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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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 호석과 미옥(설경구/전도연),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부유한 남편 상우(조여정/조인성) 사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두 부부의 행동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해고 노동자 가족의 일상을 오롯이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가족이 품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후유증이다. 그 속에는 갈등과 억압, 계급과 관계가 놓여있고 그 너머에는 자유와 해방, 희망을 향한 갈증이 있다. 164분 동안 이걸 어떻게 모두 담아냈을까.
개인적으로 예지의 카메라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예지는 "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고 말하는데, 사람을 바라볼 때 진심을 담아야 할 자신의 두 눈보다 렌즈가 먼저 앞서있다. 어떤 카메라는 진실을 기록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진실은 상처이고 또 아픔이라서 거부할 수도 있다. 모든 진실을 기록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뭐하는거에요? 재밌어요?"
장례식장에서 호석이 예지의 카메라를 밀어낸 것도 거부할 권리가 기록하려는 의지보다 강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가장 선명해지는 곳은 두 부부가 함께 떠난 바닷가 별장이다.
"저 어렸을 때 여기서 벌거벗고 수영했어요."
상우는 아무도 보지 않으니 자유를 향한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그 별장 앞바다에서 새벽에 일어난 호석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거센 파도를 바라보다 숲으로 들어가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상우에게 있어 자유를 만끽했을 비밀의 공간에서 호석은 자신의 응어리 진 분노와 아픔을 드러내니 굉장히 대조적이다.
남편 호석을 나무 아래에서 몰래 지켜보던 미옥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쉽게 다가가지도, 토닥이며 위로하지도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래, 마음껏 울어. 울고 싶을 때 그렇게 울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뒤에는 예지가 잠옷 바람으로 달려 나와 그 와중에도 카메라로 기록하고 있다. 미옥은 사랑하기에 한 발 물러나지만, 예지는 굳이 선을 넘어 한 발 더 들어간다.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 하나가 세상을 비추고 있다. 고요하다. 달은 아무 말이 없다. 그 아래에서 상처와 눈물과 침묵을 꾸역꾸역 담아내는 카메라 옆에 조용히 부모를 바라보는 아들 철이가 있다.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 얼굴, 어떤 물음도 답도 담기지 않은 눈빛이 묘하게 보름달을 닮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사랑'
▲<가능한 사랑> 스틸컷(주)NEW
어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기록하고 물러서는 사이사이 아들 철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진다. 어린 미옥은 세차장에서 일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자랐다. 어느 날 엄마가 늘 손에 쥐던 물 호스를 잡고 놀다가 혼이 났다. 그런데 호스를 잡고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철이에게 미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부모의 상처가 반드시 자식의 운명으로 대물림 되는 것은 아닐테니까.
상우는 아끼던 물건이라며 오래된 호루라기를 보여준다. "철이 너도 불어볼래?" 호루라기를 건네받은 철이가 힘껏 불어보는데 상우가 친구처럼 같이 놀았다던 별장지기가 호루라기 소리에 달려온다. 상우에게는 별것도 아니었을 장난감이었겠지만 그 작은 물건 하나에도 계급과 서열이 아주 깊숙하게 배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물뿌리개는 상처에서 놀이가 되고, 호루라기는 명령에서 소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어른들이 물건에 새겨 놓은 의미를 아이는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그 의미를 순수하게 깨뜨린다.
한여름 밤의 꿈 같던 별장에서의 휴가가 시끌벅적하게 끝나고 집 앞마당에 앉아 아들이 좋아하는 콘칩 하나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부부 위로 오늘도 보름달이 뜬다.
보름달은 만월이 되었다가도 조금씩 제 몸을 깎아내기 마련이다. 가득 찼다가 비워지고, 비워졌다가 다시 차오르는 것이 자연의 순리 아닌가.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이들을 조금은 옅어진 보름달이 비추고 있다. 영화의 끝은 소름이 돋을 만큼 고요했다. 그 달은 터질 듯 가득 찬 달이 아니라, 부모를 바라보던 철이의 눈빛처럼 그저 말없이 평온했다.
이번에도 영화관을 나오며 장면들을 되새겼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때로는 상대를 지나치게 소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가능한 사랑>이라는 타이틀에서도 볼 수 있듯 '사랑은 가능하다'는 어쩌면 단순한 선언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디까지 가능하냐는 물음이다.
그 사람을 다 알 순 없어도,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모두 가질 수 없어도 내가 받은 상처와 슬픔을 다음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봐도 되는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는 것. 때로는 묻지 않고 그저 바라봐주는 것. 최소한의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랑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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