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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6년 전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팀 버튼의 단편 '프랑켄 위니'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아이에게까지 적용시킨 휴머니즘은 물론, 대단히 독특한 비주얼과 세트, 유별난 세계인식은 헐리우드 내부에 또 한명의 혁명가 탄생을 점치게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1990년 그의 영화적 분신이라할 조니 뎁과 함께 찍은 '가위손'으로 인간탐구의 진중한 발걸음을 떼어놓은 것이다.
'인간은 악(惡)하고 동시에 약(弱)한데 그런 인간에게 무슨 영속과 초지일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관객들에게 던지며 작가의 반열로 성큼 올라섬은 물론이거니와 메이저 입성이라는 세속적 성공까지도 이루어낸다.
배트맨(BatMan) 시리즈 중 1편과 2편은 팀 버튼의 허무적이고, 회의적 세계인식의 단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음울한 도시 '고담'의 살풍경과 고딕을 강조한 건물들-권위적인 건축양식의 강조로 권위를 부정하는 코드-, 기존의 어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반영웅적 영웅. 악과 선의 경계에 대한 모호한 설정으로 미국을 지탱시킨 영웅전설을 뒤집어 엎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래서 조엘 슈마허가 메가폰을 잡은 동명의 시리즈 배트맨 3,4편에 비해 오락성과 흥행적 성공은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평자들은 팀 버튼 작(作) 배트맨 1,2편을 '작가주의 영화'로 칭하며 그의 예술적 성취에 월계관을 씌워준다.
흑백영화 '에드 우드(ED Wood)'는 실존했던 언더 헐리우드의 기인(奇人)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 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영화열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자본과 재능을 결핍을 넘어서는 인간의 의지. 에드우드에게 있어 벨라 루고시의 역할에 비견할 만한 독립영화 전문배우 조니 뎁의 탁월한 연기도 이 영화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팀 버튼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애정과 탐구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지만 영화는 특히 자본에 휘둘리기가 쉬운 쟝르다. 우리는 헐리우드라는 괴물에게 영화적 재능을 흡혈 당하고 '토사구팽' 당한 빔 벤더스의 경우를 본 바있다. 헐리우드와 결별하고서야 빔 벤더스는 '베를린 천사의 시'를 어렵게 찍던 예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파리 텍사스'라는 수작(秀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팀 버튼이 '화성침공'을 내놓았을 때 필자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것은 아니잖은가?" 천문학적 제작비와 그 자신 하나만으로도 무시못할 메리트를 갖는 거물급 배우들의 대거 기용이 그를 주눅들게 한 걸까? 이제는 속된 말로 '돈도 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에게 들어선 걸까?
'화성침공'엔 팀 버튼이 전작(前作)들에서 보여준 뛰어난 영화적 감수성과 다소 기이하기까지했던 독특한 사물인식의 향기들이 모조리 거세되어 있다. 거기에는 천박한 대중추수와 뻔한 극 전개, 잡스럽고 천박한 웃음이라는 코드들만 정열되지 못한채 넘실된다. 아, 구정물에 발을 딛기 시작한 이 연약하고 불우한 영화천재를 어찌할 것인가?
지난 토요일(1월 29일) 단성사를 찾았다. 내가 '슬리피 할로우'를 관람한 건 순전히 락 그룹 '도어즈'의 짐 모리슨과 '비틀즈'의 존 레논의 노래를 들으며 불행했던 유년을 견딘, 제대로된 영화의 꿈을 키웠던 순수했던 한 청년으로 팀 버튼, 그가 제 자리로 돌아왔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화성침공'은 속된 성공에 혹한 그의 사소한 실수이길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오후 3시 극장에 불이 꺼졌고 영사막이 환해졌다. '슬리피 할로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울고 싶었고, 공포심에 이빨이 부딪칠 지경이었다.
한번 망가지기 시작한 인간이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이렇게 힘든가?라는 자괴감과 환멸에 울고 싶었다. 작년 작고한 존경받는 영화괴물 스탠릭 큐브릭이 왜 헐리우드라면 이빨을 "드드득" 갈았는지, 대체 자본(資本)이 얼마나 영화와 영화감독을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서 망치는지 무섭기 그지 없었다.
조니 뎁과 조수역할 소년의 관계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장 쟈끄 아노가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에서 숀 코너리와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치졸한 복사판이었다.
고딕풍의 건물세트와 음울한 안개, 마을을 감싼 악의 전조(Oman)는 그의 이전 작품에서 사용된 수 많은 장치적 재능 가운데 대중의 구미가 당기는 것만을 재탕.삼탕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스토리? 삼류의 미국 호러무비를 두어편 본 사람이라면 초반 10분만 봐도 나머지 이야기가 뻔해 남은 80분을 좌석에 앉아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목을 자른 살인범의 정체가 너무나 뻔했고 이야기의 발단과 사건배경이 상투적이기 그지없었다.
영화적 완성도? 한달에 세편도 제작이 가능하다는 한국 에로비디오에 비견할만 큼 조악했다. 아, 가난하고 위대했던 한 젊은 천재를 헐리우드라는 거대한 비즈니스 시스템이 10년만에 속물 영화장사꾼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팀 버튼. 그의 우울한 청춘을 버티게 한 방부제였다던 짐 모리슨과 존 레논. 존 레논은 1960년대 경쾌하게 사랑을 노래하는 '비틀즈'라는 4명의 악동중 하나로 출발해 총격으로 사망한 1980년 12월 8일까지 철학과 무정부주의, 빛과 어둠, 인간을 노래하는 성자(聖者)로 계속적 성장을 거듭했던 사람이다.
'도어즈'의 보컬 짐 모리슨은 싸구려 위스키와 마약에 젖어 살다가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28살의 나이로 요절한 가수로만 알려져 있으나, 제임스 더글러스 모리슨이란 필명으로 시집을 세권이나 낸 시인이자, 프레드릭 니체와 쟈끄 바세에 경도되었던 진지한 철학자 지망생이기도 한 사람이다.
짐 모리슨의 노래 '언논 솔져(Unknown Soldier)' '피플 아 스트레인지(People are Strange)' '디 앤드(The End)' '웬 더 뮤직스 오버(When The Musics Over)'를 들어보라.
거기에는 남의 나라 전쟁(베트남전(戰))에 가서 젊은이들이 죽는 판국에 술이나 마시고 청춘을 낭비하는 자신에 대한 격렬한 혐오와 '인간이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가?'라는 고뇌, 기성질서와 경직화된 미국의 보수성을 냉철히 비판하는 천재의 한숨과 절규가 행간마다 절절히 숨어있다.
긴말 말자. 팀 버튼이여. 우리는 아직도 당신을 버리지 않았고,
짐 모리슨과 존 레논이 당신의 유년을 지배했던 것처럼, 우리의 우울하고 궁핍했던 유년을 밝힌 당신의 이전 영화를 기억한다.
돌아오라. 길을 잃고 방황하다 쓸쓸히 죽어가기엔, 팀 버튼! 당신은 아직 너무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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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01-31 00:00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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