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보이> 스틸
필름다빈
소년은 처음 맛본 자유와 쾌락을 포기할 수 없다. 왜 마을 주민들의 온갖 어둠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고단한 나날만 보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살라고 태어난 삶인가. 세심한 연착륙 과정 없이 불쑥 솟구친 가공할 능력이 사방에서 파열음을 일으킨다. 세르지오도 마우로도 마을 주민 누구도 더는 억제할 수 없다. 그 나이 청소년이라면 당연한 과정이지만, 문제는 마테오가 신적 존재로 마을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것. 소년 없이 지속 불가능한 환경이 흔들린다.
사실 평화로운 유토피아처럼 보이던 마을 내부는 사상누각이라는 암시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외톨이지만 주민들의 질서에 저항하는 세르지오의 이웃 남자도, 모두가 수용하는 공평한 포옹 분배 체계에서 벗어나 '자유이용권'을 누리는 (세르지오와 은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술집 여사장도 있다. 누구나 마테오와 알현하는 지분을 남보다 먼저, 더 많이 차지하고 싶은 갈망을 감춘 채 살아간다. 마우로의 극단적 통제와 유력자들 협조로 간신히 버티는 데 불과했던 것.
사회적 재난의 치유를 고민하게 만드는 공포영화라니
이탈리아 공포 영화라면 끔찍하고 지저분한데,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비주얼을 떠올린다. 하지만 <홀리보이>는 그런 '제식화'와 궤가 다른 독창적 공포물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질 만하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반세기가 지나도 10대의 위험한 욕망과 초능력을 결합한 청소년 공포물의 영향력은 <홀리보이>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엑스맨 유니버스'처럼 평범한 이들에 신 혹은 괴물로 취급받는 돌연변이들이 겪던 수난을 떠올리면 된다.
아울러 21세기 장르영화의 새로운 조류로 각광받는 '포크 호러'의 기운과도 자연스레 만난다. 이탈리아어 원제는 "La valle dei sorrisi(미소의 계곡)"인 바, 레미스 마을이 외지인이 다가가기 극도로 힘든,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을 고립된 환경이며 주민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거의 완벽한 포크 호러의 기준에 부합된다. '닫힌 사회', '폐쇄적 공동체'의 이상적 조건을 갖춘 마을이 이탈자를 허용하지 않는 강요로 유지된다면 그 끝은?
▲<홀리보이> 포스터필름다빈
말초적 충격 요법에 의존하는, 일명 '점프 컷' 효과로 깜짝 쇼를 남발하는 식상한 공포물과 격이 다른 사회적 주제를 두텁게 갖춘 영화의 미덕을 누누이 설파하다 보면, 문득 질문을 떠올릴 법하다. 의미 있고 복선 많고 해석 여지 다양하고 다 좋지만, 정작 장르물로서 무섭냐는 물음표다. 교육사회학 영상교재 보려고 극장 찾아야 하냐는 항변인 셈. 실제로 영화는 그저 화목한 이상향 풍경 이면에 숨은 추악한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한참 흐른다.
작품의 테마는 사회적 공포로 확연히 기운다. 사회적 참사를 겪은 이들의 고통을 누가 함부로 잊자고 말할 수 있으랴. 레미스의 열차 사고는 제대로 조명되거나 보상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 유무형의 피해는 온전히 살아남은 이들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그래도 산 사람이 계속 살려면 과거를 묻어두고 미래로 향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퇴행적으로 버틴다면? 이 영화는 그 극단적 사례를 '초현실적 능력자가 존재한다면?'이라는 물음표와 함께 제출하는 셈이다. 묵직하다.
그렇지만 명백히 <홀리보이>는 공포물이다. 요즘 상업영화가 너무 친절하다 보니 관객은 감독이 곳곳에 심어둔 퍼즐을 찾아 추리하는 수고를 잊곤 한다. 하지만 영화는 끈기 있는 예열 과정을 통해 후반 들어 한꺼번에 분출하는 히든 카드를 꼭꼭 숨긴다. 일단 화산 폭발하듯 공들인 공포가 오감을 옥죄기 시작하면, 왜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솔직히 '찍고 자르고 썰어대는' 고어 장르 백 편보다 <홀리보이>의 절제된 폭주가 몇 곱절은 더 무서웠다.
<작품정보>
홀리보이
The Holy Boy
2025 이탈리아 공포, 스릴러, 드라마
2026.10.07. 개봉 123분 15세 관람가
감독 파올로 스트리폴리
출연 미켈레 리온디노, 로마나 마조라 베르가노
수입/배급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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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