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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권리를 우리 힘으로 지키겠다고 나선 프로야구 선수들.
'82년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한국 프로야구는 2000년 현재까지도 선수들의 보호나 권리문제는, 일본규약을 베껴온 20여년전 그대로다.
대기업의 마케팅 홍보 비용은 점점 증가하는데, 선수들은 여전히 몸좋을 때 반짝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치부된다. 언제나 부상의 위험에 처해있고 재계약이 안되면 야구밖에 모르던 이들은 대책없는 실업자가 되어야하는 현실.
그래서 지난 1월 22일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의회가 결성됐다. 그들의 요구는 KBO와 구단에서 독단적으로 운영해오던 규정을 선수대표까지 포함한 3자가 함께 논의를 하자는 것.
40여일의 지리한 투쟁 끝에 일정정도 양보를 얻어내고, 다시 투수로 협의회 회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송진우 선수.
134승. 투수로선 최고의 영예인 현역 최다승을 기록한 송진우 선수를 8월 30일 LG와의 경기를 앞둔 한화 덕아웃에서 만나봤다.
134승 축하한다. 지금 컨디션은 어떤가?
"좋은 편이다. 올스타전 전후해서 여름 한철은 고생했다. 그러나 지금은 괜찮아졌다. 날씨가 시원해지면서 더 좋은 컨디션 유지할 듯하다."
앞으로 더 좋은 경기 보여 줄 수 있겠나.
"물론, 자신있다. 항상 마음속으로 좋은 경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팬들한테 좋은 모습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수협 때문에 전지훈련을 못한걸로 알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오히려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정신력인가?
"동계훈련도 그렇고 캠프도 못갔기 때문에 1군 합류하기 전까지도 내 페이스를 못찾았고 안좋았다. 근데 1군 올라와서 좋아졌다.
선수협의회 일할 때 운동 못했던 것은 이것 저것 처리해야하는 일이 많아서 그랬다. 정신력이 도움이 된 듯하다. 팬들이 많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잘해야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야구를 못하면 명색이 회장인데 협의회를 좋지 않게 볼까봐서..
협의회에 열심히 했던 다른 선수들도 그래서 잘하는 듯하다."
선수협 회장을 전후해서 구단과 선수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처음엔 어색했다. 구단에서도 좋게 보진 않았었고.. 선수들이랑 얼굴 맞대면 서먹하고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나아졌고 지금은 전처럼 잘 생활하고 있다."
신문에는 송진우가 나오면 타자들이 더 잘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나?
"(웃음)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다. 투수라는 직업은 타자의 도움 없이 승리투수가 될 수 없는 포지션이다. 공격이나 수비나 야수들의 도움이 지금까지 성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즌 초반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며 구단에서 보너스를 안준걸로 아는데?
"그랬다. 그래서 구단에다 몇차례 얘기했다. 처음 팀에 합류하고 반 받았고 시즌 전반 끝나고 나머지 반도 받았다."
정부와 KBO, 구단에서 선수들도 참여하는 '제도개선 위원회'를 만들자고 타결을 봤었는데, 4월 이후로 난항이다. 대책은 있는가?
"지금은 문화관광부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선수대표 두 명 중 나와 8개 구단 주장 중 한명을 선임하기로 했다. 다음주 월요일날 만나서 그것을 논의할 예정이다."
선수들 분위기는 어떤가?
"직접 내가 주장들 만나고 전화통화했다. 전체적으로 좋은 쪽으로 얘기하고 있다. 협조해 줄 것이다."
선수협의회를 만들기 전과 후의 선수들 생각의 변화가 있나?
"될 수 있는 한 많은 선수들과 만나서 얘기했는데, 다들 좋게 생각한다. 다만 시즌중이라 각 팀 성적에 여념이 없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건 없다. 그래도 선수들 생각은 시즌이후에 모두 (협의회) 하는 걸로 알고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잘 될 것이다."
지난 겨울에도 선수들 대부분은 심적으로는 다 동조하고 있었지 않았나?
"그때는 처음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지금은 협의회라는 단체가 있고 재구성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더 반응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번에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한다. 느낌은?
"가고 싶었는데 뽑히니까 기분이 좋다. 88년 시범 경기때 나갔었고 근 12년만이다. 늦은 나이에 대표가 됐다는게 기분이 좋다. 그땐 아마추어 지금은 프로로 처음이다."
선수협 선수들을 올림픽 대표에서 일부러 제외했다는 여론이 있는데?
"글쎄... 사람은 많고 뽑을 인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불만은 서로가 있을 수 있다. 반대가 되도 그런 말 나올 수 있다. 인정할건 인정하고 나가는 사람들 열심히 해서 국위를 선양했으면 한다."
선수협 활동을 전후해서 스스로 변화된 게 있나?
"크게 변한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회장님 회장님하니까 그게 좀 부담스럽고....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옛날엔 내 팀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8개 구단, 프로야구 전체를 생각하게 됐다."
기자나 주변 동료들 얘기로는 매우 이타적이 됐다고 하던데?
"나는 잘 모르겠다. 전체 프로야구를 생각하고 프로야구 선수들하고 관계되시는 분들, 모든 사람들이 잘 됐으면 하는게 내 생각이다."
한겨레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팬됐다는 사람 꽤 봤다?
"직접 인터뷰를 했는데 약간 틀리게 나온 부분이 있어서 좀 걱정스러웠다. 내가 한 얘기를 잘못받아들여서 그랬던건지... 노동절 얘기는 내가 선수협 활동하면서 직접 들은 얘기라 그렇게 얘기했다. 노동절이 미국에서 노동운동할 때 100여명이 죽었다고 하더라, 총에 맞아서... 그래서 그날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민주노총분한테 들은거 같다."
선수생활중 제일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나?
"올 겨울이 제일 힘들었다."
가장 보람있었던 때는?
"현역 최다승할때, 지난 29일. 5월 18일, 노히트 노런 기록한 날은 그냥 얼떨떨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선수생활도 오래했고 우승도 많이 했는데 일단 150승을 하고 싶다.
좀 더 성실하게 많은 기록을 차근차근 쌓아가지고 팬들이 송진우란 이름을 많이 기억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송진우 선수의 꿈은 훌륭한 야구 선수로 기억되고 그 다음은 자신의 고향팀에서 코치와 감독을 하는 거였다. 그러나 선수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그는 그의 아내에게 '코치, 감독직은 기대하지 말자'고 했다한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당당하게 야구를 하고 싶고, 지금 배트를 휘두르는 어린 선수들에게 훌륭한 선배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송진우는 자신의 소중한 꿈을 걸고 오늘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회장으로 목숨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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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08-31 13:22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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