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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은 암울해 보인다.
흑인들이 하는 모든 행위들이 왠지 난폭해 보인다.
흑인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가 처음 흑인 영화라는 느낌을 받은 영화를 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내 기억으론 성장영화였던 것 같은데 백인 사회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흑인 영화는 진지한 편인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영원한 나의 허리케인 카터 아저씨께
이 편지를 받으실 아저씨. 레스라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보다는 못하겠지요? 일단은 자유의 몸이 되셨으니까 말이죠.
증오가 나를 감옥에 가뒀지만
사랑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
-루빈 허리케인 카터-
아저씨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이 말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영화의 모든 것이 이 짧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구요.
어릴적 친구를 성추행하려던 백인 남자에게 폭행을 행사한 후부터 아저씨의 인생은 참 많이 변했죠. 그 증오로, 백인에 대한 증오가 자신을 감옥에 가두었고 아저씨는 그 곳에서 유일한 무기인 몸을 단련시키며 반드시 감옥에서 빠져나갈 것을 다짐했었죠.
그러나, 지독하게도 아저씨는 그 올가미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더군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아저씨는 백인만이 정당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곳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지만 아저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것이 레스라로 하여금 아저씨에게로 마음을 열게 했던 것이구요.
아저씨가 그랬죠?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도 감옥에서 죄수복을 입을 것을 요구받자,
"당신이 나를 감옥에 오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것은 내 마음, 내 의지대로 할 것"이라고 말이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90일간의 독방살이를 하게 됐지만 말이예요. 독방에 보여준 아저씨의 모습은 정말 인간의 의지가 저 만큼일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잠시 헷갈리게 했던 아저씨와 마음과의 갈등 또한 참 인상적인 장면이었죠. 그리고 90일간의 독방 생활이 끝나는 날 아저씨의 말대로 죄수복이 아닌 줄무늬가 없는 옷을 입게 됐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아참, 당연한 것이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이셨을 수도 있겠네요.
죄를 짓지 않았건만 사법당국은 그에게 족쇄를 채웠고, 챔피언이 될 수도 있었건만 감옥에 투옥되었다네!
영화속에서 가끔 들려주는 밥딜런의 '허리케인'이라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아직도 귀속에서 흥얼거려져요. 음악은 즐거운데 가사는 슬픈 아이러니한 곡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있었죠. 뭘 찾았냐구요? 희망이요.
아저씨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감옥에서 살 것을 다짐했지만 저는 희망이 보였어요. 아저씨를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들이 있었잖아요.
아저씨는 마음속에서 그 친구들, 즉 백인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아저씨 속의 마음과의 싸움에서 이기신 거예요. 처음으로 증오가 아닌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싹튼 것이라구요.
아저씨의 표현대로라면 그 친구들의 사랑이 결국 아저씨를 자유롭게 한 것이구요. 그렇지만 저는 마지막 법정에서 그 판사를 믿지는 않았어요. 아저씨를 50평생 감옥에 있게 일조를 했던 그 법정을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근데 법은 정의래요. 정의는 반드시 이기는 것이잖아요. 법은 정의의 실현이니까요.
다행히도 그때 그 법은 스스로 타협하지 않았어요. 그 덕에 아저씨는 자유를 찾았구요.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라는 표현이 있나봐요.
영화 마지막에 무슨 상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아저씨 얼굴을 봤어요.
영화가 끝났다고 서둘러 나가는 사람들 틈 속에서 본 아저씨 얼굴이 좋아 보였어요. 아저씨와 레스라 그리고 저와의 만남도 우연은 아니겠죠?
위험에서 구해준 신의 아들? 루빈과 레스라
그리고 그것을 아름답게 지켜본 저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닐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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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03-28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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