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는 왜 그토록 분노했나, '모레노호' 이대로면 좌초 위기


  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 김민재가 베네수엘라 공격을 차단하고 있다. 2026.10.2
▲ 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 김민재가 베네수엘라 공격을 차단하고 있다. 2026.10.2이준호

모레노호가 임시감독 리더십의 한계를 노출하며 출범 3경기 만에 위기에 놓였다. 무기력한 전술과 조직력의 한계 속에서 국가 대표 수준의 집중력과 개인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선수들의 '워크에식' 역시 도마에 오르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스페인)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2일 오후 8시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하나은행 초청 친선경기를 치러 베네수엘라와 0-0으로 비겼다.

지난 9월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은 모레노 감독은 데뷔전인 에콰도르전 3-0 대승으로 산뜻하게 출발하는 듯 했으나 두번째 경기인 우루과이전 1-4 패배 이후 베네수엘라전에서도 무승에 그치며 1승 1무 1패를 기록 중이다.

모레노호는 우루과이전 참패에 이어 베네수엘라전에서도 부진한 흐름을 뒤집지 못했다.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경기력만 놓고 보면 베네수엘라전이 지난 3경기 중 가장 졸전이었다.

한국은 이번에도 4-4-2 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기회를 창출하지 못했다. 전반전에는 45분동안 겨우 슈팅 1개를 시도하는 데 그쳤다. 후방 빌드업은 패스가 3번 이상 안정적으로 연결되는 장면이 드물었다. 모레노호에서 3경기 만에 첫 출전한 중원사령관 황인범이 돌아왔지만 중원 싸움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최전방 투톱인 손흥민과 오현규가 좀처럼 패스를 받을 기회가 없어서 미드필드 진영까지 내려와 볼을 받아야 하는 장면이 속출했다. 소속팀에서는 빅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는 이강인이 모레노호에서는 측면 미드필더로 나섰으나 베네수엘라의 전략적인 압박에 막혀 2경기 연속 존재감이 없었다.

4-4-2는 1-3선 간의 유기적인 간격 유지와 수비 가담이 필수다. 하지만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전방에서 1, 2차 저지선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간격이 자꾸 벌어지는 장면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볼이 한번 끊기면 수비수들이 상대 공격수들보다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일대일 상황에 놓이는 위기가 많았다.

수비의 핵심인 김민재는 넓은 공간을 지키며 여러차례 몸을 아끼지 않은 플레이로 실점 위기를 막아내야 했다. 심지어 빌드업이 되지 않다 보니 수비수인 본인이 직접 공을 몰고 전방에 올라가서 활로를 찾거나 공격에 가담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엉성한 조직력과 연계 실종, 활동량 부족 등 모레노식 4-4-2 전술의 한계가 초반부터 반복됐다. 앞선 2경기와 달리 이번에는 후반 선수 교체와 전술 변화에도 이렇다 할 개선 없이 끝까지 무기력하게 경기를 마쳤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러웠다. 심지어 한국 축구의 악몽으로 남은 홍명보호의 지난 북중미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전(0-1)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로 무기력했다.

국가대표 선배로서 이날 베네수엘라전을 중계한 이근호 쿠팡플레이 해설위원은 전반전을 지켜본 후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아끼겠다. 원팀을 강조했던 모레노 감독이지만, 전반전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라며 대표팀의 경기력에 쓴소리를 던졌다. 결국 무승부로 경기가 끝난 후에는 "4-4-2로 나왔을 때 가장 중요한 활동량이나 간격 등 모든 것이 상대보다 떨어졌다. 비겼지만 내용적으로는 밀렸다"라며 실망감을 감추지못했다.

특히 경기후 주전 수비수 김민재의 "수비수들이 불쌍했다"라는 이례적인 '폭탄 발언'어 터지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김민재는 후반 35분까지 경기를 뛴 후 김태현과 교체됐다. 김민재는 벤치로 물러난 후 축구화를 벗어던지며 화를 감추지 못했다. 모레노 감독에게 강한 어조로 무언가를 호소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민재는 경기 후 "반전이 필요한 경기였는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 아쉬웠다. 많은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 팀 전체적으로 다 같이 싸우고 경합하고 수비를 해야 한다. 오늘은 수비 선수들이 불쌍했다. 전체적으로 뭔가 다 같이 싸우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늘은 7-0, 9-0으로 이겼더라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 개인이 빛나기보다는 팀이 하나가 돼 뛰어야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며 "팀 수준을 올리기 위해선 모든 선수가 '머리를 처박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김민재는 전임 감독인 홍명보호 시절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북중미월드컵 남아공전에서는 교체 이후 벤치에서 코칭스태프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월드컵 이후에는 한 방송에 출연해 "본인이 하고자 하는 축구가 확실한 감독님이 오셨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전술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때 정확하게 짚어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소신 발언을 해 홍명보호를 간접적으로 저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민재의 발언을 단지 팀 동료를 비난하거나 팀 분위기를 흔드는 돌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몇 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는 대표팀의 현실을 꼬집는 문제 의식에 가까웠다

주장 손흥민도 이러한 김민재의 지적에 공감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김민재의 작심 발언을 두고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공격수와 수비수들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저도 김민재를 너무나 이해한다. 매 경기 뒤에서 든든하게 버텨준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주장이자 팀 동료로서 미안하고 고맙다"라며 김민재를 옹호했다.

베네수엘라전에서 선수들의 경기 태도 문제가 유독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사실 언젠가 터질 필연적인 문제였다. 그동안 대표팀은 지난 몇 년간 주로 '감독 리스크'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근무 태만과 기행으로 일관한 클린스만, 선임 과정의 공정성과 전술 부재로 도마에 오른 홍명보 등 감독의 자질과 무능함을 둘러싼 비판이 뜨거운 화두였다. 하지만 감독 문제에만 가려졌을 뿐,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량과 태도 문제도 심각했다.

언제부터인가 대표팀의 경기에서는 예전의 끈끈함과 집중력이 사라지고 무기력함이 팽배했다. 공이 없을 때도 적극적으로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거나 공간을 찾아 뛰어들어가고, 힘들어도 동료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들이 사라졌다. 어떤 훌륭한 전술도, 슈퍼스타의 탁월한 개인기도, 이런 팀플레이가 뒷받침 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축구에서 흔히 득점과 화려한 패스 등에만 주목하느라 잘 눈에 띄지 않지만, 팀을 진정으로 강하게 만드는 플레이들은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김민재의 '다 같이 머리를 박고 뛰어야 한다'는 발언은, 결국 축구는 팀플레이고, 다같이 한 발씩 더 뛰면서 함께 뛰려는 자세가 팀의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물론 한국 선수들이 게으르거나 이기적이어서 제대로 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판단력과 투쟁심의 부족이다. 공이 오기 전에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축구 지능, 주인 없는 공을 어떻게든 따내기 위해 자신보다 큰 선수들과 두려움 없이 경쟁하는 승부욕, 이기고 있어도 한 골이라도 더 넣기 위해 갈증을 느끼는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무작정 목적과 전략 없이 열심히만 뛰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 하나쯤 괜찮겠지'라는 무성의하고 느슨한 플레이가 만연하면서 빚어진 대표적인 참사가 바로 지난 북중미월드컵의 남아공전이었다. 3개월이 흘러 비록 감독이 바뀌고 전술도 달라졌지만, 정작 선수들의 면면과 국가대표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이 점이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떤 감독이 와도 대표팀에는 희망이 없다.

이대로라면 모레노 임시 감독의 미래에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총 6경기를 지휘하는 모레노 감독은 베네수엘라전까지 벌써 절반의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 경기는 우즈베키스탄전으로 이번 4연전의 마지막 경기다. 11월 A매치 2경기가 남았는데 아시아권팀들과의 대결이 유력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모레노호의 경기력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아시안컵까지 계약을 연장하거나 정식 감독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모레노 감독의 전술적 역량도 물음표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짧은 임시 감독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팀을 떠날 수 있는 감독이 팀을 장악하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시도하는 것은 세계적인 명장이라도 쉽지않다.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황인범은 경기 후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다. 대표팀 9년 차 정도 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축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부분에서 변화돼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대한민국 축구가 발전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부분들이 안 되는 것 같아 책임감을 느낀다. 일단 도움을 주실 분이 안 계신다. 축구협회 회장님도 안 계시고, 감독님도 임시 감독님으로 오셨다 보니 어떻게 될지 미래를 모르는 상황이다.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도 많다. 문제점들이 분명히 보이는 상황이 많은데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나설 사람도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황인범의 발언은 선수들도 무엇을 위하여, 어떤 목표를 향해 뛰어야 하고,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선수들도 한국 축구의 무능한 리더십과 축구행정이 빚어낸 희생양인 셈이다.

이대로 대표팀이 계속 안정을 찾지 못하고 만일 모레노 임시감독마저 6경기 만에 '불합격' 딱지를 받게 된다면 한국 축구는 더 큰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이런 경기력으로는 내년 아시안컵도 사실상 비관적이다. 가뜩이나 협회 집행부 공백도 장기화 되는 상황에서 한국 축구의 암흑기는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길도 답도 잃어 버린 듯한 지금의 모레노호와 한국 축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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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노호 김민재 베네수엘라 황인범 임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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