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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한다.
내게도 동성을 향한 끌림이 있던 시절이 머물렀음을.
여고시절. 그 때 우리가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저 희소성의 원칙에 의해 마지못해 선택된 총각선생님 혹은 발육이 덜 된 듯 묘한 중성적 매력을 풍기던 한 반의 여자아이.
예외적으로 발달한 운동신경과 변성기가 오지 않은 사내아이의 그것 같은 목소리를 가진 그 애에게 열광하던 열 일곱. 너와 사귀고 싶다는 쪽지를 보내고, 도시락을 함께 먹고, 화장실을 함께 가며 만들어가던 행복한 기억들. 그 때 세상은 아직 우호적으로 보였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론으로 인한 별다른 차별을 가정에서 겪지 못하고 자란 내가 처음 만난 사회는 예상외의 많은 것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 세상은 분명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로 나뉘어진다는 것. 그 간격을 뛰어넘어 그저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평가받고자 한다는 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부당한 억압과 모멸을 감수해야만 하는 험난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공적인 영역 속에서의 삶이 구조적 문제로 인해 그랬다고 친다면 사적인 만남들은 나았던가. 진보적인 과 안팎의 분위기 탓에 겉으로라도 진보적인 양 행세해야 했던 남자애들 곁에 머물러 있던 대학 시절, 우린 아직 대적전선을 형성할 만한 뚜렷한 야만의 징후를 남자아이들로부터 목격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 처음 만난 남자들은 얼마나 느글거리는 해독불가의 종족들이었던지. 어떤 남자들에겐 여성은 단지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이거나 자신의 값어치를 높여주는 전시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의 충돌로 깨달아야만 했다. 여성해방이론서 한 권 읽지 않아도 저절로 투사로 변모하게 되던 날들.
그래서였을까.
어느덧 영화 속에서나 소설 속에서 혹은 실제의 삶 속에서도 나를 매혹시킨 여자들은 모두 여성에게 주어진 고정된 역할의 벽을 뚫고 나가려는 삶을 사는 이들이었다.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 '영혼의 집'에 나오는 매혹적 캐릭터 블랑카-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했던-, 영화 '컨택트'의 집념의 과학자 조디 포스터 그리고 나로 하여금 팬클럽 결성까지 자행하게 만들었던, 대한민국 최고의 공과대학에서 천재소리를 듣던 스포츠 만능의 여자후배에 이르기까지. 고백하건대, 스포츠센타에서 라켓 좀 휘두른다는 사내녀석을 끌어들여 그 애와 시합을 붙여 놓고 내기 음료수를 얻어먹는 건 한 때 내 삶의 최고 희열 중 하나였다.
가로막힌 벽.
한 번도 우리에게 열린 적이 없던 문을 향해 용감하게 걸어가는 여자들의 삶은, 그녀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조건적인 헌사를 내게서 받곤 했다.
그리고 여기 나를 매혹시킨 또 다른 영화 속 주인공이자 한 때 실존했던 인물,
티나 브랜든.
1972년에서 1993년까지 스물 한 살의 짧은 삶을 살다간, 남자가 되고 싶었던 여자. 이십여 년간 스스로를 억압하며 살아야했던 그녀가 겨우 성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한 여자를 만나 새 삶을 꿈꾸었으나 현실의 잔인한 벽을 뚫지 못하고 세상의 편견과 폭력으로 인해 쓰러졌다...는 어쩌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나를 울리고 매혹시키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 지독한 사실성 때문이다.
그저 두려움없이 사랑을 갈구하던 예민하고 섬세한 그녀가 단지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하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현실이 과장됐다고 말하지는 말자. 무자비한 강간의 끝에서 "너 괜찮니?" 친절하게도 안부를 묻고, 법정에서조차 "눕힌 다음에 어떤 자세였지?"를 묻고 있는 남자들의 세계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애초 그녀가 달리는 차에 매달려 버티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남성다움'을 시험하고, 말보다는 주먹이 문제해결의 우월한 도구인 그 야만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끝자락이 보였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감정적인 걸까? 그녀가 걸어 들어간 남자들의 세계는 얼마나 폭력적이고 거칠었던.
따스하고, 섬세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울 줄 아는 예외적인 '남성성'을 지닌 그녀가 그들만의 세계에 몰고 올 혼란이 그들은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어쩔 수 없는 편가르기를 한 번 더 하자면.
감옥 안에서 자신의 몸은 여자지만 정신은 남자라며 정체성을 고백하는 브랜든에게 "네가 뭐든 상관없어. 내가 여기서 꺼내줄게" 격려하는 그녀의 여자친구 라나는 얼마나 정직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 나가는 인물인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에게 얼마나 고착화된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이 넓은 지구 위에 그네들이 설자리는 얼마나 좁은지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불안하고 격정적인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인양 극도로 긴장되고 집중된 조명과 카메라. 극대화된 명암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어두운 현실세계와 따스하고 밝은 그들만의 세상.
그녀가 스물 한 살에 세상을 떠나지 않고 조금 더 머물렀더라면 생이 달라졌을까. 여전히 여성과 동성대자와 유색인종과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기만 한 지구 위에서 그녀들은 무엇을 꿈꿀 수 있었을까. 어차피 스러질 삶. 차라리 이른 포기가 나았다고 말한다면 다시 슬퍼질 것 같다.
그러므로, 오늘은 오직 나를 위로하기 위해 중얼거려 본다.
'왜곡되고 편협한 성역할로 상처입는 건 여성뿐 아니라 결국 남성도 마찬가지'라는 지독히 교과서적인,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우리도 아름답게 살아야지.
앞일을 생각하면 두렵지만 네 생각을 하면 힘이 나."
브랜든이 라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구절이다.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과연 정말 아름다운가?
혹,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누군가의 작은 세계를 짓밟고 있는 이가 그대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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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03-28 0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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