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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무진장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택시2'가 빨리 만들어지기를 기다려 왔을 것이다. 뤽 베송의 아이디어로 인해 27일만에 '택시'라는 시나리오가 완성, 영화가 탄생되었고, 영화속의 택시속도만큼 빠르게 '택시2'가 뚝딱 만들어졌다.
'택시2'는 프랑스에서 개봉 첫 날 제1회 상영에서 2만 3262명의 관객을 동원, 개봉 첫 주에 300만 이상의 수를 돌파하였고, 1주일만에 전편 '택시'의 총 관객수를 껑충 뛰어넘었다고 하니, 도대체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일단 뭇사람들이 말하는 <뤽 베송의 '택시2'>에서 뤽 베송은 감독이 아니다. 경영경제학 석사 학위와 고등영화 학원에서 연출 및 촬영 학위를 받은 제라크 크라브지크가 감독을 맡고, 뤽 베송은 제작 및 각본을 맡았다.
'택시2'는 컴퓨터 그래픽 없이 거의 모든 장면을 스턴트를 기용해 실제로 촬영했으며, 쟁쟁한 실력을 자랑하는 최고의 프로 카레이서들이 다시 모여 전편보다 훨씬 가속된 드라이브를 실제로 연기해냈다. 이런 위험한 시도로 인해 촬영 도중 카메라 맨이 목숨을 잃고 다른 한 명은 두 다리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속도감을 주기 위해 필름을 빨리 감는 식의 속임수는 쓰지 않았다.
2편은 확실히 그 스케일이 커졌다. 모든 스탭들이 '전편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2편을 제작했고, '전편보다 더 낫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2편에서는 한국유학생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일본의 국방부 장관이 나온다.
220㎞로 달리던 택시는 306㎞로 질주한다. 전편에서는 피자배달구역이었던 마르세이유를 질주하던 택시가 이번에는 파리에 입성한다. 어리숙했던 경찰 에밀리앙(프레데릭 디에팡달)은 27번만에 드디어 운전면허를 따게 되고, 에밀리앙의 상관인 금발의 미녀 페트라(엠마 소버그)는 말이 많아졌다. 일본어까지 구사하니 말이다. 그녀의 긴다리가 뻗어나가는 발차기에 주목해 보자. '섹스'를 '숙제'로 풀려는 다니엘의 여자친구 릴리(마리온 꼬띨레르)는 영화내내 온 몸이 뜨겁다. 마치 다니엘이 몰고 다니는 택시 푸조 406의 엔진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니엘(사미 나세리). 영화의 처음 장면인 카 레이싱 레인에 갑자기 나타나 번개같이 빠른 운전실력을 발휘하는 다니엘은, 해박한 자동차 지식과 운전기술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프랑스 코미디가 미국에서 먹혀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상업성의 부재일 것이다. 콧대 높은 프랑스영화계가 상업성은 따로 떼어낸 채,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예술영화를 만들어 내니, 'R'이 만들어내는 비음 콧소리에 세상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뤽 베송은 프랑스영화에 헐리우드의 상업성을 효과적으로 차용하여 '택시2'를 세상에 꺼내놓았다. 관객은 스피드가 느껴지는 택시레이싱 장면에서 약 20분간 디즈니랜드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한 느낌에 흠뻑 빠질 것이며, 에밀리앙과 페트라, 다니엘과 릴리의 섹스어필한 대화 속에서는 프랑스 특유의 로맨틱 유머를 맛볼 것이다.
더욱이 이번 영화에는 가라데 액션까지 첨부되었으니,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의 양념들을 골고루 뿌려놓은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가 된 셈이다. 아마도 뤽 베송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사그러들지 않는 한 프랑스 코미디는 그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
9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영화지만, 전편과 마찬가지로 늦여름 무더위를 쫓을 킬링타임용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지금 초고속 스피드로 프랑스유머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니엘의 택시에 승차해 보자. 멀미? 구토용 백(bag)까지 장착된 택시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뤽 베송이 궁금하다>
1959년 3월 18일, 파리출생.
프랑스 '클럽 메드' 소유인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의 휴양지에서 둘 다 스쿠버 다이버인 부모님을 따라 대부분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영향으로 인해 뤽 베송 역시 상당한 다이버 실력을 가지고 있다.
10살 나이에 이미 바닷가의 돌고래와 수영을 할 정도.
그의 어릴 적 꿈은 해양생물학자가 되어 바다세계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었으나, 17세에 다이빙 사고를 당한 후 그는 진로를 바꾸어야 했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 중퇴를 했다.
<제 5원소>는 그가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꿈꿔온 생각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다이빙에 대한 집착과 아쉬움은 이후 <그랑부르>(미국에서는 'The Big Blue'로 개봉)를 만들게 했다.
뤽 베송은 19살에 헐리우드에 갔고, 3년 동안 미국영화계에서 직접 일하면서 공부했다. 이런 연유로 그의 영화들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미국영화라는 평을 듣는 것은 아닌지? 그는 간간히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그가 감독한 첫번째 작품은 83년 <마지막 전투>. 이 작품은 24세 감독의 야심만만한 실험적 스타일로 젊은 영화광들을 매료시켰다. 그 후 85년 <서브웨이>를 제작, 예술적인 컬트감각에 대중적인 호소력이 결합되면서 비평계의 찬반양론을 이끌어냈다.
그 후 88년 <그랑부르>를 제작하였으며, 90년 <니키타>로 가장 큰 히트를 날리고, 94년 <레옹>으로 탄탄한 팬들의 그룹을 형성할 수 있었다. 97년 <제5원소>로 프랑스에서도 거대한 인기몰이를 했지만, 99년 <쟌 다르크>는 뤽 베송의 네임밸류에도 못 미치는 박스오피스 하위 기록과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참혹한 영화가 되었다. 쟁쟁한 배우들과 엄청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STAFF -
제작, 각본 : 뤽 베송
감독 : 제라르 크라브지크
촬영감독 : 제라르 스테린
영화음악 : 엘 케미야
- CAST -
다니엘 : 사미 나세리
에밀리앙 : 프레데릭 디에팡달
릴리 : 마리온 꼬띨레르
페트라 : 엠마 소버그
경찰청장 : 베르나르 파시
까미유 : 마누엘라 고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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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08-30 1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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