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읽는다. 아침에 휴대폰을 열어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확인하고, 누군가가 쓴 기사를 통해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세상을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잊는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한 줄의 문장도 결국 누군가가 보고, 듣고, 확인하고, 쓰기로 결정한 결과라는 것을.
그렇다면 기자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을 취재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쓰면 안 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한 문장을 쓰면서도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언론은 어떤 모습이 될까. 어쩌면 언론의 자유라는 말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확인한 것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아주 당연한 권리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암살자(들)>은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둘러싼 빈 공간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더해 철구(유해진), 재환(박해일), 영일(이민호)이라는 세 사람을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던지는 수많은 의문에 답을 찾는 것보다, 세 사람이 그 의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지를 바라보는 일처럼 느껴진다.
경찰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확인하려 하고, 기자들은 자신들이 확인한 것을 기사로 쓰려고 한다. 그렇게 미스터리로 시작한 영화는 조금씩 언론에 대한 이야기로 움직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질문한다. 기자가 기사를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첫 번째 감정] 철구의 절박함
▲영화 <암살자(들)>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철구는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경찰이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이상한 순간을 목격했고, 그 순간부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더구나 사건 이후 책임의 일부가 자신에게 돌아오면서 철구에게 사건을 확인하는 일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자신이 정말 놓친 것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추적에는 형사로서의 의무와 한 인간으로서의 억울함이 뒤섞여 있다.
철구가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냥 모른 척하고 돌아서면 조금 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봤던 장면과 기억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은 그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철구는 다른 두 사람보다 훨씬 몸으로 움직인다. 뛰고, 쫓고, 얻어맞으면서도 자신이 놓친 무언가를 계속 확인하려 한다.
그런 철구를 움직이는 감정은 정의감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 절박함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본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리고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그냥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다는 마음.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어디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철구는 끝까지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절박함이 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앞으로 끌고 간다.
[두 번째 감정] 재환의 기자정신
▲영화 <암살자(들)>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재환은 철구와 조금 다르다. 그는 뛰어다니기보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재환이다.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는 총도 아니고 주먹도 아니다. 취재하고 확인한 것을 기사로 쓰는 일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환은 기자라는 직업의 의미를 계속 붙잡으려 한다.
재환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믿느냐보다 무엇을 확인했고, 그것을 쓸 수 있느냐에 있다. 철구가 가져오는 이야기와 영일이 취재해 오는 내용들을 하나씩 모으고, 그것을 기사라는 형태로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신문사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이 나뉘고, 기자는 기사를 쓰면서도 그 선을 의식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재환의 고집은 점점 기자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언론의 역할에 대한 질문으로 커진다.
영화 후반부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 자유언론실천선언은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발표한 선언이었다. 영화는 이 역사적 장면을 가져와 재환의 감정을 한 사람의 기자정신에서 여러 언론인의 목소리로 확장한다. 결국 기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저항은 자신이 확인한 것을 쓰는 일인지도 모른다. 재환을 보면서 기자정신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그래서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보고도 쓰지 못한다면, 기자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세 번째 감정] 영일의 뚝심
▲영화 <암살자(들)>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영일은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젊고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인물이다. 좋은 집안에서 자랐고 다른 기자들에 비해 잃을 것도 적어 보인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가 이 사건에 얼마나 깊숙하게 들어갈지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일은 생각보다 훨씬 멀리 간다. 선배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순간에 움직이고, 자신이 가진 조건까지 이용하면서 취재를 이어간다.
그 모습에서 재미있는 것은 영일이 처음부터 거창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자가 되었으니 취재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니 확인하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돌아가기 어려운 곳까지 도착한다. 어쩌면 기자정신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시작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질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는 것. 영일은 그것을 계속한다.
그래서 영일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감정은 뚝심처럼 느껴진다. 철구에게는 자신의 삶이 걸려 있고, 재환에게는 오랫동안 지켜온 기자라는 직업의 신념이 있다. 반면 영일은 이제 막 기자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가 영일이라는 젊은 기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기자정신이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살자(들)>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시작하는 영화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정황과 서로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철구와 기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추적한다. 초 중반부에는 미스터리 추적극의 장르적 재미가 꽤 강하다. 관객 역시 세 사람과 함께 작은 단서를 하나씩 맞춰가게 되고,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다만 영화 전체가 아주 단단하게 맞물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반에 만들어놓은 미스터리의 긴장감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늘어지는 부분이 있고, 영화가 만들어놓은 빈틈이 충분히 메워지지 않았다는 느낌도 남는다. 특히 하나의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로 출발한 이야기가 후반부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완전히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까지 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하다. 허진호 감독은 사건의 정보를 한꺼번에 설명하기보다 조금씩 흘려보내면서 관객이 세 인물과 함께 의심하고 따라가게 만든다. 멜로 영화에서 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오래 바라봐왔던 감독답게 이번에도 거대한 사건 자체보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놓치지 않는다. 철구의 절박함과 재환의 고집, 영일의 뚝심이 살아 있기 때문에 영화의 미스터리 역시 단순한 퍼즐 맞추기로 끝나지 않는다.
배우들의 힘도 크다. 유해진은 철구의 억울함과 절박함을 몸 전체로 밀어붙인다. 익숙한 인간적인 얼굴에서 시작하지만 사건 깊숙이 들어갈수록 점점 처절해지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박해일은 반대로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재환이라는 인물이 가진 기자로서의 고집을 낮은 목소리와 단단한 표정으로 만들어낸다. 이민호는 두 선배 배우 사이에서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영일의 젊음과 약간의 능청스러움, 그러면서도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기자의 근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사건 자체보다 기자들의 모습이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은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에 대한 외부 간섭을 거부하고 자유언론을 스스로 실천하겠다고 선언한 일이었다. 영화는 그 장면을 통해 처음부터 이어왔던 질문을 언론이라는 더 큰 이야기로 옮겨놓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너무 쉽게 뉴스를 읽는다. 기사 하나를 읽고 화를 내기도 하고, 댓글을 달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한 줄을 쓰는 일이 당연하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 <암살자(들)>은 바로 그 지점을 바라보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자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 그리고 자신이 확인한 것을 말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끝까지 질문하는 사람은 왜 필요한가.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분명하다. 조금 더 압축하고 좀 더 강력한 가설로 밀어붙였다면 훨씬 단단한 미스터리가 되었을 것 같고, 초반과 후반의 결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연결했다면 마지막 장면의 힘도 더 컸을 것 같다. 그럼에도 세 배우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사건을 추적하는 장르적 재미만큼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사건의 답보다 언론의 역할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은 흥미롭다.
어쩌면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은 모든 것에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냥 지나치라고 할 때 한 번 더 바라보고,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고, 확인해야 할 것을 끝까지 확인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확인한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암살자(들)>을 보고 나서 내게 남은 것은 바로 그 단순한 질문이었다. 우리가 매일 읽는 수많은 기사 뒤에는, 끝까지 질문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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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와 시리즈 속 감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보다,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브런치에 영화 감성 리뷰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 속 감정을 담은 첫 에세이집 《그럴 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를 출간했습니다.
레빗구미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남긴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오래 기록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