이는 화약고'라는 별명을 얻었다. 끝내 91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때 뼈아픈 실책을 하게되고, 이후 그는 피나는 수비연습을 하게 된다.
92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등번호도 자신의 성을 연상시키는 '0번'으로 바꾼 후, 마침내 국내 최고의 3루수로 거듭난다. 글러브가 못미치면 몸으로 막고, 몸으로도 여의치 않으면 얼굴로라도 막아내는 근성, 그리고 곡예에 가까운 슬라이딩 캐치. 바로 메이저리그 수비 그 자체였다.
이처럼 수비 하나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올스타전에도 4번 출전하기도 했다. 만약, 한국 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처럼 수비성적 위주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뽑았다면, 올스타전 출전 횟수만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을 것이다.
"나도 사구를 많이 맞았지만 공필성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구왕 원조인 김인식(전MBC)의 말이다. 공필성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 계기는 몸을 사리지 않고 공을 맞는 '한 시즌 최다 사구 22개' 기록 이후였다. 95년에 공필성이 세워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이후 그의 사구 행진은 프로야구의 또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줬다.
그는 상대 투수의 불같은 광속구가 몸으로 날라와도 기꺼이 맞으며, 아픔의 고통보다는 '살았다'는 기쁨에 겨워 1루로 힘차게 뛰어나갔다. 그래선지 목욕탕에서 그를 본 팬들의 말에 의하면, 몸에 있는 멍 자국 때문에 공필성만은 금방 알아 볼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공필성은 국내선수 최초로 외다리 타법을 쓴 장본인이다. 하지만, 결국 체력 소모가 심한 외다리 타법 때문에 선수생명이 짧아진 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시즌 중반인 7월초에는 부친상을 당하는 슬픔 속에서도 오히려 후배 선수들을 독려하며 그라운드를 호령,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마산출신 스타 공필성. 그는 이제 그라운드를 떠나지만, 그가 그동안 보여줬던 패기넘친 허슬플레이는 영원히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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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11-01 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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