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레이스 실격, 19점의 벼랑…37세 하지민은 다시 바다를 지배했다

항저우에서 놓친 '금빛 항해' 4년 만에 탈환…관록으로 위기 넘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하지민의 '금빛항해'에는 베테랑 특유의 관록이 묻어났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하지민의 '금빛항해'에는 베테랑 특유의 관록이 묻어났다.대한요트협회

첫 레이스부터 실격이었다. 19점이라는 큰 벌점까지 떠안았다. 한 번의 실수가 최종 순위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요트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하지민(37, 해운대구청)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20년 넘게 바다에서 쌓아온 경험을 꺼내 들었다. 한 레이스씩 순위를 끌어올린 그는 결국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요트 남자 1인승 딩기에서 정상에 오르며 개인 통산 네 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이후 8년 만의 금메달이다.

이번 우승은 단순히 금메달 하나를 추가했다는 의미와는 달랐다. 하지민은 대회 첫 레이스부터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만났다. 1차 레이스를 3위로 마쳤지만 상대 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항의가 뒤늦게 받아들여지면서 실격 처리됐다.

요트 딩기는 예선 성격의 오프닝 시리즈에서 9차례 레이스를 치른다. 순위에 따라 벌점이 주어지고, 이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한 경기의 점수는 최종 합산에서 제외할 수 있다. 하지민은 그 '지우개 카드'를 첫 경기부터 사용하게 된 셈이다. 19점이라는 부담을 안고 남은 레이스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하지민은 이후 레이스에서 세 차례 1위를 기록하며 예선을 1위로 마쳤다. 예선에서 얻은 선두 자격으로 결승 시리즈를 벌점 없이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선두를 지켜냈다. 최종 순벌점은 9점이었다. 2위 니컬러스 베지 홀리데이(홍콩·7점)보다 2점 앞선 결과였다.

바람과 물살을 읽는 경험, 37세 하지민이 다시 증명한 이유

요트는 단순히 배를 빠르게 움직이는 경기가 아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물살의 흐름을 읽고 경쟁 선수들의 움직임까지 살피면서 가장 효율적인 항로를 선택해야 한다. 바람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순간적인 판단 하나가 순위를 크게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요트에서는 오랜 경험이 중요한 자산으로 꼽힌다. 하지민이 첫 레이스에서 큰 벌점을 받은 뒤에도 무리하게 한 번에 만회하려 하지 않고 매 레이스를 차분하게 풀어간 것도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의 레이스를 유지하면서 경쟁자보다 조금씩 앞서가는 것이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민에게는 직전 대회인 항저우에서의 아쉬움도 있었다. 당시 11차 레이스까지 2위를 달리며 4연패 가능성을 이어갔지만, 마지막 메달 레이스가 바람 부족으로 취소되면서 최종 순위가 뒤집힐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은메달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 대회는 시작부터 또 다른 위기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첫 레이스 실격으로 사실상 한 번의 실수를 지울 기회를 잃었음에도 이후 세 차례 레이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예선 선두로 올라섰다. 결승에서도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4년 전 아쉬움을 자신의 힘으로 되돌려놓았다. 37세. 자신의 다섯 번째 아시안게임이었다.

하지민의 아시안게임 역사는 한국 요트의 성장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2010 광저우에서 처음 금메달을 따낸 뒤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까지 3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항저우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연속 우승 행진이 멈췄지만, 이번 대회에서 다시 금빛 항해를 완성했다. 5번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를 수확했다.

올림픽 무대에서도 꾸준히 경쟁력을 보여왔다. 2008 베이징부터 2024 파리까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고, 2020 도쿄에서는 남자 1인승 딩기 종합 7위에 올라 한국 요트 선수로는 처음 올림픽 톱10에 진입했다. 이제 시선은 다시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향한다.

첫 레이스에서 받은 19점은 예상치못한 암초같았지만 하지민은 그 숫자에 자신의 레이스를 맡기지 않았다. 바람을 읽고, 물살을 견디고, 한 경기씩 다시 쌓아 올렸다.

37세의 베테랑이 보여준 이번 금메달의 가치는 네 번째라는 숫자에만 있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정상에 섰던 선수에게도 새로운 도전과 자기 의심을 넘어설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준 금빛 항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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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빛항해 4번째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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