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드문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절대다수의 영화에서 사랑은 불가피한 필요악 같은 존재다. 생로병사의 순환을 거듭하는 인생에서 사랑은 영화감독과 관객 모두에게 죽음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죽음이라면, 삶을 다채롭게 변주하는 주체는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과 죽음은 씨줄과 날줄처럼 인생의 견고한 교직의 질료다.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이창동 감독이 돌아왔다. 해마다 1편 이상 영화를 찍어내는 다작 감독도 있지만, 이창동 영화는 자주 만날 수 없다. 그가 제기하는 문제가 일반 대중과 결이 맞지 않는 까닭도 있겠지만, 감독의 완벽주의 혹은 냉정한 영화시장 때문일 것이다. 싫든 좋든 이창동은 우리의 많지 않은 작가주의 감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영화 <가능한 사랑> 장면
넷플릭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의 마른 여인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허름한 집에서 나온다. 그녀 이름은 미옥. 뒤따라 나오는 소년과 중심을 잃은 듯 멍한 눈길의 남자 호석. 소년의 운동화 끈 한쪽이 풀려 있음을 지적하는 남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끈을 고쳐 맨다. 그리 밝지 않은 얼굴로 그들은 자동차로 걸음을 옮기고 영사기는 불안정하게 그들을 잡아낸다.
짧지 않은 상영시간 164분 동안 영화는 호흡이 빨라지거나 거칠어지는 법이 없다. 밋밋하게 느껴질 만큼 영화는 담백하고 소박한 색깔과 향기와 속도를 유지한다. 주인공들의 화려하거나 거룩한 대사 하나 없고, 기억에 오래 남을 장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서사 면에서 소설과 닮은 영화가 자주 의지하는 플래시백 기법은 지극히 절제된다.
애초에 소설을 본업으로 삼은 이창동이 왜 <가능한 사랑>에서 자신의 장기(長技)를 쉽게 포기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영화가 일일 연속극이나 신인 영화감독의 시제품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거기서 얽히는 여러 인연과 사건과 갈등을 반추하도록 인도하는 영화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공유 가능한 것과 아닌 것
미옥과 호석의 과거사는 노동자 혹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기초한다. 그것은 따라서 위험하기도 하고 진부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에 그런 방식은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정서적인 공유면적을 확보한다. 이를테면 군대에서 얻은 휴가 기간에 미옥을 찾아 헤매는 호석의 고단한 발품과 그들이 함께한 연안부두의 보름달은 흐뭇하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달을 바라보던 20대 초반의 남녀는 우리도 쉽게 공유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다. 하지만 유학 생활 중에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집까지 걸어가면서 홀로 달을 올려다보았다는 여대생 예지의 경험은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장면에서 관객은 미옥과 예지가 공감대를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세탁소집 딸 예지가 미국에서 돈 문제에서 자유로운 남성 상우를 만난 이야기가 객석과 공유할 지분은 크지 않다. 오갈 데 없어서 해변에 쭈그리고 앉은 가난뱅이 처녀와 총각 이야기는 아주 제한된 과거사를 가진 인물 상우와 공통분모 찾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지는 그들과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끈질기게 추구한다.
조금은 지겹고 답답한 미옥 내외와 세련되고 우아한 예지 부부의 삶은 수평적으로 제시돼 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삶의 무늬와 무게는 완연히 다르다. 낡아빠진 SUV 차량과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포르쉐 차이라고 할까. 예지가 미옥 내외에게 보여주는 태도에서 상우는 '메소드 연기'를 포착한다. 대단히 예리한 시선과 빼어난 지적 능력을 과시하는 상우.
무엇이 가능한 사랑일까
▲영화 <가능한 사랑> 장면
넷플릭스
미옥과 예지는 우연히 만난다. SP 중공업 해고 노동자 때문에 상갓집에 모여든 사람들을 영상으로 담는 예지. 노조원을 매개로 말을 섞는 미옥과 예지. 계층적으로 아무 관계 없는 인간들의 삶을 영상으로 담아내려는 예지의 진정성에는 놀라운 구석이 있다. 그런 진지함에 이끌리면서도 미옥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거부감을 감추기 어렵다.
<가능한 사랑>에서 객석의 내밀한 동요가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구사대 혹은 용역 깡패라 불렸던 자들의 무자비한 물리적 폭력이 노동자들에게 내리꽂힐 때다. 아무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는 노조원들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폭력이 하얀 햇살 아래 난무(亂舞)한다. 영화는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이 땅의 숱한 반노동 폭력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공권력이 지키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돈과 자리다. 그런데 남편이 가진 돈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예지가 공권력의 최대 피해자들의 가슴 서늘한 사연을 필름으로 애써서 담아낸다. 그런 작업이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경제-문화적 파급력을 가지는지, 예지는 알고 있는가. 예지가 고맙긴 하지만, 미옥은 예지에게 견디기 어려운 이질감을 경험한다.
사정이 이렇지만 이창동은 <가능한 사랑>의 제작 의도를 명쾌하게 밝힌다.
"노동이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무엇이 가능한 사랑일까. 사랑은 눈에서 시작되어 말로써 어울리고 마음을 지나 몸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랑밖엔 난 몰라> 앞부분은 <가능한 사랑>의 주제 하나를 귀띔한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때문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어떤 이는 처음 마주하는 순간 상대방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런 순간을 느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어긋날 때다. 예컨대 가정을 가진 남녀가 다른 남녀에게 지독하게 끌리는 감정을 가질 경우다. 이런 양상을 어리석은 감상주의나 신파조의 가정 파탄 드라마로 만들지 않고, 서사를 이끌어갈 수 있음은 경이로운 일이다.
영화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상당히 독특하다.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지독하게 무심한 아이의 시선으로 그들 관계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열린 문틈 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네 남녀의 한바탕 흐드러진, 하지만 아주 어색하기도 하고, 동시에 열렬하기도 한 장면이 펼쳐진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마주할 앞날의 관계를 예비하는 것 같다.
해변에서 전개되는 미옥과 상우의 장면은 사랑이 물질적-정신적 빈부격차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환상을 조롱하고 파괴한다. 사랑에는 고유한 거리와 온도와 밀도와 감촉이 숨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마침내 본래 자리로 회귀할 운명인 셈이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주)NEW
남아 있는 궁금증
과거 별장 관리인을 호출하는 용도로 썼던 호루라기 행방을 진지하게 묻는 예지와 퉁명스러운 말투와 눈길로 쏘아붙이는 미옥. 필수품도 아니고, 귀중품은 더더욱 아닌 호루라기를 찾아다니는 예지. 영화의 결말에 그 행방을 알고나니 궁금하다. 그것이 왜 거기 있는지.
아들이 신발 끈을 고쳐 매는 모습을 지켜보는 호석과 그것을 손수 매어주는 상우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상한 아저씨와 무뚝뚝한 아버지 사이에서 소년은 어떤 감정을 품을 것인가. 여기에도 어떤 사랑이 스며들 여지가 있는 것일까. 산뜻하고 깍듯한 예의범절로 무장한 상우 역시 '메소드 연기'를 펼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가능한 사랑>에 등장하는 <데칼로그 10>은 <십계명> 가운데 열 번째 주제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영화가 드러내고 싶은 것은 나와 너, 우리와 그들, 부자와 빈자 사이의 머나먼 거리다. 나와 내 가족과 인연이 가지고 있는 것과 너와 너의 가족과 관계가 가진 것을 존중하고, 그 사이의 심연을 넘지 말라는 얘기일 것이다.
영화는 국가가 동원한 물리력을 앞세워 재벌의 이익을 지켜주는 공권력에 무너진 인간들의 힘겨운 사투의 외피를 가진다. 그들의 투쟁을 사이에 두고 적극적인 관찰자로 등장한 여인과 쓰러진 사내의 아내 사이의 거리. 그들과 함께 사는 사내들의 불가능한 소통 가능성. 그들을 지켜보는 소년의 메마른 시선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축도(縮圖)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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